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겸손과 열등감의 차이

당신과 나의 고통

by 흔들리는 민들레



겸손과 열등감은 다르다



겸손과 열등감은 다르다.


최고가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또 정상에도 서 봤다.
그러나 정상에 서니
다른 봉우리들이 많이 보이더라.
참 슬픈 일이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러니 겸손해야 한다고, 타인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대기업 임원을 포함해 여러 곳의 높은 지위까지 오른 그, 그토록 바라던 정상에 섰던 그가 슬펐던 이유는 무엇일까?


겸손의 출발은 자기 자신이다. 내가 나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수용할 때, 겸손이 시작된다. 자기의 미숙함을 수용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느껴지는 미숙함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정상에 선 그가 깨달은 것은 자기라는 인간의 불완전함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타인의 정상이었을까. 전자든 후자든 어떤 것이든 그는 슬플 것이고 인정하기 힘들 것이다.






열등과 우월이라는 단어에는 외부적인 기준이 들어있다.


열등과 우월이라는 단어에는 외부적 기준이 들어있다.


우리는 최고가 되기를 강요받는다. 잘해야 하기를 강요받지 너만의 고유함을 찾아내라는 강요는 받지 않는다. 세상이 바라는 최고는 세상이 생각하는 최고이지 나의 최고는 아닐 수 있음에도 그걸 알려주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열등과 우월이다. 남보다 잘해야 하고 남보다 잘하는 것에만 박수를 보낸다.


오늘의 영광이 내일의 비극이 되기도 하는 것이 삶의 속성이며 인생의 높은 성취나 사회적 인정이라는 한두 개의 기준만으로 삶의 어떤 모습을 열등이나 우월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 측면으로서의 관점과 전체적인 관점은 엄연히 다르니까.






전체적인 관점


삶에 대한 전체적인 관점


정신의학 질병진단에서는 [스펙트럼]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나는 그것이 인간을 하나의 측면만이 아니라 질병의 다양한 개별성과 고유성을 보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용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특성도 수십만 가지의 종류와 수십만 가지의 다른 의미들이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간 산의 정상에서 멀리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았을 때, 시원한 바람이 내 이마의 땀을 씻겨주었을 때, 나는 무척 뿌듯했다. 얼마나 포기하고 싶었던가, 그러나 중도에 포기하고 하산했다면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없었겠지. 땀이 난 이마에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지 못했겠지. 세 시간 동안 넘어지며 올라오느라 아픈 다리는 쉬어주고 얼음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잠시 다른 정상들을 구경했다. 아무 생각이나 계획 없이 풍경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그리고는 엉덩이 탁탁 털며 다시 일어섰다. 잘 봤다. 하며. 한라산에 올랐을 때 나는 정말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