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과 우정을 나눈다

by 흔들리는 민들레



주어진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알게 되었다. 특별함이 특별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보편적이지 않아서라는 것을.




극복하려 했던 것들은 전혀 극복하지 못했으며, 그 노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나만. 왜 내가.라는 질문을 품고 살아왔던 긴 시간들 속에 쌓여만 가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원망이었다. 원망들은 그들을 향하고 관계를 다치게 하고, 나를 다치게 했다.

그건 운명이었다.

내게서 부모를 바랐던 나의 엄마, 늘 엄마의 짐덩이, 혹이 되어서 살아가야만 했던 외로웠던 어린 시절, 어떻게 하면 엄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엄마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고민했던 나날들, 그래서 너무 일찍 어른이 돼버린 아이... 그래서 너무 일찍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엄마에게 나는 어떤 딸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남편에게 나는 어떤 아내가 되어야 하는 걸까,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들이 원하는 나와, 원래의 내가 충돌했고, 그 충돌을 나는 내 잘못이라고 여겼다.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라서,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지 못하고, 결국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여겼다.

처음 병원을 찾아갔을 때 내가 한 말은,

" 엄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였다.

내 마음이 힘들고 괴롭단 말이 아니라, 엄마에게 어떤 것을 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나는 모두에게 늘 무엇이 되어주려고 했다는 것을 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거짓의 나였다. 진짜 나는 없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운명이다.

아버지의 잘못도, 엄마의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누구의 어리석음 때문도 아니다.

내 잘못도, 내 어리석음 때문도 아니다.

운명이다.

살아온 날들이 그랬고, 그때 그랬더라면, 그때 저랬더라면 이라는 후회는 쓸모도 필요도 없다.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이런 것이다.

나는 내 삶을 그때도 사랑하고, 지금도 사랑한다.

그때의 나도 사랑하고 지금의 나도 사랑한다.

사랑받아 마땅하다.

서투르면 서툴러서 사랑하고 깨달았다면 깨달아서 사랑한다. 실수했다면 실수해서 사랑하고 포기하지 않았다면 포기하지 않아서 사랑한다.

과거의 모든 순간에 내가 있었고, 현재의 모든 순간에도 내가 있기에 이제는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잠>에서 현재의 주인공이 과거의 젊은 자신을 조우하게 한다.

현재의 주인공은 과거의 서툴고 어리석은 자신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한다.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나이 든 주인공은 과거 속 자기 자신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그때에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생은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이 과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지혜를 줄 수 있을까?

그때 했던 선택들이 좋은 선택일지 나쁜 선택일지 지금 판단할 수 있는 걸까?

판단하지도 후회하지도 않겠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인생에 대한 나의 우정이다.

맑은 소주 한잔 조용히 따라주며 그 어떤 말로도 포장하려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우정법이다.

나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