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부에 접어든 내 삼십 대를 위해
서른 여덟로 시작할까, 시한부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써볼까
다시 내가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키보드 위에 올려진 손가락들은 한동안 일시정지가 되었다. 썼다 지웠다 깜빡이는 커서는 좀처럼 앞으로 나가질 못하고 마음만 조급해져 '모르겠다.'하고 도망치듯 본문으로 향하는 탭 버튼을 눌렀다.
2022년 7월, 무척 습하고 더운 이 여름, 내 나이 서른여덟도 절반이나 지났다.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어 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출근을 하려고 현관문 앞에 서서 하이힐을 신고 있는데 내 흰자의 레이더망에 까만 손톱만 한 것이 들어왔다.
'하... 바퀴벌레다.'
검은 눈동자의 시선보다 빨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동 반사적으로 움직인 오른손은 옆에 있던 새벽 배송 박스 안의 재생 종이를 집어 들었다. 바퀴벌레의 사체를 집어 들고 휴지통으로 옮겨가는 동안 의식의 흐름 속에서 빠르게 스쳐가는 문장 하나가 입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지겨워.'
별 탈없이 3년을 산 집이다. 지은 지 25년 정도 됐다는 거 같았는데, 조금 습하고 해가 잘 들지 않는 것,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위층에서 물이 새거나 아래에서 역류하는 것 외엔 큰 불만 없이 살았다. 나름 디자인을 전공해 가구 배치와 소품들, 조명도 적절하게 활용해 집에 오는 지인들이 분위기가 좋다고도 하는 집이었으니, 2년 살고 계약도 연장했던 집이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바퀴벌레가 등장하면서, 나는 이사를 결심했다.
그만큼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냐고? 아니, 나는 바퀴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키친타월 한 칸 뜯어서 눌러 잡으면 그만이다. (티슈는 너무 얇아서 바퀴벌레 포획용으로는 격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것보단 두꺼운 키친타월을 선호한다.)
이사를 결심하자마자 직방 앱을 설치하고 회사를 중심으로 나온 전월세 매물을 살펴봤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비쌌다. 그럼 무리해서 방 한 칸이라도 내 집을 마련해볼까 했더니, 한국은행에서 '빅 스텝'으로 금리를 올리겠다는 발표 직후여서 현재의 부동산 시장은 아수라장이다.
직장생활 15년, 그 간의 과정은 브런치 작가가 되면 하나하나 풀어가겠지만 여하튼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나는 꽤 번다. 프리랜서로 인터뷰 기사도 기고하고 있어 월급과 합치면 정말 꽤 번다. 그런데 통장 잔고는 늘 마이너스가 찍힌다. 이 또한 늘 익숙한 루틴이어서 이상한지도 모른 채 말도 안 되게 지냈는데, 오늘 아침 만난 바퀴벌레 한 마리는 오함마가 되어 나를 두들겨 팼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게는 마흔의 꿈이 있다. 서점을 차리고 글을 쓰며 살겠다는 꿈.
내 마지막 버킷 리스트라며 늘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는데, 천천히 올 줄 알았던 마흔은 이제 고작 18개월 앞에 있다. 문득문득 마흔의 정수리가 보일 때마다 잠깐 숨이 막혔다가 몰아 쉬지기도 한다.
그래서 시작했다.
수입을 쪼개 어떻게 써야 할지 다시 정비하고, 그럼 앞으로 그것들을 모아 무엇을 할 것인가 구체화하는 일.
순간순간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현타가 올 때마다, 지금에라도 시작하니 다행이라는 합리화 이불을 덮어버린다.
서점을 차리는 자본도 필요하지만, 글쓰기도 시작해야 했다. 도대체 어떤 글을 쓰면서 살겠다는 것인가.
상업적인 돈벌이도 필요하니 인터뷰 기고도 계속하겠지만, 에세이를 숨 쉬듯 쓰며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브런치를 열어 내 서른여덟의 첫 글을 쓴다.
이 자체만으로도 나는 이미 작가가 된 것 같은 망상의 이 순간이 좋다.
막연했던 꿈이 달성할 목표가 되어 이제는 진짜 현실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