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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리는 민들레 Aug 23. 2023

9. 무해한 너에게

당신과 나의 고통




잘 지내?


친구야,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니?

나는 너를 기억하고 있어. 항상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던 너, 그 또래의 밝음도 웃음도 없던 너, 자주 학교에 오지 않던 너, 어쩌다 학교에 오는 날이면 깻잎머리는 꼭 하고 왔던 너, 사춘기에 누구나 하나쯤은 나는 루지도 없이 하얗고 잡티하나 없는 피부를 가졌던 너, 선생님의 계속되는 설득과 회유와 협박에도 자주 결석을 하던 너, 담임선생님에게 양쪽 뺨을 한 대씩 맞고 발길질을 당해 쓰러지던 너, 그리고 영정사진 속에서마저 웃지 않던 너...


가 떠난 후 담임선생님은 한동안 우울해하셨어.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네 생각이 난다고 하셨지. 나는 선생님이 자책을 하시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앞으로는 학생을 발로 차거나 뺨을 때리시지 않을 테니까. 선생님은 앞으로 학생을 때리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너를 떠올리게 되실 거야.









알고 있어?


생님이 네게 그렇게까지 하신 이유를 알고 있어? 나는 조금 알 것 같아. 한 번도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신 분인데 왜 네게만 그러셨는지. 선생님은 진심으로 네가 학교에 결석하지 않기를 바라신 것 같아. 나는 그 마음이 지나쳤다고 생각해. 나에게는 누군가를 나쁘다거나 좋다고 판단할 자격이 없지만 어떤 행동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든 다시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걸 선생님을 보고 배우게 되었어.


그날, 왜 너는 거기에 있어야 했을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봤어. 너는 학생이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방학 때 늦잠을 자거나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가족끼리 휴가를 떠나기도 하잖아. 그런데 왜 너는 그날 거기에 있어야 했을까. 네가 그날 거기에만 없었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런 마음이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을 하게 돼. 너는 왜 자주 결석해야 했고, 너는 왜 즐거워야 할 방학 때 그곳에 있어야만 했을까.


살아오면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중에 네가 최고야. 왜냐하면 너는 너무 무해하거든. 자각하진 못했지만 좋지 못한 선택을 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은 인과가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납득할 수가 있어. 그렇지만 무해한 이들의 죽음은 아직도 이해하기가 어렵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너는 왜 그래야 했을까?


너는 왜 그렇게 돈을 벌어야 했을까? 왜 방학이든 방학이 아닌 때든 그렇게 열심히 벌어야 했을까? 왜 너는 계곡에 있는 식당에서 을 했어야 했을까. 왜 너는, 선생님한테 맞으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까. 왜 하필 네가 일을 하는 날 큰 비가 내렸고, 왜 하필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불어난 물에 휩쓸려 버리고 말았을까.. 그게 왜 너여야 했을까..


나는 너무도 무해한 네가 죽었다는 게 때때로 믿을 수가 없. 왜 우리의 삶은 이래야만 하니? 어른이 되면 훨씬 아는 게 많아질 줄 알았어. 그런데 나는 어른이 되었는데도 모르는 것 투성이야. 매번 흔들리고 넘어져. 매일 실수하고 후회해. 매 순간 어떤 것을 선택해 나가야 하는지 기로에 서서 고민하고 

과거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도 해.. 어른이 된다는 게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으면서도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걸 매 순간 절감해.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뭘 그렇게 진지하게 살려고 하느냐고 묻지. 그들은 무게를 느끼려고 하지 않아. 너는 그 무게를 아니?

무해한 네가 보고 싶은 날에는 이상하게 비가 내린다. 비가 올 때면 네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지만.. 잘 있어. 나중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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