나의 책은 독자 한 사람과 나, 그러니까 단 두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한 줄 한 줄 글을 쓰고 그렇게 완성된 책은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가 된다. 여러 사람에게 다른 시간과 다른 날짜에 읽히는 과정을 지나지만 사실은 개별적인 한 사람에게 읽힌다.
독서는 철저히 개인적인 활동이다. 독서토론도 있고 독서모임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읽은 후의 활동이고 대부분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활동인 것이다. 쓰는 자와 읽는 자의 아주 사적인 접촉이다.
단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나의 글이 닿기를 바란다. 편지를 쓰는 기분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기분이기도 하다. 병 속에 넣은 편지를 바다로 띄우는 기분, 누가 내 편지를 열어볼까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쓸쓸한 그런 기분 말이다.
개인을 향한 글
감사한 분들께는 눈을 보고 감사를 전한다.
글자나 전화가 아닌, 직접 만나서 감사를 전하려 노력해 왔다. 진심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정직하고도 싶었기 때문이다. 정직하려 노력하며 살아도 정직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도 그랬다.
책이든 브런치든 블로그든 글을 쓰면서 진심이라고 믿는 진심으로 썼고, 독자와 나, 단 두 사람의 만남을 상상하며 썼다. 내가 앉은 책상 너머, 노트북 너머의 단 한 사람을 위해 쓰는 글에 주변인들의 자리가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쓰니까.
나는 내 글이 개인을 향한 글이기를 바라며 개인에 대한 글이기를 바란다. 단독자로서 읽히고 단독자로서 만나기를 바란다.
시간의 농도와 감정의 농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의 농도는 짙었다. 대부분의 시간들이 고통스러웠고 슬펐고 고민스러웠다. 많은 관계에서 좌절을 겪어왔지만 그래도 인간을 사랑한다.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으면서도 아직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것이 정말 신기하고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못 말리는 짝사랑이다.
내 아픔 덕분에 세상의 아픔과 타인의 아픔에 대해 더 민감해졌다.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외롭고 슬플까, 얼마나 절박하고 막막할까 하며 혼자서 발을 동동거렸다. 내가 여기서 당신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걸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무엇으로 도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마음은, 나의 아픔을 위로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어떤 분은 내 글이 감정과 너무 가깝다고 조금은 멀어질 필요도 있다고 하셨다. 동의한다. 내 글은 내 삶의 농도처럼 짙고 나는 많은 감정을 느끼고 깊게 느끼기 때문에 그런 면이 글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또 누군가는 감정을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이 미숙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나는 미숙하기도 하고 감정 앞에서 솔직하기도 하다. 그래도 선택하라면 담담해지는 것보다는 많은 것을 느끼는 쪽이 더 좋다. 깊은 감정으로 당신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고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이 사랑이 나의 자기실현에만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