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완
주인공 현수는 세진의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유서가 남았고 시신은 발견되지 않은 사건, 자살로 추정하지만 시신이 없었기에 실종일 수 있기 때문에 수사를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현수가 섬으로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세진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현수는 cctv 속 세진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이 아이의 표정을 안다.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거울 속에서 봤던 표정이다
현수는 부서지고 망가져 있었습니다. 믿었던 배우자에게 큰 실망을 하고 이혼소송 중이었으며 한쪽 팔에는 마비가 왔고, 직장에서는 징계위원회도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게다가 동료들의 수군거림까지 있었죠.
현수는 세진에게서 자기를 봅니다. 그래서 종결을 위한 수사가 아니라 재수사를 하게 되죠.
현수는 무엇을 찾고 싶었을까요? 세진의 시신? 사건의 진실?
그런데도 걔는 그 섬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 친 흔적들이 가득해.
그런 애가 죽고 시체도 못 찾았는데
아무도 책임 안 지고 조용히 덮어보려고 안달이 났네.
세진은 섬에 고립되어 있습니다. 섬사람들이 있지만 경찰로부터 보호받고 있으므로 사람들과 접촉하면 곤란해지지요. 사실 세진은 아버지가 저지른 밀수사건의 유력한 증인이었고 그래서 경찰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연락 두절, 경찰의 압수수색, 마약 투약 혐의로 감옥에 가 있는 오빠, 그리고 새엄마와는 연락을 할 수 없는 사정.. 혼자 섬으로 오게 된 세진은 밤마다 악몽을 꾸며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런 세진의 곁에는 순천댁이 있습니다. 남동생이 죽고 그 아내는 집을 나가고, 죽으려고 물에 빠졌다가 전신마비가 된 조카를 돌보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 자신도 죽으려고 농약을 먹었다가 기도와 식도에 손상을 입어 목소리를 잃었죠. 자신이 죽고 나면 남겨질 조카를 좋은 요양원에 보내기 위해 양식장 일을 다니는 그녀의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요? 거칠고 투박한 외모에 감춰진 아픈 개인사, 목소리와 함께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이 터져 나온 것은 바로 세진 때문이었습니다.
순천댁은 세진의 밥을 챙겨주고, 세진은 누워있는 순천댁 조카의 머리카락을 땋아주며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순천댁은 세진에게 떠나라고 합니다. 서툰 손 글씨로 말하는 순천댁.
가야
아무도 안 남았어요
니가 남았다.
순천댁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세진에게 말합니다.
나가서 우리 몫까지 살아.
아무도 안 구해줘
니가 너를 구해야지..
순천댁과 현수에게 세진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두 사람은 세진에게서 자신을 보았을 것입니다. 부서진 자기의 삶,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자기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기를, 모든 것이 부서졌지만 희망마저 부서지지는 않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세진이를 떠나보내고 싶었을 것이고요.
순천댁과 수현에게 세진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두 사람은 세진에게서 자신을 보았을 것입니다. 부서진 자기의 삶,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자기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기를, 모든 것이 부서졌지만 희망마저 부서지지는 않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세진이가 떠나길 바랐을 것이고요.
부서진 아픔을 위로하는 영화 <내가 죽던 날>, 죽은 것은 아픔이었을 뿐 희망은 아니라는 세 여성의 메시지가 우리를 조용히 위로합니다. 다시 한번 또 이렇게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따뜻하고도 치밀한 서사는 박지완 감독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단편 영화 <여고생이다>로 일찍이 주목받았던 그는 첫 장편 데뷔작인 <내가 죽던 날>을 통해 제4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과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상을 거머쥐며 그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누구나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자신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을 누군가 알아봐 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그의 믿음은 영화 속 세 여성의 연대로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2012년부터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인물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다듬어온 그의 끈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죽은 것은 아픔이었을 뿐 희망은 살아있다'는 묵직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https://youtu.be/VftsRSPQc_0?si=WQM_UhTsu1JxA6N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