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에게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바가 있다. 법관이라면 준법정신을, 교사라면 학생에 대한 사랑을, 종교인이라면 인간에 대한 성숙한 관점을, 부모라면 자식에 대한 애정을, 의료인이라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국가대표 운동선수라면 성실한 사생활을 기대한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들은 그럴 것이다.라는 것을 전제한다. 그들은 그 직업을 갖기 위해 오랜 시간 훈련해 왔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했을 것이며, 그 인내의 시간을 지나왔으므로 성숙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하며 자기도 모르게 인정한다.
그러나 때로 법관은 범법을 저지르기도 하고 무척 가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일탈을 하기도 한다. 또 선생님이 학생을 추행하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기도 한다. 어떤 의료인은 생명을 경시하기도 하며, 어떤 국가대표의 성실하지 않은 사생활이 폭로되기도 한다. 종교인이라고 해서 꼭 인간에 대해
성숙한 관점을 갖는 것도 아니다.
사회적 현실과 정서적 현실
사회적 현실과 정서적 현실
사회적 현실과 정서적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사회적 현실이 그 사람이라 생각하고 부러워하거나 동경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현상일 뿐 진짜 그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정서적 현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 사람 멋지다, 혹은 저 사람 대단하다는 운동선수나 정치인이나 성직자들에 대한 관점에 수긍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 정말 멋지다. 반짝반짝 빛난다. 일궈낸 성취물 또한 역시 멋지다.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완벽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사회적 현실일 뿐이며 정서적 현실은 아닌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사회적 현실이 가짜처럼 느껴진다.
알맹이가 아니라 포장지처럼 느껴진다. 때로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그렇게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지, 어떻게 저렇게 텅 비고 미숙한 사람이 저런 지위에 앉아있을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이 세상이 진짜가 아니라 꾸며진 무대처럼 느껴지거나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든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내면적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임과 동시에 누구도 모르는 사실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인정받는 직업을 갖기 원하고, 그 직업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인간성마저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부자에 대한 일반적인 인정은 돈에 대한 인정이고,
의사에 대한 일반적인 인정은 의술에 대한 인정이며, 훌륭한 경기 기술을 보여주는 운동선수에 대한 인정은 훌륭한 경기 기술이지, 그들 존재 자체의 인정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 존재 자체에 대해 알지도 못하며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에 기반한 사회성이지 타인의 존재 자체에 접촉하려는 인류애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기능으로 서로에게 접촉한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종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존재가 존재를 만나는 일은 어쩌면 그래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비난받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어느 쪽은 본성이 드러났을 뿐이고 어느 쪽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며 어느 쪽은 표출했을 뿐이고 어느 쪽은 표출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존경하는 사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