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쿠아론
(이 글은 영화의 스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주재난 영화인 <그래비티>는 2013년 작품으로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열연을 펼친 작품입니다. 주인공 라이언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는 우주 망원경을 수리하기 위해 우주에서 보호복을 입은 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동료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를 비롯한 대원들과 함께 작업을 하던 중이었죠.
작업이 완성될 무렵, 러시아에서 자국의 인공위성을 파괴시켰고 그 잔해들이 빠른 속도로 그들을 덮칠 거라는 통신이 전해집니다. 왕복선으로의 복귀 명령이 내려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파편이 날아와 그들을 지탱하던 줄을 끊어버리고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라이언 박사는 우주로 튕겨져 나갑니다. 자신을 지탱하던 연결줄도 끊어지고 산소도 얼마 남지 않은 채 표류하게 되는데,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 맷이 그녀를 찾으러 옵니다. 맷이 입은 보호복에는 추진 장치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죠.
그는 자신의 보호복과 그녀의 보호복을 연결하고 우주정거장으로 향합니다. 추진 장치의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아 천천히 접근하다가, 정거장에 가까워져서야 추진력을 올립니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착륙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바람에 둘은 정거장 외부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겨우 매달리게 됩니다.
라이언, 날 놔.
당신은 살아 돌아가야지.
줄 끝에 발이 걸려 겨우 매달린 라이언은 맷의 줄을 잡고 있습니다. 발에 걸린 줄이 서서히 풀려가고, 맷은 라이언에게 자신을 놓으라고 하지만 라이언은 절대 안 놓을 거라며 울먹입니다. 그러나 맷은 스스로 줄을 풀고 손을 놓습니다. 그는 서서히 멀어져 가며 라이언에게 소유즈 우주선에 탑승한 후, 중국 정거장으로 가서 귀환하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겨우 중국 정거장까지 갔지만 연료가 없어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낙심 속에 맷과도, 지구와도 교신할 수 없는 상태가 되죠. 겨우 주파수에 잡힌 지구의 소리를 들으며 울음을 터뜨릴 때, 맷의 환영이 나타납니다.
알아, 여기가 좋긴 하지.
눈을 감으면 세상 모두가 잊히잖아.
여기선 상처 줄 사람도 없고 안전하지.
중요한 건 당신의 선택이야.
갖은 어려움 끝에 그녀는 결국 지구로 귀환합니다. 무거운 보호복을 벗어버리고, 무겁지만 가벼운 중력을 마주하게 되죠. 한 인간의 치열한 생존이 또 다른 시작으로 끝을 맺습니다.
동료를 잃고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사라졌을 때, 드넓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죽음을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상되는 결과는 두 가지다.
멀쩡한 상태로 내려가
멋진 모험담을 들려주거나
앞으로 10분 안에 불타 죽거나
어느 쪽이든 밑져야 본전이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조차 단 한 가지 선택권은 남아 있습니다. 끝까지 나아갈지 아니면 여기서 멈출지에 대한 선택이죠. 맷의 말처럼 라이언은 착륙하기 위해 비행선을 발사시켜야만 했습니다. 발사는 또 다른 착륙이 됩니다. 끝은 다시 시작이 되고, 시작하기 위해서는 발사되어야 합니다. 착륙과 발사가 다르지 않듯 시작과 끝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주에서 한 발 떨어져 바라본 삶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비극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있는 <선택권>입니다. 모든 것이 박탈되었을 때조차도 인간은 나아갈 것인지 멈출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기를 선택할 때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 됩니다. 착륙은 곧 발사입니다.
착륙은 발사야.
이 경이로운 우주 체험을 선사한 알폰소 쿠아론(Alfonso Cuarón) 감독은 멕시코 출신의 거장으로, <그래비티>를 통해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편집상을 포함해 7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굳혔습니다.
그는 롱테이크 기법의 대가답게 영화 초반 약 17분간 이어지는 오프닝 숏으로 관객을 우주 한복판에 던져놓았습니다. 기술적 성취뿐만 아니라, 고립된 인간이 상실의 고통을 딛고 중력(삶의 무게)을 다시 받아들이는 과정을 시각적 은유로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착륙은 곧 발사"라는 대사처럼, 그는 끝이라 여겨지는 곳에서 늘 새로운 시작을 그리는 감독입니다.
https://youtu.be/OiTiKOy59o4?si=kQKg-j4uNb3-Vc0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