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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디 Jul 31. 2020

이직을 잘하면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 되나요?

이직의 때를 기다리며 ep.0


“어린 나이에 이직을 여러 번 했네요?”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면접의 말미였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임원은 실무진이 출력해온 나의 이력서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분명 상대는 ‘이직을 해봤군요!’하는 서술형 문장을 구사했지만, 채용을 망설이는 마음에서 던진 미적지근한 질문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이직이라는 단어를 ‘어린 나이에, 여러 번’이라는 표현으로 앞, 뒤에서 강조했으니 말이다. 실무역량은 확인이 끝났지만, 선뜻 ‘우리 사람’으로 들이기에는 불안하다는 눈치였다. 실무 담당자는 그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 결정권이 없어 보였다. 이사급의 임원은 ‘이번에 이직하면 저희 회사가 4번째네요.’라는 말을 덧붙이고 서류를 내려놓은 다음 나를 응시했다.     


경력직 면접을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는 너무나 명확하다. 어떤 당찬 포부와 동기가 있어 이직을 결심했는지 개연성 있게 제시하면 된다. 하지만 이미 상대는 ‘얼음’이다. ‘이직을 자꾸 하시는 분이시라... 모름지기 회사 생활에 필요한 끈기, 요런 게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는 마음을 깔고 있다. 나를 이미 불안하게 바라보는 상대의 마음을 뒤집는 건, 어디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는 북서풍의 방향을 남동풍으로 바꾸는 일과 같다. ‘저는 당신이 걱정하는 그런 나약한 인간이 아닙니다.’를 그 자리에서 증명한다라. 마음의 빗장이 열리고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라며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극적인 전개는 어디까지나 상상. 이럴 때만큼은 인생이 아주 보편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있는 그대로 말을 했다. 실제로 내가 매 순간 이루고자 했던 목표와 방향성은 명확했으니까. 1과 2 사이, 2와 3 사이, 그리고 3과 4 사이를 설명했다. (1,2,3,4는 각각 다른 회사를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그분은 나에게 이런 피드백을 줬다. “지금까지 부모님의 기대나 세상과 타협하는 삶을 살아온 것 같네요. 더 도전적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는데. 근무기간은 2년 10개월이니 2개월 모자란 3년이고... 뭔가 좀 애매하네요. 좀 더 인내해서 채웠으면 좋았을 텐데.”     


결론적으로는 나는 그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자존심이 센 편이라 그 회사가 아니어도 그만, 이라고 넘기는 척을 했다. 하지만 한동안은 손 닿지 않는 곳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2개월 모자란 경력’이라는 말이 성가셨다. 아무리 내가 주도적으로 살았음을 스스로 자부하지만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이유는 2가지에 있었다. 첫 번째는 무직 상태에서 이직을 준비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잘 살아오셨군요. 지금부터는 저희와 함께 하시죠.’ 사회가 주는 평가가 필요했다. 두 번째는 일말의 자기 의심이었다. 나도 모르는 게 타협하는 지점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2개월 모자란 3년’이라는 비난을 떨칠 수 있는 중요한 답을 찾았다. ‘2개월 모자란 3년이 아니지. 2년 꽉꽉 채우고도 무려 10개월을 더한, 2년 10개월이잖아.’ 유치한 말장난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얻은 답은 다음 행보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주눅 들어 있어 몰랐던 나의 장점을 선명하게 자각하기 시작했고,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생활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지금 나는 '어린 나이에 4번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되어 살고 있다. 




물론 잦은 이직이 무조건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조직이나 동료에 대한 불만을 단순 기피하기 위한 이직은 반복적인 퇴사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무래도 채용 담당자는 구직자의 답변에서 진위여부를 가리는 게 어렵다 보니 '여러 번의 이직 경험이 있는 구직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고수하게 된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의 짧은 업력에서 이직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다 '고인 물'이 만드는 문제가 더 고질적인 경우가 많았다. 타협하고 안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문제는 소리도 없이 조직을 망가뜨린다. 물론 내가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서 하는 단정 짓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채용 담당자의 인식이 이러하다고 해도, 목표가 뚜렷한 '이직 준비생'이라면 이런 유리벽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인내심 없는 지원자로 보이려나, 이번에 옮기면 3번째 회사인데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려나'하고 주눅 들지 말자.


최근 잡코리아에서 직장인 968명에게 '이직 관련 결정'을 조사한 결과, 이직 준비를 실행으로 옮긴 직장인들보다 이직을 포기한 직장인들이 더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집계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90%에 달하는 직장인이 이직을 고려하고,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추석 연휴에 이직을 준비한다. 직장인 56.9%가 '나는 잠재적 이직자'라고 응답한다.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이직 실패 경험이 있다. 직장인 81%가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응답한다.

*문맥상 인용의 재미를 위해 키워드 검색 시 상단 노출된 기사 제목을 임의적으로 나열했다.


감히 고백하건대, 우리는 일면식도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는 셈이다.


결국 대한민국 직장인 대부분은 더 나은 회사에서

 맞는 일을 해보고 은 잠재적 이직자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연봉이 낮거나, 업무량이 과다한가? 본인의 적성이나 역량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거나 회사에서 은근히 불법적인 일을 시키는가? 그 상황에서 ‘내 인생 이게 아니라 저거다’라는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충분히 프로이직러가 될 수 있다. 본인이 해온 업무와 성과를 명확히 직시한 다음, 새로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곳으로 문을 두드리자. 어느 누구라도 원하는 경험을 하고 꿈꾸는 삶을 설계하는 주도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다음 글에서는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에서, 컨설팅 회사로, 그리고 스타트업에서 바이오업계 중견기업으로 넘어온 과정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부끄럽지가 않다면 말이다. (벌써 쑥스럽지만...)


Photo by Clem Onojeghu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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