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가 무릎에 앉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나를 쓰다듬었다.
하늘은 파랗고 멀리엔 노을이 물들어가고 있었다.
잠자리 한 마리가 내 무릎에 앉았다. 잠자코 있었더니 떠나지 않았다.
잠자리는 그 많은 존재들 중 어떻게 내 무릎에 앉았는지, 또 어떻게 날아가지 않고 계속 앉아있는지, 내 주변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느껴진 것은 세계와의 일치감이었다. 나는 외따로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붉은 노을이기도 했고, 보이지 않는 바람이기도 했고, 잠자리이기도 했고, 씽씽카를 타는 어린아이이기도 했다. 너무나 충분한 느낌이었다.
갑자기 펼쳐지는 연결
세계와 일치감이 들 때는, 모든 존재가 사랑스럽다.
남과 나에 대한 구분이 사라지고 세상과 나에 대한 구분도 사라진다. 모든 곳에 내가 닿고 모든 것을 만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느낌은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무전기 같은 느낌으로 가끔 찾아오는데 그런 느낌이 찾아올 때는 내 몸 전체의 세포들에 불이 켜지는 것 같다.
그런 순간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찾아온다. 아무 생각도 아무 바람도 아무 욕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각을 잡고 명상을 하거나 무언가를 느끼려고 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불시에 예고도 없이 갑자기 느껴진다. 깊은 평화가 내면을 가득 채운다.
어떤 상태에 머무르고 있을 때와 아무 상태도 아닐 때의 외적인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도 확연히 다르다. 어떤 상태에 머무르고 있을 때는 신체 어딘가가 경직되어 있다. 미간이든 어깨이든 윗배이든 허벅지이든 발끝이든 손끝이든 어딘가가 굳어있다. 자연스럽고 여유롭지 않다.
노을을 뚫고 가볍게
우리는 많은 일들을 하고 많은 역할을 한다. 누구여야 하고 누가 되기 위해 누구를 붙잡고 있거나 무엇이 되기 위해 무엇이 되려고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 [누구]와 [무엇]에 잡혀있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계속 진행 중인 상태에 머문다. 진행 중이라 긴장하고 경직된다.
일상을 산다지만 늘 어딘가가 굳어있는 채로 산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 또는 [무엇]에 기반한 대화와 접촉을 한다. 깊은 감정을 사용한다는 것은 감정을 쏟아내거나 배설한다는 의미가 아닌데 사람들은 쏟아내지 않기 위해서 사용하지도 않기를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견고하고 단단하고 영원할 것처럼 보이는 무거운 인공물들은 반드시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보이지 않고 단단하지도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벼운 잠자리처럼 어디든 가고 어디에든 앉는다. 나는 당신의 감정에 닿기 위해서 가을하늘을 날아간다. 먼 노을을 뚫고 가볍게. 당신을 찾으면 꼭 당신의 무릎에 앉으리라. 작은 잠자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