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복종이 있는 곳에는 지배와 피지배가 있다.

당신과 나의 고통

by 흔들리는 민들레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란


거절하기 어려운 관계가 있다. 어떤 관계일까? 가까운 관계이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매일 봐야 하거나 아무리 싫어도 단박에 끊을 수 없는 관계.

그것은 가족이나 직장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데 불편해지는 것이 괴로우니까 되도록 수용한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부터 수용하고 그렇게 번번이 수용하다 보면 상대방은 더 많은 부탁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 타인은 선을 넘기 시작한다.







무수한 선


강화 요인


그 상대방은 학습을 통해 알게 된다. 이 사람은 선을 넘어도 괜찮다는 걸. 거절하지 않는 것이 그의 강화 요인이 된다. 동료이건 친구이건 지인이건 가족이건 그들에게 선을 허용하는 그 사람은(과거의 나였다) 불편한 것이 싫어서 계속 허용만 하다가 소진이 돼 버린다. 그런 경우에 결과는 두 종류로 나뉜다.


한쪽은 너무나 지쳐서 모든 관계를 끊어내 버리고 회피하거나 또 한쪽은 불편하고 힘들면서도 계속 거기에 머문다. 왜 불편하고 힘든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안다 하더라도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강화 요인)이 있기 때문에 그 이익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선을 넘어 요구하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강화 요인은 있다.







공간



관계의 본질은 공간


거절하지 못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라고 하지만, 실은 복종적인 의미가 있다.

복종은 권력이 작용하는 상하관계에서만 일어난다.

동등한 수평관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만일 내가 거절하기 어렵다면, 그런 관계에 처해있다면 그 관계의 본질, 속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무엇이 나를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는지, 어떤 요인이 거절을 힘들게 만드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다. 그 관계에 권력이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숙고해 보아야 한다.


나는 거절 울렁증을 배려와 이타심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진짜 배려와 이타심은 거절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거절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자기감정과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가짐으로써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그 사람의 기회를 빼앗지 않는 일이다.


내가 거절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그럴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과거의 나는 타인의 기회를 빼앗으면서 배려와 존중이라는 포장을 해왔다. 결국 그 행위는, 내가 하지 않은 선택과 결과에 대한 회피였을지도 모른다. 감당하기 싫으니까, 결과를 책임지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니까.


사랑이 있는 곳에는 존중과 배려가 있지만 복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지배와 피지배가 있다. 배려라는 이유로 거절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복종인 것이다. 만약 내가 복종하고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이다.


진짜 사랑은 거절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책임이 존재하는 공간이 있음을 수용하는 것이다. 너와 내가 하나라며 타인의 고유성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