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아님 말고.

당신과 나의 고통

by 흔들리는 민들레





우리가 사는 세계는

트루먼 쇼이므로.

사는 게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그 뿌리에는 깊은 열등감과 소외감이 있었는데 그 열등감과 소외감은 어릴 적 내가 자란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난했고 여기저기 맡겨졌고 엄마는 늘 <사랑받으려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내게는 사랑받을 만한 면이 없는 것이라고 들렸다. 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은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된 순간의 표정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한다. '너, 문제를 일으켰구나?'라는 표정, 너 괜찮니? 다친덴 없니? 너무 속상했겠구나,라는 일반적인 말은 없었다. 그 침묵과 경멸의 시선을 나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절대로 잊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그 표정이 떠오르곤 해 화가 난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삶 속에서 누구를 괴롭히지도 누구에게 사기를 치지도 피해를 입히지도 않았다.

성실하게 공장에 출근했으며, 치매에 걸린 노모의 임종을 지켰다. 형제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았다.

악착같이 돈을 아끼고 모아 형제들이 다급할 때 빌려주었다. 형제들이 화를 내거나 돈을 갚지 않아도 먹고사는 게 너무 고달파서 그러는 거라 여겼다. 다들 원래 심성은 착하다고 하면서. 남은 남이고 결국 자기를 도와주는 건 형제밖에 없더라면서..








악인가 선인가?

그녀는 악인가 선인가? 그녀는 나쁜 사람인가 좋은 사람인가? 내 인생에서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은 엄마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형제들에게도 가해자일까? 상 누군가에게도 가해자일까?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생은 어쩌면 트루먼 쇼일지 모른다. 진실과 거짓이 없는 가짜 삶으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재생시스템.


한 사람의 자아는 반드시 외부를 기반로 형성된다. 태어나 자란 환경은 개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사회들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융은 그것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하기도 했다.


한 개인의 내부에 자리한 [반드시]라는 신념이나 믿음은 그래서 그의 것이 아니라 그의 외부에서 온 것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영화[트루먼 쇼]처럼 재생되는 것이다. 자기 삶이 아닌 짜인 각본대로 진행된다. 이 확고해 보이는 세계는 어쩌면 모 사람들의 물려받은 자아로 형성된 가짜인지 모른다. 객관 같은 건 애당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짜가가 판 친다.

삶의 유한성도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집트인들은 모래사막 한가운데에 피라미드를 지었다. 모든 흔적이 지워지는 모래사막에서 유한함을 지우기 위해 무한한 피라미드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본질은 유한함이었지 무한함은 아니지 않나?


이 가짜 같은 삶을, 모든 것을 건설했지만 모든 것이 붕괴되어 버리는 이 유한한 삶을 거부하고자 피라미드를 건설하고 롯데타워를 건설한다. 끊임없이 높은 것들을 세워나가며 이 가짜 생을

진짜라고, 단지 쾌락만을 공고히 하며 그래서 이 삶이 진짜라고 믿으면서 살아가는 람들의 삶이 때로 나는 너무나 이질적이고 가짜같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명예를 보거나 엄청 비싼 재화와 용역을 소유한 것을 보면 그런 편리함과 아름다움이 나 역시 부럽지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감정들에게서 튕겨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것들에 진실한 일치감이 느껴지지 않고 이질적이고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편리함을 누려본 적이 없는 자의 불편감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이 진짜 삶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품고 있는 자의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기도 하다.


이 가짜 같은 삶에 반드시, 라는 것은 없다. 꼭 해야만 하거나, 꼭 그래야만 하는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너무 애쓰지 않는다. 되었으면 좋겠는데 안 됐다면 어쩔 수 없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안 그런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삶은 기본적으로 가짜 같은 면이 있으므로 절박하게 애쓰지 않는다.


공허와 놓아버림은 다르다. 가짜니까 가짜처럼 사는 일과 가짜 속의 진짜가 되기 위해서 방랑하는 일은 다르다. 이 가짜 같은 삶의 진짜가 되기 위해서 나는 하루하루 나의 가짜를 벗겨내면서 산다. 그리고는 말한다.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