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무산 詩 속에서 가려졌던 진실을 보다,정주영의 민낯

백무산 시인께 바치는 글

by 윤아진

시집「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울산 현대중공업 파업투쟁의 결의들로 채워진 시집이다. 현대중공업 파업투쟁은 회사 측과의 단체교섭이 최종 결렬된 1988년 12월 18일부터 89년과 90년 초 2차례에 걸쳐 당국의 공권력 투입으로까지 발전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시집과 함께 진심이 녹아나는 시를, 어설픈 기교가 아닌 살아있는 시를, 가슴으로 읽어갈 수 있는 진짜를 읽었다. 있는 그대로 읽는 이에게 전해지는 피눈물‧피땀의 생생한 현장을, 그리고 화자의 사유들을 읽었다. 많이 읽고 많이 사고했다고 스스로 자부심이 지나쳐 세상살이 다 아는 듯 오만에 차 있는 수많은 지식인들이 낮은 자세로 읽어야 할 시집이었다. 근대 이전 신분제 사회 속의 불평등은 차치하고라도 현대사에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장을 경험해보지 않고는,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을 꼼꼼하게 가슴으로 읽어보지 않고는 그들의 절규를 제대로 알 수 없고 노동자들의 억울한 아픔들을 헤아릴 수 없다.

시를 쓰든 수필을 쓰든 소설을 쓰든 글쟁이는 바름의 바탕 위에서 사고하고 써야 한다. 문학의 힘은 작가 나름의 필력으로 세상의 가려진 곳곳을 찾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교화하는 데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함을 인증받는 이유다.

이름하여 2‧21 식칼테러 회사 측 특별구사대 50여 명이/각목과 쇠뭉치와 식칼과 쇠창/자전거 체인과 쇳조각으로 노동자 60여 명에게 살인테러 자행!
경찰과 백골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니다 비호를 받는 가운데/ 아니다 노동자들이 눈이 뒤집히기를/유도하여 폭도로 몰아서 진압하려는/ 음흉한 수작을 하는 가운데/ 부사장과 상무의 진두지휘에 따라/ 깡패 구사대들 술냄새를 확 풍기며
개새끼들 다 죽여!/ 빨갱이 새끼들 목을 따 버려!
아 치가 떨리고 살이 떨리는 장면/ 식칼이 옆구리에 박히고/ 두개골이 쇠창에 박히고/ 눈동자가 튀어나오고/ 다리가 부러지고 피가 튀고/ 몽둥이가 난무하는 아수라장/ 아 치가 떨리는 학살의 현장이다!
노동자를 죽여 놓고 도리어 뒤집어 씌우려는/ 아 무서운 음모가/ 8천여명의 눈을 뒤집어놓고/ 폭동화시켜 놓고/ 살인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뒤집어 씌워/ 공권력을 투입하여/ 마무리하겠다는 무서운 음모가! -<식칼 살인만행> 부분발췌-

결사대 진영에 백골단을 투입하였다/ 가족들도 어린아이도/ 프로판 가스에 불을 붙이고/ 신나를 뿌려두고 맞섰다
소련을 다녀와서 울산에 가겠다더니/ 북한을 다녀와서 울산에 가겠다더니/ 이제 와서 절대로 안 간다니 우리가 왔다
여기서 해결하지 여기서 담판짓자
혼자서 쓰레기 같은 잡담을 늘어 놓고는/ 세차례 대화를 갖고 계속 노력 중이라고/ 언론으로 떠벌이고 고뇌를 위장하고 명분을 얻었다?/ 경찰은 경찰대로 사전구속영장 떨어진/ 범죄자를 연행하기 위해 백골단 투입? 두 개 명분이 맞아떨어진 날의 조화! / 노동자의 문제를 풀어가는 고뇌하는 명예회장!/ 정당한 법 집행을 강행하는 경찰!
또 한번 그들의 음모에 치를 떨었다/ 인내를 갖고 기다린 결사대/ 4차 대화의 약속시간을 얼마 앞두고/
아녀자까지 아이들까지 연행하였다 / 이 나라 최대재벌의 / 빛나는 사령탑 앞에서/ 굶주리며 추위에 떨며 병 들어 가며/ 얼굴이 갈라터져 가며 싸워 온 노동자! / 누가 묻지도 않건만 근로자를/ 가족같이 여기노라! 노사는 평등하노라!/ 호들갑을 떨던 사령탑!/ 물 한 모금도 화장실 문도 열어 주지 않던 악질들
누가 가난한 집 처마 밑에서 / 겨울밤을 지새우면/ 그 자가 누군들 어찌 그냥 두겠는가/ 오히려 음흉한 계략이나 꾸미며/ 감옥에 처넣을 작당이나 하였다니/ 아 저들과 우리는 한때/ 화해를 꿈꾸어 왔던가 부끄러워라!
사슴과 돼지보다 더 차별적인 것이/ 인간과 인간의 계급관계!/ 잊지 않으리라 박노해 시인이여!/ 아 노동자계급의 깃발은 화해할 수 없는 원한의 핏빛이던가. - <사슴과 돼지> 전문-

1980년대 1990년대 초 학내 시위자들과 시위 군중들을 진압하고 체포하기 위해 구성된 사복경찰관 ‘백골단’이 나온다. 백골단은 군사 독재시대 공포스런 권위의 상징이었다. 정‧경 유착의 확실한 증거집단이다. 백무산의 시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현대중공업 파업투쟁, 그때의 진실을 알 수 없다. 당시 대중매체였던 뉴스와 신문은 입을 닫았고 진실을 왜곡했고 대기업 총수를 찬양했다. 대기업 총수는 신화적 인물로 떠받들며 한 권의 책으로 일대기가 화려하게 기록되어졌지만 노동자들의 수고와 아픔은 어디 한 줄 찾기도 힘들다. 그러하기에 백무산의 시는 산업 역군으로만 뭉뚱거려진 노동자들의 그늘진 아픔을 담은 현대사이다. 백무산의 시집은 전체가 ‘체험 삶의 현장’ 그 자체다.

그는 두 개의 붉은 깃발을 뽑아들고 왔다 / 깃발을 찢으려고 씩씩거렸다 / 깃대를 꺾으려고 끙끙대다가 / 내동댕이쳤다 이성을 잃었다 / 마치 투우처럼 붉은색을 보고 / 코를 벌름거리며 씩씩거렸다 빨갱이 새끼들!
결사대원들은 지하강당에서 기다리다가 싸움소처럼 퉁탕거리며/ 들어오는 그를 보면서/ 분노를 누르고 쓰게 웃었다/
-그 말 취소하고 사과하시오!
어쩐일인지 면담요구를 수락하더니 / 정주영은 초반부터 일방적인 도전을 하였다
- 많이 먹고 확실히 싸워라 /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 부당하다면 회사를 고발하라 / 법대로 해라 법대로 해라!
울산에 내려 가자 가서 해결해 달라!
왜 불법을 저지르나 / 당장 일하러 가라 / 실정법상으로도 우리는 정당하다!
그러면 회사를 고발해라 / 법치국가다 법대로 해라 /북한에 가서 고향에도 가 봤다/ 내가 태어나서 대접 제일 잘 받았다
똑똑히 보았다/ 어떻게 재벌이 되었는가 똑똑히 보았다/ 빚진 놈이 배째라는 식이다 / 법대로 하란다
똑똑히 보았다 자본가의 공식과 배짱을
요약하면 이렇다 / - 너도 고발하면 될 것 아냐? / 법이 누구 건지 알기나 해? / 곰보집 보신탕 맛이 기가 막히더라고!
이 땅의 자본가의 자본축적의 / 공식과 배짱! / 저 돌벽이 대화로 무너지랴! -<법대로 테러하라> 전문

‘너도 고발하면 될 것 아냐? / 법이 누구 건지 알기나 해?’이 한마디에 정주영의 인간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힘과 권력으로 법 위에 군림하는 자신이 얼마나 비루한 인간인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덜먹거리며 자기 식구인 직원들을 조롱하는 현대그룹 회장님이시다.

‘위대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야, 노동자를 무시하면 안 돼.’‘사업은 망해도 괜찮아, 신용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야.’ 성공한 신화의 주인공 정주영의 어록이다. 하지만 그가 노동자들에게 한 폭언들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교활한 위선일 뿐이다. 노사관계에서 평등을 중시하는 기업주라면 사원을 가족 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진부하게 들리지만 사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에 늘 강조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 회사에 바란 건 사람으로서의 생존권에 대한 보장이었을 것이다. 내 가족에게 좀 더 당당한 가장, 동료들과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 너털웃음으로 나누는 삶, 깊은 웃음으로 공감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일상을 가지고 싶은, 그저 기본적인 사람다운 삶을 바랐던 이들, 그 일상조차 어려워 투쟁에 나섰던 그들이었다. 그마저도 외면하고 공권력까지 동원한 기업 총수는 곧 자식을 내팽개친 아버지나 다름없다.

누가 믿겠는가/ 약간의 불황만 닥쳐도 한달에/ 4,5천명을 쫓아내는 공장/ 건설 당시 한달에 5백, 6백시간 일하는 공장
1년에 수십명씩 죽고 수백명이 병신되어도/ 보상은 고사하고 통계치는 대외비/ 지금도 수백명의 진폐환자
언론은 묵비권/ 건설 당시 허구헌날 시체를 들고 와서/ 벌이는 가족들의 눈물겨운 농성/ 누가 믿겠는가
정주영에게 다짜고짜 뺨을 맞은/ 노동자는 또 얼마/ 공사비 줄이려고/ 죽였던 노동자는 또 얼마
그동안 감옥에 처넣어진 노동자는 또 얼마 –중략-
이 모든 것을 상징하는 것이 있다! /현대그룹의 상징물은 피라밋이다/ 그 앞에 서 보면 모두 보인다 모두 들린다
수많은 임금노예의 피와 땀과 눈물과/ 살과 뼈와 고통과 절망과 청춘의 아우성/ 죽음과 원혼과 방탕과 잔악함 위에 세워진 피라밋// 오늘도 누가 누구를 위해/ 저 국적도 없는 빵빠레를 울리는가/ 핏물이 배인 저 피라밋 위에서/
화려한 경제성장의 빵빠레를 울리는가// 오늘도 누가 누구를 위해 무기고를 점검하는가/ 노동자의 시체위에 세워진 피라밋을 지키기 위해 공권력을 준비하는가/ 피를 부르는가/ 병력을 준비하는가. -<노동자의 원혼 위에 세워진 피라밋>- 부분발췌

‘수많은 임금노예의 피와 땀과 눈물과/ 살과 뼈와 고통과 절망과 청춘의 아우성/ 죽음과 원혼과 방탕과 잔악함 위에 세워진 피라밋’ 작금의 현실에서도 보듯 하나마나한 소리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토록 고통의 지옥 속을 헤매일 때 왜 그들의 고통을 대변해 줄 언론은 없었을까. 언론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엎드려 그들의 언어만을 전달하고 그들을 위한 빵빠레를 울리는 데만 집중한 탓에 화려한 경제성장의 빛은 한껏 노출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폭압으로 밟고 짓누른 노동자들의, 숨쉬기조차 힘든 흑빛 그늘들은 그대로 파묻히고 묻혀졌다.

비평가들은 노동시들을 ‘언어미학의 고갈’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현재의 노동문학이 보다 높은 예술적‧사상적 성취를 달성하려면 노동자 작가의 과학적 세계관이 강화되어야 하고 이와 함께 이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백무산의 시에 대해 ‘시적 형상이 쇠퇴하고 평면적인 서술과 주관적인 감동 및 격분(구호)으로 일관해 작품의 예술적인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문학적 사고에서는 부분 공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공감은 대부분의 삶을 글로만 경험해온, 혹은 어설픈 작은 체험으로 잔인한 노동자들의 삶을 다 아는 듯 떠드는 순수 비평가의 입장에서만 볼 때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단면적으로 보면 인문학과는 거리가 먼 산업현장에서 기계를 만지며 기름 묻은 삶이 일상이었던 이가 그 일상들을 시로 엮어간 삶 자체가 놀랍지 않은가. 20대의 그 푸른 청춘을 오롯이 기름빛의 삶속을 버티며 살았던 청년 노동자의 눈물의 흔적들, 그것만으로 충분히 훌륭하지 않은가. 백무산의 시가 없었다면 어디에서 국내 굴지 대기업의 숨은 횡포들을, 노동자들의 생생한 억울함들을, 위험한 현장들을 알 수 있었겠는가.

한국적 통념의 소위 지식인 시인들의 시대 비판시들은 때로는 공허한 감정만을 늘어놓아 지리멸렬함으로 시의 느낌을 어지럽힐 때가 많은데 비해 백무산의 시는 자신이 체험한 노동현장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여 현장을 고발하고 문학이라는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지식인 시인들이 토해낸 욕설‧외설들의 입에 담기 힘든 날 것들과 때로 알 수 없는 언어배설들은 '형식의 파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추켜세우면서 있는 그대로 족한 노동현장 고발시에까지 굳이 언어미학을 찾으며 시적 한계라 비평해야 할까? 자연이 자연 그대로 있어줌이 좋은 것처럼 그것이 아무리 詩라고 해도 때로는 꾸밈없는 사실적 글이, 아이들의 해맑은 말들이 그것 자체로 시가 되는 것처럼 노동시는 그 자체로 온전히 현장의 고뇌와 고통, 위험을 전하는 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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