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아저씨 Feb 04. 2023

4. 갑질하는 교수들을 사랑한다.

교수님 귀는 당나귀 귀

"당신은 빨리 해가 떠서, 회사 가서 일하고 싶어 죽겠지?"

"내가? 회사 빨리 가고 싶지는 않지만, 내일이 오면 회사 가서 뭐를 해야지라고 생각하긴 하지.

 또, 회사가 가기 싫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긴 하지."

아내의 물음에 내가 대답한 말이다.

한 회사를 20년 이상 다니면서 개선하고 바꾸고, 그것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니 보람도 있었고,

그런 것을 가끔 아내에게 얘기하다 보니 아내는 내가 워크홀릭인 사람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런 나에게 어느 날, 회사가 정말 가기 싫은 사건이 발생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취업률이 안 올라서 많이 고민하고 있을 때, 나의 아이디어로

몇 년간 오르지 않던 학과의 취업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 논의하고자 소집한 회의자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갑자기 한 교수님께서 오늘 회의 주제와 상관없는 예전의 일을 꺼내셨고, 그 업무는 실제로

우리 부서의 일이기도 했지만 학과에서 제대로 못해서 지나간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더 잘해보자고 모인 자리에서 굳이 과거의 일을 꺼내 잘잘못을 따지기 시작했다.

따지면 해당 학과에서 취업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료를 잘 챙겨서 줘야 되는데, 

내용을 하나도 모르는 조교에게 던져놓고 교수님들은 하나도 신경을 쓰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학과 조교들에게 설명을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내가 학교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 관련된 여러 기관에 일일이 전화해서  증빙자료를 받아서 

겨우 서류를 보완하여 일부 학생의 취업을 인정받았는데, 취업으로 인정받지 못한 2명의 학생을 

얘기하며 내가 잘못해서 그렇다고 하는 것이었다.


참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것과 같았다.

상황을 설명했는데도, 이성은 없어지고 감정적으로 변질되더니,  더 흥분해서 잘잘못을 따져보겠다고 과거에 관계했던 학과의 후배교수까지 다 불러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아... 이 상황은 뭐지?' 

나의 상급자는 두 분이셨는데, 나이 든 교수가 흥분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고, 호출되어 온 

후배 교수 2명까지 합세하자, 이 상황을 빨리 무마하고 싶은 상급자  두 분은 나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셨다.

'뭐야? 내 편일 줄 알았던 우리 부서 상급자가 내 편이 아니네!'

"내가 왜 사과를 하냐고요? 나는 도움을 준 사람이라고요!!"

3:3의 싸움이 될 줄 알았던 꿈은 깨어지고 5:1로 나 홀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밀려오는 배신감과 억울함에 눈물이 나려 했지만,

'아~~! 이 상황을 끝내려면 일단 사과를 하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하고 사과를 하였고, 

(아직도 난 그날의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교수님은 대단한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어깨를 펴고 휘하 식솔들을 데리고 돌아가셨다.




팩트를 들어보고 판단해 주시거라 기대했던 상급자도 상황수습에 급급했고,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나를 달래려고 또 불러서 다른 얘기를 하시며, 내가 너무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보이니 일찍 퇴근하라고 뒤늦은 배려라는 것을 하는 것이었다.

'아~ 이런 갑질을 직장 내에서 당하고 있는데, 그것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시끄럽지 않게 수습만 하려네.'

'뒤늦은 배려는 필요 없고, 거기서 더 강하게 싸워주면서 팀원을 감싸주고, 식구를 챙겨줬어야지. 이게 뭐냐.'

'나는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일했나!'라는 강한 회의감이 들었다.

그냥 가만히 두었으면 한 명도 인정받지 못했을 것을 괜히 일해주었다는 생각과

오늘 회의도 지속적 취업률 상승을 위한 방법과 심지어 예산확보까지 다 알아보고

기쁜 마음으로 회의를 소집했는데, 그것도 괜히 나 혼자 열심을 내었다는 후회가 아니 환멸이 밀려왔다.

엄청난 스트레스와 뒷골이 땅기는 느낌까지 받고 겨우 집으로 와서 누웠다. 

지난 시간  "해야만 한다"라는 의무감과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했던 일들이 배신감과 후회로 가득 찬 밤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음 날, 도저히 출근해서 일할 기분도 아니고, 밤새 잠을 설쳐서 컨디션도 별로였다. 

연가를 내고 부서장께 전화를 드렸다. 오늘 하루 쉬겠다 하였고, 그러라고 하셨다.

이대로는 오늘밤도 잠을 못 잘 것 같아, 몸을 고되게 해서 잠이라도 잘 자야겠다 생각해서

홀로 등산을 하러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르고 왔더니, 그날 밤은 잘 잘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이런저런 비슷한 일들로 TV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 나오는 사장의 갑질 못지않은

일들을 겪고,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의 상처가 있었고, 그런 일을 겪고 난 뒤에는 사기가 꺾이고 

상처가 아물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기억에서 옅어지고 회복되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

엄마들이 출산의 고통을 겪고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 하지만, 키우면서 즐거운 일들에 그 다짐이

망각되고 또 출산을 하는 그런 것과 감히 비교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름 정리해 본다.



어느 조직이나 좋은 사람, 착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좋은 사람, 선량한 사람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소통을 하지만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비슷한 일련의 그런 일들을 겪으며 그것이 나를 더욱 성숙시켜 주는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고,

그런 갈등을 조정하라고 월급을 받는 거라 좋게 생각하며 지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3. 학생들과 함께라서 더 청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