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 타인의 욕망을 뚫고 주체로 서는 법

요르고스 란티모스

by 흔들리는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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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 〈가여운 것들〉은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환상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무겁고 현실적인 질문입니다. 영화는 벨라라는 인물을 따라가며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답은 판타지적 도약이 아닌, 현실을 수용한 끝에서 찾아옵니다.









모순적 탄생, 엄마의 몸을 빌려 시작된 기묘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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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는 특이한 방식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임신한 채 강에 몸을 던진 어머니의 시신에서, 의사 고드윈 백스터가 태아의 뇌를 꺼내어 어머니의 머리에 이식한 것이죠. 다시 말해 벨라는 어머니의 몸과 태아의 뇌가 합쳐진 모순적 존재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자기 몸을 갖지 못했고, 엄마의 몸을 빌려 살아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셈입니다. 이 기묘한 탄생은 보호를 가장했지만, 사실은 타인의 욕망과 통제 속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벨라를 규정하는 두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호와 사랑을 내세우며 통제하려 한 양육적 아버지 고드윈 백스터와, 그녀를 가두고 지배하려 했던 폭력적인 생물학적 아버지. 벨라를 둘러싼 환경은 이처럼 제약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경험의 세례, 세상의 고통조차 있는 그대로 수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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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가 무거운 해방에 이르기까지는 몇 단계의 경험이 뒤따릅니다. 처음 마주하는 세상은 아이처럼 낯설고 경이롭지만, 곧 성적인 경험을 통해 인간이 가장 근원적으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영역을 발견합니다. 이어 세상의 폭력과 불평등을 목격하며 고통을 경험하게 되죠.



특히 집착적인 연인이나 매춘굴의 손님들처럼 타인을 욕망의 도구로 삼는 인간들을 마주하지만, 벨라는 그들을 교화하거나 심판하려 들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을 경험의 범주에 두고 세상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조건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위에서 자기 삶을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벨라가 무거운 해방에 이르기까지는 몇 단계의 경험이 뒤따릅니다.


세상에 대한 경험: 처음 세상을 마주하는 벨라는 아이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경이롭습니다.

성적 경험: 성은 그녀에게 단순한 쾌락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근원적으로 자유를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됩니다.

고통에 대한 경험: 세상의 폭력과 불평등을 보게 됩니다.

타인을 욕망의 자리에 두는 인간들에 대한 경험: 집착적인 연인, 매춘굴의 손님들, 포주처럼 타인을 욕망의 도구로 삼는 인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벨라는 그들을 교화하거나 심판하지 않습니다. 단지 경험의 범주에 두고, 세상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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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EF%BC%BFScreenshot%EF%BC%BF20251003%EF%BC%BF033758%EF%BC%BFNAVER.jpg?type=w773 양육적 아버지와 생물학적 아버지



영화에는 벨라를 규정하는 두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양육적 아버지, 고드윈 백스터: 보호와 사랑을 내세우지만 결국 통제하려 한 인물.

생물학적 아버지, 어머니의 남편: 벨라를 가두고 지배하려 했던 폭력적 존재.



여기에 더해 벨라는 ‘엄마의 몸’이라는 조건까지 떠안고 살아갑니다.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제약과 억압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벨라는 그것을 단순히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위에서 자기 삶을 선택합니다.








판타지를 넘어 리얼리티로, 객체에서 주체로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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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것들〉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해방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처음의 벨라는 양육자의 보호, 연인의 집착, 사회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타인의 욕망을 대신하는 객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을 경험하며 고통을 마주하고, 타인의 욕망도 있는 그대로 수용해 냅니다.



그리고 그녀는 판타지가 아닌 리얼리티 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의사”를 선택합니다. 이때 벨라는 더 이상 객체가 아닙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 자기 존재로 서는 인간이 됩니다. 해방은 바로 이 전환에서 찾아옵니다. 조건을 벗어나는 판타지나 회피로 얻는 자유가 아니라, 타인의 욕망을 대신하던 객체가 자기 삶을 선택하는 주체로 설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이 모든 서사는 배우 엠마 스톤의 경이로운 연기 덕분에 설득력을 얻습니다. 처음엔 서툰 아이 같았으나 점차 주체적인 리듬을 찾아가는 그녀의 눈빛과 몸짓은 벨라의 철학적 여정을 몸소 구현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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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을 수용한 자리에서 피어난 실존적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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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관객과 평론가는 이 영화를 성적 자유와 여성의 주체적 성장이라는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읽어왔습니다. 그러나 벨라의 여정은 단순한 저항이나 부정으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박사가 죽은 뒤에도 그녀는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의사”가 되기를 선택합니다.



이는 가부장제의 억압을 깨뜨리고 벗어나는 서사를 넘어,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수용한 자리에서 스스로 주체로 서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해방은 페미니즘적 서사의 익숙한 틀과는 다르게, 더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해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 기묘한 세계를 설계하는 미장센의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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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세계를 설계한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 감독은 그리스 출신의 거장으로,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본성을 기괴하면서도 날카로운 미장센으로 포착해 왔습니다. 〈송곳니〉, 〈더 랍스터〉, 〈더 페이버릿〉을 통해 구축해 온 그의 블랙코미디적 감각은 〈가여운 것들〉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거장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단순히 시각적인 충격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이 사회적 억압을 뚫고 스스로를 정의해 나가는 과정을 철학적으로 밀어붙이는 그의 연출력은 오늘날 영화계에서 가장 독보적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지금, 벨라의 여정에 함께해 보세요.


https://youtu.be/HGptTzZQE-w?si=8LVhZQlwr7_AhVH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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