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먼 곳에서 의미 없이 흘러가는 화면> 같았다.어떤 때에도 행복하지 않았고 어떤 곳에 가도 즐겁지 않았다. 내 선택으로 살아가던 삶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삶에 질질 끌려다니던 느낌, 어떤 선택권도 주도권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날들 속에서 나를 아프게 찌르고 있던 질문은 "너는 누구인가"였다.
그 질문은 내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았고 잊히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구란 말인가.
대한민국의 40 대여성? 두 아이의 엄마? 부모님의 자녀? 쓰고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인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며느리? 아줌마?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생각과 감정
처음엔 생각이 나인줄 알았다. 내가 하는 생각을 살펴보면 나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겨 내 안의 생각을 탐색하고 파보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의 생각은 많은 부분 사회화가 되는 과정에서 부모, 학교, 친구들 에게서 주입된 것들이었다. 그건 진짜 내가 아니었다.
그다음에는 감정이 나인 줄 알았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감정들을 붙잡아서 해체하고 파보았다. 그런데 그것도 내가 아니었다. 감정들은 계속 지속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감정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역할로 나를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 40대, 엄마, 며느리, 자녀, 아내 같은 것들은 역할을 부르는 이름일 뿐 그것도 나의 본질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입은 옷이나 자기가 사는 곳이 자기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직업이 자기라고 생각하거나 자기의 명성이 자기라고 생각한다. 또 사회로부터 주입받아온 자기를 자기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할법한 생각을 하고 남들이 하는 말들을 한다.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 발달된 사회성이다.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나타났듯이.
되어야 하는 나와, 되고 싶은 나는 나라고 할 수 없다. 그것들은 모두 외부로부터 유발된 나이며 진짜 나의 본질은 아니다.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나, 여태껏 한 번도 발휘된 적 없던 나, 한 번도 마주했던 적이 없는 나, 진짜 나는 가능성과 잠재력에 숨겨져 있다. 인생의 목적은 숨겨진 나를 찾아내는 데 있으며 숨겨진 나를 발견하고 그 나로 살아가는 데 있다.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시도하지 않은 것을 시도해 또 다른 삶의 지평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있다. 인생의 진짜 목적은 고유한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안다. 어린 왕자가 사막에서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다. 어떤 가능성도 없는 곳처럼 보이는 메마른 사막이 어쩌면 진짜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발견되었고 사막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나만의 사막을 찾았고 헤매는 중이다. 당신도 어린 왕자처럼 당신만의 사막을 찾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없을 때, 모든 것을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