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삶에서는 모두가 초보

당신과 나의 고통

by 흔들리는 민들레




연장자에 대해


연장자에 대해


우리는 나이가 많은 사람을 대할 때,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연세가 많다'라고 표현하며 그 대우를 한다. 자리를 양보하고 높임말을 쓰며, 젊은이들보다 먼저 챙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흔히 지혜롭다 (살아온 날들이 길었으므로 지혜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하며 조상의 지혜, 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또

어른 말은 들어서 해 될 것 없다는 말도 한다.








나이가 많아서도 지혜가 많아서도


나이가 많아서도 지혜가 많아서도 아니다.


나이가 많으면 지혜로울 것이라는 말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이가 많은 모든 사람은 다 지혜로운가?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한 명의 <상처받은 고독한 인간> 일 뿐이며, 살아온 시간이 길기에 다만 더 오래 상처받았을 뿐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은 그들의 지혜를 전수받기 위해서도 또 그들이 희생하며 살아서도 아니다. 그들이 타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며, 나이가 많다고 더 존중받거나 나이가 적다고 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존중과 배려이지 존경과 복종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연장자이기에 지혜로울 것이며, 이 나라를 일구기 위해 희생했으므로 복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후세대가 해야 할 일은 잊지 않는 일일 뿐이다. 감사는 개별적인 선택사항이지, 감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이유 또한 없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충실히 살았고, 후세대 역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면 된다. 다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연장자들이 어떤 선택들을 했는지 참고하면 되는 것이다.









연장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연장자가 아니라 동반자가 되어야.


연장자가 존중받아야 한다면 그 외의 모든 사람들도 존중받아야 한다. 연장자가 말할 수 있다면 그 외의 모든 사람에게도 발언권이 있어야 한다. 나이가 많건 적건, 지위가 높건 낮건, 모든 목소리와 대상들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인생에서 <전문적>이지 않다. 누구도 주어진 인생을 전문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자기 삶의 초보이며 과정 속에 놓여 있다.

삶은 죽음으로서만 완성이 되며 그래서 우리 모두는 되어가는 중인 동반자일 뿐이다. 동반자는 동등하며 존중하지 존경하고 복종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은 그들의 경험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이고 삶의 한 측면일 뿐이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모도, 선생님도, 선배도, 모두가 삶의 초보자이다.

그러니까 누구의 말도 절대적으로, 의심 없이 덮어놓고 믿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딱 한 가지, 언제나 의문점을 갖는 일이다.

자기 질문을 잊지 않고, 그 질문을 살아야 한다.

자기 질문으로 삶을 채워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특별한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