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전하다 환장하겠네
나는 원래 엄청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해서 길을 걷다 신호등 빨간불에 걸리면 내가 가는 방향이 아니더라도 파란불인 쪽 횡단보도로 건너갔다. 1분을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것 보다 3분 더 소비하더라도 계속 움직이는 게 더 좋았다. 한바퀴를 삥 둘러서야 원래 내가 건너려는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웃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 때도 바로 엘리베이터가 곧장 오지 않으면 계단으로 걸어갔다. 잠시라도 서 있어야 하는 에스컬레이터보단 계단을 이용했고, 대학교 때 시간표를 짤 때도 앞뒤 수업을 다른 건물로 짜곤 했다. 수업 사이 어중간한 공강이 생기면 강의실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게 싫었다. 평소 잡념이 많아서 였을까.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일 때가 편하고 좋았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나는 움직였고, 어쩌다 건강해졌다.
나는 원래 엄청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움직이지 않는 직업을 고르라고 한다면, 적어도 은행원이 3위 안에 들 것이다. 아침에 창구에 앉아서 하루 종일 엉덩이 몇 번 의자에서 떼지 않은 채 퇴근을 한다. 심지어 상담할 일 조차 없이 서류작업뿐인 야근에서 움직이는 건 펜대를 굴리며 타자를 치는 오른쪽 전완근뿐이 아닐까? 평소 워낙 움직이는 걸 좋아했기에, 은행원으로서 점잖게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낮 시간 동안은 계속해서 손님이 오고, 저녁에는 밀린 일 처리에 바빴기에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갔지만, 일하는 내내 엉덩이가 들썩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객장 너머 코팅된 유리창을 통해 어렴풋이 보이는 바깥 풍경을 새삼 그리워하며 하루에 몇 번이고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걷는 상상을 했다. 참고로, 보안을 위해 은행에는 시원하게 열리는 창문이 없으며, 입구도 하나밖에 없다. 사실, 창문이 있다 해서 근무 중에 머리를 내밀고 바람을 쐴 것도 아닌데, 어찌나 그 구조가 답답하게 느껴지던지! 내가 어쩌다 이 갑갑한 곳에 들어왔냐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몸이 아니면 입이라도 움직여야지
그래도 영업시간 중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걸쭉한 입담의 슈퍼 아주머니, 매일같이 업무를 보러 왔던 공단 경리 직원,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방관, 철강 제조업을 하는 사장님, 중국으로 수출하는 섬유 사업으로 큰 돈을 벌고 있는 거래처 이사님 까지. 매일 짧게나마 그들이 들려주는 다른 세상 얘기가 참 재미있었다. 원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실이 되는지, 일본에서 쓰던 중고 기계를 사와서 중국에 되팔면 얼마나 쏠쏠한 벌이가 되는지, 프랑스 본사에서 발령받아 온 이사가 얼마나 식성이 까다로운지, 소방관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지 등 앉아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재밌고 신기했다. 몸으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답답함을 입으로 풀어내는 게 은행원의 숙명이었던가. 나도 모르게 하루하루 더 수다스러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 때 대학교 앞 은행원 누나가 그토록 내게 말을 걸었던 건가? 간단한 통장 재발행하러 쭈볏대며 창구에 가면, 예쁜 2번 창구 누나가 쌩긋 웃으며 그토록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었다. 수업을 뭐 듣는지, 학교생활 재밌는지 등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볼일을 볼 때도 그 창구를 가고, 눈 인사 한번 더 해보려 시도했었던 학창시절의 그 은행원 누나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갑갑한 일상에 찾아온 만만한 학생에게 바깥얘기를 들어보려 한 것이었나 보다. 그렇게 그 누나도 답답함을 달랬었나 보다. 나 혼자 그동안 착각했었나 보다.(실제로 입사 후 찾아내 사내 메신저로 물어보니, 나를 기억도 못하더라)
환전하다 환장할 지경
다양한 이야깃거릴 전해주는 고객들 중 으뜸은 환전 고객이었다. 고객들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에 은행을 찾아왔다. 출국 전 은행에 와서 환전을 할 때 그 설렘을 신이 나서 얘기해주곤 했다.
"유로화 1백만 원어치 환전해 주세요"
"어디 여행 가시나 봐요?
"이번에 대학 동창들이랑 서유럽으로 배낭여행 가기로 했어요. 파리로 들어가서 스페인과 독일, 이태리까지 둘러보고 올 거예요. 유럽은 처음이라 너무 기대되는 거 있죠? 아참, 스페인이나 이태리하고 전부다 유로화만 가져가면 되는 거 맞죠?"
"네. EU에 소속된 국가들은 공통으로 유로화를 써요. 사용하시기 편하게 권종 적절히 분배해서 드릴게요. 혹시 파리 가시면 세느강의 바토뮤슈를 꼭 타 보세요. 강변에서 바라보는 에펠탑의 야경이 정말 멋지거든요."
"그렇잖아요 파리에서의 일정이 가장 기대돼요. 몽마르뜨 언덕의 풍경도 보고 싶고, 에펠탑 앞 잔디밭을 걸으며 파리지엥의 감정을 느껴볼려구요. 저녁엔 세느강변에 앉아 친구랑 맥주 한 잔 할 거예요. 너무 기대돼요."
건네주는 외화를 받는 그 순간의 눈빛은 하나같이 기대감에 부풀어 초롱초롱한 빛이 난다. 여행이거나, 유학이거나, 출장이거나 관계없이 모두에게 떠남은 어느 정도의 설렘과, 어느 정도의 기대를 주기 때문인 듯하다. 심지어 그 나라의 돈을 손에 쥐는 순간은 모두에게 '떠남'을 시각적, 통각적, 가치적 현실로 느껴지게 만든다. 사람을 가장 현실적으로 정신 차리게 만드는 '돈'이 이토록 사람을 들뜨게 만들 수 있을까. 환전 고객을 상대하는 일은 즐겁지만, 떠남에 대한 내 욕구를 더욱 부추겼다. 금고의 외화를 꺼내고 넣을 때마다 그 나라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환전업무를 할 때마다 떠남에 대한 욕구가 머리 끝까지 솟아올랐다. 환전하다 환장할 지경이었다.
낯선 동전이 내게로 왔다
여행을 떠났던 대부분의 고객은, 여행이 끝나면 잔액을 환전하러 다시 온다. 그러면 그 여행이 어땠는지, 어디서 무엇을 봤는지를 가장 최근에 여행을 다녀온 생생한 리포터가 되어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던 중 한 고객이 내게 낯선 동전을 선물로 주었다. 외화 동전은 가치가 거의 없어지기 때문에 그냥 기념으로 몇 개 가져와 선물로 준다는 그 고객은 터키를 다녀왔다고 했다. 우리 지점에서 보유하고 있지 않았던 터키 화폐. 그 단위도 너무나 낯선 '리라'였다. 그녀는 터키의 풍경이 얼마나 이색적인지,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가 혼재된 그 거리가 얼마나 흥미로웠는지, 케밥이라 불리는 터키 음식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맛있었는지 신이 나서 얘기를 했다. 그렇게 그 낯선 동전이 내게로 왔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다. 다시금 일상적인 일에 허덕이고, 답답한 현실에 이어질 때 특별한 여름휴가를 계획하게 되었다. 입사 후 2년 만에 처음 떠나는 휴가였기에, 이 세상 가장 낯선 곳으로 나를 데려가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다 문득 서랍에 넣어 둔 터키 동전이 생각났다. 낯선 세상을 돌고 돌아 한국의 한 은행원 손에 들린 이 동전 하나가 내게 터키를 꿈꾸게 했다. 수많은 사람을 공항으로 떠나 보내고, 외국에서 돌아온 사람을 다시 맞이하면서 정작 나는 떠나지 못했던 아쉬움이 갑자기 물밀듯 밀려왔다. 더 이상 화폐로서 사용가치가 없어져 내게 왔지만 이 낯선 동전이 얼마나 큰 위안과 꿈을 주었는지, 그 동전이 터키에서 만들어졌을 땐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다. 그리고 야근을 하는 내내 생각했다. 이 낯선 동전이 떠나온 곳으로 가자. 일상에서 상상도 하지 못한 곳에서 걷고 또 걷다가, 이 동전 만큼의 미련만 남기고 돌아와야지.
나는 올해 터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