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이나 사연 하나쯤은 있다. 내가 자란 가정은 화목하지 않았다. 나는 주로 외갓집에서 자랐는데 그 집안 식구들은 서로 미워하면서도 명절이면 만나고 또 미워하고 또 만나고 그랬다. 크게 고성이 오가거나 싸우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존중하지도 않았다. 어린 내가 보기엔 서로를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왜 명절마다 만나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남편과 결혼을 했을 때, 시댁은 행복해 보였다. 명절마다 북적거리는 웃음소리와, 팀대항 윷놀이 등등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들을 결혼 전 어깨너머로 보면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봉지 안에서 짤그랑거리는 술병들을 동네 어귀에 쭈그려 앉아 내려놓으며 자욱한 담배연기 가득한 이 명절이 빨리 지나가버리길 바랐다.
불 켜진 집들의 창문을 보며 저 집으로 가고 싶었다. 저 집은 거친 웃음소리와 말투, 자욱한 담배연기는 없겠지.. 하면서.
그래서 더 시댁의 문화가 행복해 보였고 그곳에 끼고 싶어서 애쓰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 사랑받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하지 못해서?
그것은 가짜였다. 오랜 시간 사막을 헤매다 만난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기준
화목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을 나눌 수 있는 기준은 그 가정이 가진 <문제해결능력>에 있다.
화목한 가정의 문제 해결 방식은 누군가가 희생되거나 한 사람만 양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편의와 행복을 중심에 둔다. 구성원 중 누군가가 소외되거나 생략되지도 않는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은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 있어 시댁은 화목하다고 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화목은 누군가의 아픔과 희생 위에 지어진 빈약한 화목이었으니까.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이다. 부풀어 오른 공갈빵과도 같다. 웃음이 넘치지만 그 웃음 역시 진짜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며, 그 안에서 희생하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온 어떤 사람은 그걸 희생이 아니라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생 희생을 했으며 희생하며 사느라 좋은 일, 즐거운 일은 한 번도 누려본 적이 없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고는 말한다. 넌 왜 희생하지 않아?
서로 고성을 지르며 싸우지 않는다고 반드시 화목한 가정은 아니다. 그냥 화목한 것처럼 보일 뿐. 그런데, 화목한 가정의 구성원이라면 반드시 좋을까? 행복할까?
화목한 가정은 자칫 전체주의로 흘러 개인의 독립을 저해할 수 있다. 안온한 환경으로 독립하고자 하는 개인을 막거나, 개인의 자율성을 수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독립을 막아설 수도 있다. 생각보다 자녀가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막아서는 부모가 굉장히 많다.
신기루
그러므로 결국은 화목한 가정, 화목하지 못한 가정은 모두가 다 신기루일 뿐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개인이 추구해야 할 것은
독립에 있다는 것이다. 독립해야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되며 자기를 찾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찾아낸 자기를 충분히 알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자기를 뛰어넘게 된다. 그 모든 것을 초월한 무가 된다.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궁극의 무가 되어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다.
그런 경지는 굉장히 어렵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누군가는 해낸 일이기 때문이다.
화목한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곳에 있든 내가 정서적으로 독립을 했는 가다. 화목한 가정 그렇지 못한 가정은 단지 현상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