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지구인이 되길 소망하며
<디아스포라 기행>을 읽고
<디아스포라 기행> 제목을 본 순간, 읽어야 할 의무를 느꼈다. 그들의 아픔들이 어땠을지 알아야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으니까. 힘없는 내가 할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들에게 어딘가 역사의 부채 같은 게 맘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읽은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 <한강>의 영향이 클 것이다.
‘추방당한 자의 시선’이라는 부제목답게 작가의 차가운 시선이 문장 곳곳에 뿜어져 있다. 냉혹함은 없는 아픈 차가움이다. 두껍지도 않고 글의 양이 많지도 않은 이 책은 참 더디게 읽혔다. 세계 곳곳의 디아스포라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느끼고 글로 담는 동안 디아스포라이기도 한 저자는 얼마나 많은 공감과 흔들리는 혼란과 찌릿한 진통을 겪었을까. 행간에 숨겨진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헤아려보고자 쉬이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디아스포라, 이젠 대문자의 의미보다 보통명사로 더 쓰여야 할 단어다. 각자의 삶에 바빠 외면해온 이들도, 아예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는이들도 많을 것이다. 문득,‘지구촌을 위하여’‘세계인류평화를 위하여’이런 거대한 구호들 안에 디아스포라가 자리할 공간은 있었느냐는 물음표를 던져본다.
“디아스포라에게 ‘조국’은 향수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조국’이란 국경에 둘러싸인 영역이 아니다.‘ 혈통과 문화의 연속성’이라는 관념으로 굳어버린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인종차별이 강요하는 모든 부조리가 일어나서는 안되는 곳을 의미한다. 우리 디아스포라들은 근대국민국가를 넘어서 저편에서 ‘진정한 조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1) 이미 국가라는 틀 속에서 보호받고 있는 우리는 그들의 절박한 소망을 알지 못했지만, 작가의 말이 깊이 와 닿는 것은 그 속에 우리 인류가 진정한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할 참 방향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는 ‘진정한 조국’의 의미는 현재의 개별국가주의를 넘어선 인종, 종교, 이념을 초월하는 평화적 국가관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국적이 한국인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일본에 집과 직장이 있지만 한국 여권이 없으면 일본에서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 또한 일본 정부의재입국허가가 없으면 내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 나를 외교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은 일본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아니라 한국의 재외공관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정말로 나를 보호해주리라는 보장이 없다. ”2) 당연한 것인데 당연한 것이 아닌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불편한 진실이다. 정체성의 혼란과 함께 벽 없는 벽 안에 갇혀버린 숨 막히는 그들의 현실을 보며 패소 공포증처럼 압박 당하는 기분을느꼈다. 한국 국적인 재외 국민을 때로 정치적 수단으로만 행사하고 보호해주지 않는 한국 정부의 냉정함도 보인다. 다수자들에게는 당연한 것, 사소하기까지 한 것을 그들은 평생 재입국 허가증을 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겪으며 살고 있다.
국적을 잃고 망명 생활을 하다, 환멸을 느껴 부인과 함께 자살한 유대인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그 불편함을 더 절실히 전한다.
“여행 때마다 하는 신고, 외국환 증명, 국경통과, 체재허가, 해외여행 허가, 체재신고, 퇴거신고 등의 법적 수속을 수 년간 얼마나 많이 해왔는가. 얼마나 많은 영사관과 관청의 대기실에 서왔는가.(……)국경에서 얼마나 많은 검사며 심문을 경험했는가. 이 모든 것을 전부 다 해보고 나서야 나는비로소 우리가 젊었을 적 자유의 세기, 세계시민이 찾아드는 시대로 믿고 꿈꾸던 이 세기에, 얼마나 많은 인간의 존엄이 상실되었는가를 감지하게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힐문 받고, 등록되고, 번호 매겨지고, 세밀한 조사를 받고, 스탬프를 받는다.3)
-우리가 젊었을 적 자유의 세기, 세계시민이 찾아드는 시대로 믿고 꿈꾸던- 이 말이 아파 눈물이 났다. 100년 전에 젊음을 보낸 그도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본 푸른 젊음이 있었는데, 부대끼고 쫓기는 삶만을 살았던 그가 환멸을 느낀 건 당연하다. 그의 푸른 젊은 날의 아름다운 생각이 안타까워 그저 아프기만 하다. 지나온 역사가, 나의 젊음과 지금의 2.30대들과 겹쳐지며 여전히 그냥 꿈으로만 끝나버리고 있지 않나? 라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신대륙으로 끌려온 2,000만의‘블랙 디아스포라, 하층 노동자가 되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간 차이니즈 디아스포라, 식민지배하에서 조국을 떠나일본, 중국으로 연해주로 하와이로 멕시코, 중앙아시아 등으로 내몰려진 우리 민족 디아스포라도 얼마나 많은가.
지배하고자 하는 극소수의 욕심으로 빚어진 다수의 고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와 닮았지만, 함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속의 붕어 같은 삶들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현대사는 이념의 역사다. 한민족끼리 혈전을 치렀고 여전히현재진행형인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다. 사상이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행해진 고문들은 끔찍스럽다. “비전향수 한 명을 흉악범 여러 명이 있는 감방에 집어넣어 흉악범으로부터 장기간 폭행당하게 하기. 주전자에 가득 넣은 물을 억지로 들이부어 마시게 한 후, 부풀어 오른 위를 짓밟아 토하게하기. 한겨울 영하 10℃ 이하로 내려가는 바깥에 묶어두기.”4) 이외에도 우리는 잔악 무도했던 고문들을 알고 있다. 인간이 어쩌면 이리도 잔인한동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삽입했다.
1967년 ‘동백림 사건’ 때, 독일에서 서울로 연행된 작곡가 윤이상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다행히 국제여론의 항의로 2년 만에 석방되었다.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지은 죄도 없이 사형까지 당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분열이 아닌 민족의 화합, 올바른 민주주의를 갈망한 것이었다. 군사정권 시대가 막을 내리고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을 때 윤이상은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국에 발을 디딜 수 있으리라는희망을 품었으나 귀국 예정 전날 한국 정부로부터 ‘과거의 행동을 반성한다’, ‘앞으로 북한과 절연한다.’는 두 가지 조건이 제시되었다. 윤이상은 이를 거부했고 귀국은 좌절됐다. 인간의 ‘망향의 심정’까지도 철저하게 이용하려는 정치권력의 비열함이5) 문민정부에서도 자행되었다는 게 씁쓸하다.
1973년 9월 11일 칠레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반란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실천하고 있던 인민연합정부를 타도하고 군사정권에 들어갔다. 그들은 인민 연합파로 지목된 자들을 탄압했고 군사정권의망명자 총 수는 100만 명 이상에 달한다고 한다. 가수빅토르 하라의 총살은 더없이 끔찍하다. 기타를 연주하지 못하도록 두 손을 깨는 폭행을 하고 총살했다. 어차피 죽일 거였으면 두 손은 그대로 두었어야지, 죽임도 없어야 했지만, 빅토르는 아마 죽임을 당할 때보다 두 손이 깨지는 고통이 더 컸으리라. 기타연주자에게 손은 생명이니까.
칠레의 민중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읽는데,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겹쳐졌다. 그들이 피노체트의 시대를 살고 있을 때 우리도박정희와 전두환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서의 숨죽인 희망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안식 없는 바다
희망의 울타리
한순간의 그늘에 눈멀지 않고
어떤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으리 6)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7)
여린 붓은 민중에게 여린 불씨에서 강한 횃불로의 힘을 준다.
1945년 해방 직후, 남한 단독선거 저항운동에 가담했던 조양규는 이승만의 통일운동 탄압으로, 일본으로 밀항해 미술공부를 하고 일본 미술계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은 화가다. 일본 정부는 재일조선인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외국인으로 분류해 사회보장정책의 대상에서도 제외해버렸다. 당시 재일조선인의 실업자가 60퍼센트가 넘었다고 한다. 1959년 ‘재일조선인의 북조선으로의 귀국사업’은 ‘인도주의’로 위장한 ‘일본정부의 추방정책’이었다는 것이 훗날 밝혀졌다. 1961년 조양규는 북한으로 귀국했다
조양규에게 일본도 남한도 불안정한 곳이었다. 북한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북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신의예술을 위해 진정한 삶이 있기를 조금이나마 기대했을 것이다. 북한 귀국 후 1년 반쯤 소식이 있었지만, 그 이후 소식불명 상태다. 육지에 닿지 못하고 망망대해에서 위태위태하게 표류하는 작은 배 같다.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세 단어가 분열돼 있다는 것이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라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모어, 모국어의 의미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단어들을 당연히 묶어 생각했는데, 그들에겐 이렇게 복잡한 거였구나. 그래서 그들은 그 혼돈 속에서 때로 방황하고 때로 존재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일 게다.
-자신이 태어나면서 속한 문화를 거슬러 나는 누구인가 묻고 자기 내부의 역사를 발견하고 자기 정체성을 자신의 손으로 구축하려는 행위이기도 하다.-8)
이란계 미국인 순수예술가 시린 네샤트를 지칭해 한 말이지만 성별, 종교, 정치를 떠나 모든 디아스포라가 이런 간절함을 가지고 있으리라.
재일 조선인 1세 시인 김하일의 삶은 그 자체가 암흑이다. 과자공장에서 일하면서 야학에 다니던 15세 무렵, 한센병이 발병했다. 일본의‘외국인등록증 발급’으로 국민연금법적용도 받을 수 없었다. 복지사각지대, 건강한 사람도 살아내기 힘든 환경이다. 그는 거기에 더해 중첩에 중첩의 고통속에 살아야 했다. 두 눈 실명에 이어 손가락도 잃어버린 그는 어떻게 시를 읽고 쓰게 되었을까.
“ 점자로 쳐달라고 해 혀로 핥아보았지만 어쨌든 처음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요. 그래서 계속 하고 있으면 어깨는 결리지. 눈은 빨갛게 충혈되지,눈물은 뚝뚝 떨어지지, 침은 나오지, 종이는 금세 끈적끈적해져요.(……) 언제나처럼 침이겠지 하고 핥고 있으면 (……) ‘어어 이봐, 피가 나와’ 하는 거예요. 혀끝에서 피가 나오는 거지요.”9)
김하일이 자신의 그 처절한 연습과정을 이야기 한 부분이다. 침 때문에 종이가 금방 젖어 오래 핥지도 못한다. 핥는 동안 빠르게 이해하고 기억하고 느껴야 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과연 몇 명이나 버텨낼까. 삶을 지탱해 나갈 수나 있을까. 시각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도 울고 갈 노력 아닌가.10) 더 놀라운 건 조선어 점자도 같은 방법으로 배웠다는 사실이다. 혀로 모국어의 시를 읽고 감동하고 자신의 시를 썼다. <혀로 읽는 시>가 그의노력의 결실이다. ‘피나는 노력을 한 사람’이라는 말은 김하일 시인에게는 주저없이 부쳐져야 할 수식어다. 한번도 단맛을 느끼게 해주지 못한 조국인데, 그는 무엇이 끌려 그리 힘겹게 모국어를 배우려 했으며 모국어로 시를 쓰고팠을까.
일본 속의 한국(조선)인, ‘고려박물관’ 설립자 정조문 선생, 한국에서의 문화독립투사로 간송 전형필 선생을 꼽는다면 그는 재일 조선인 문화독립투사다. ‘조선백자’에 반해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조국애, 그 혼으로 수집하고 사들인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 1700점이 전시돼 있다.
1925년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그토록 조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했으면서도 조국 땅을 밟지 않았다. 분단된 조국은 자신이 원하는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언이 가슴을 뜨겁게 짓누른다.
“단 한 점의 문화재도 유산으로 남기지 않겠다. 통일이 되면 모든 문화재를 조국으로 보내라.”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고통의 수렁으로 내몬 나라를, 그들은 왜 그리도 가슴에 품었을까. 임금차별, 인종차별을 겪으며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 돈을 쪼개 조국의 독립자금으로 흔쾌히 내놓은 우리 민족, 세계 곳곳의 아픈 그들. 이름없는 그들의 숭고한 노력을 찾아보고 기억해야 한다. 나와는아무런 관련이 없다고만 생각했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나의 아픔이나 고통은 그저 생채기에 불과하구나’ 돌아보게 된다.
오늘날의 우리도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많지만, 일제강점기 세계 곳곳으로 디아스포라가 되어 살아야만 했던 그때를, 한국전쟁 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의 하나로 각국의 원조를 받았던 그때를 돌아보며 역지사지의 경험적 사고로,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포용해주려는 가슴여백이 필요하지 않을까.
지구촌이 아름다운 마을을 형성하며 인류평화로 가는 길을 그들 또한 함께 가야 한다. 값싼 권력의 이기심들이 낳은 수많은 디아스포라, 인간으로서의, 개개의 영혼으로서의 그들의 삶을 ‘추방당한 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쓰다듬어 주어야 한다. 국가보다 인류,인간존엄성의 존중에 가치를 두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해나가야 할 때다. 지구 평화의 큰 그림을 위해서.
*** 김지하 시인에 대한 현재의 분분한 평가와 상관없이, 당시 시인의 사고에 비춰 인용했음을 밝힌다.
1)본책 7쪽
2)본책 23쪽
3)본책 197쪽
4)본책 90쪽
5)본책 96쪽
6)본책112
7)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중에서
8)본책 116
9)본책 230
10)<고통의 중첩-김하일 ‘혀로 읽는 시’를 생각하다> 내용을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