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장 : 분노라는 최후의 방어선

가족이라는 끈적한 폭력

by 흔들리는 민들레


[2부] 정서적 주권 : 붕괴의 폐허 위에 세운 영토



1장. 분노라는 최후의 방어선 : 살기 위해 건설하는 경계



중증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내 성벽 밖의 풍경은 단 한 뼘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와 남편은 더 날카로운 말들로 나를 찔렀다. 내가 아픈 것은 내 탓이었고, 내가 예민한 탓이었으며, 내가 생각을 잘못해서 몸이 약해진 결과였다. 그들에게 나는 치유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라, 집안의 평화를 깨뜨리고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문제적 존재'일뿐이었다.



내 집에서조차 이방인처럼, 혹은 골칫덩이처럼 여겨지는 고통은 약으로도 다스려지지 않았다. 멍한 약 기운 너머로 여전히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들을 맞으며 나는 깨달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내가 사라져 버리겠구나.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도구는 바로 '분노'였다.



나는 비로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의 지시에 "아니요"를 넘어선 고함을 내뱉었고, 남편의 방관에 절규를 쏟아냈다. 그동안 '착한 딸'과 '현모양처'라는 가면에 가려져 있던 날것의 분노가 터져 나오자, 집안은 거대한 진동에 휩싸였다. 그것은 관계의 파멸이 아니라, 살기 위한 처절한 진통이었다.



내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고, 내 고통을 분노로 치환하여 쏟아내자 비로소 균열이 생겼다. 나를 함부로 대하던 그들의 태도에 당혹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남편도 자신의 방식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들에게 차갑게 선언했다.

"더 이상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 “






분노는 나를 괴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짓밟혔던 내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는 지팡이였다. 내가 분노함으로써 비로소 그들은 나라는 사람의 경계선을 목격했다. 끈적하게 엉겨 붙어 나를 질식시키던 그들의 손이 아주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지독하게 불편하고 아픈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다시 태어나는 첫 번째 울음소리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분노하며, 내 인생의 주도권을 친정엄마와 남편에게서 조금씩 빼앗아 오고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분노는 자아를 지키는 최후의 면역 체계다. 그러나 시스템은 부품이 소리를 내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내가 내지른 비명은 단순히 엄마와 남편을 향한 화풀이가 아니라, 나를 ‘착함’이라는 틀에 가둬 영원히 착취하려던 가족 시스템에 대한 최초의 총파업이었다. 내가 생산을 멈추고(가사나 순종), 소란을 피우기 시작하자 비로소 나를 부품으로만 보던 이들이 나의 ‘실존’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주권의 회복이다. 타인의 영토를 관리하느라 황무지가 되었던 나의 내면에 철조망을 치고, 허락 없이 침범하는 자들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하는 일이다. 타인이 규정한 ‘배역’을 거부하고 나만의 ‘감정 주권’을 선포하는 이 과정은, 시스템이 부여한 가짜 평화를 깨뜨리고 불편하지만 정직한 진실을 선택하는 투쟁의 시작이었다.


도널드 위니콧 - 영국의 소아과 의사


공격성의 건강한 승화 - 도널드 위니콧 (Donald Winnicott)

대상관계이론가인 위니콧은 자아가 독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상(부모)을 심리적으로 '파괴(Destruction)'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파괴란 상대를 실제로 해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면화된 부모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공격성'을 통과해야만 타인은 나를 지배하는 주인이 아닌, 나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로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