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세편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e Mar 05. 2019

개인을 지배하는 욕망의 언어

#2. <훈의 시대>를 읽고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기억하십니까

이 책의 말미에 나왔던 아름다웠던 장면. 사람들이 두 김민섭을 응원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가장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 그냥 잘 되었으면 하는 순수하고도 선한 마음




욕망의 언어, 훈(訓)


표지만 봐도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그려진다

훈계, 훈화, 교훈, 사훈 등등 우리 사회엔 무수히 많은 훈(訓)이 존재한다. 집단에 소속된 개인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지배계급이 생산한 권력, 한 시대의 욕망이 집약된 트렌드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우리의 일상에서 개인을 교육해온 언어다


학교의 훈


교훈 중 가장 인기가 높다(?)는 '성실'

지역에서 나름 명문인 학교 혹은 역사가 긴 학교를 나왔다면 학교 정문 근처에서 '저런 돌은 대체 어디서 구하나' 싶을 정도로 큰 돌에 지성, 협동, 근면, 성실 등이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 일제강점기 혹은 해방 전후에 만든 것으로 이 사회의 '역군'을 길러내기 위한 자체 슬로건 같은 경향이 있다. 즉, 사회적 개인보다는 온전한 개인으로서의 존중이 더 절실한 이 시대에는 다소 동떨어진 교훈이라는 것


게다가 여중, 여고는 전근대적인 여성상을 교가에 드러낸 것이 많아, 2019년을 살고 있는 온전한 개인이 보면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예시는 책에 아주 자세히 기술).


그중 일부는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지금 시대에 맞게 바꾸기도 했으며, 동문회 선배들의 반대로 무산된 곳도 있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시대에도 '그때'를 살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며 심지어 영향력이 강하다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던 대목


회사의 훈


우아한 형제들의 일 잘하는 방법 시리즈 패러디. 이게 리얼 아닌가?

교훈이나 급훈에 해당하는 정도의 '사훈'은 이제 유수의 대기업에서도 찾기 힘들다. 당해연도의 슬로건이 있다든지, 대표이사 바뀔 때 경영 방향을 보여주는 슬로건 같은 식의 것들만 존재한달까? (물론 한자로 도배된 심지어 반짝이는 액자에 잘 걸어놓은 곳도 있겠지요)


오늘날 회사의 슬로건은 예전처럼 단순하고 딱딱하지 않고 굉장히 치밀하면서도 세련됐다. 조직에 속한 구성원이 뭔지 모를 자부심에 슬며시 녹아들게끔 말이다.


작가는 조직을 지배하기 위에 언어를 선점하는 회사, 자신과 회사를 동일시하는 개인을 통해 나타난 역효과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맹목적인 개인이 되지 않기 위해 다각도로 사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느낀 대목


언어를 쌓아가는 일은 벽돌을 쌓아 건물을 올리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p.158)


개인의 훈


말할 것이 아예 없는 인생인가 보다

나에 맞선 강한 상대들 그리고 서로가 더 특별하고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경쟁하며 벌어지는 무한 파워 인플레. 이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로 대변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도 과금 유도가 대놓고 눈에 보이는 모바일 게임의 이야기도 아닌 주거 이야기다.


상대적인 자기만족의 영역에서 더 특별해지고 싶은 개인의 욕망에 저렇게 눈에 보이는 식으로 자극을 주는 것이다. 처음엔 아파트가 생기더니 그 후엔 브랜드 아파트가 그리고 요즘엔 써드 브랜드로 다시 한번 차별을 준다.

이후엔 '휴거, 빌거'란 말이 생기고 단지 내 외부인 통행을 막기 위해 벽을 친다. 욕망 월드에 입성한 보상 심리가 이기주의로 발현되는 순간


그것이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것과 별개로 누군가에겐 상대적 특별함을 더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든다니, 재산과 지위로 대변되는 개인의 훈(訓)은 이토록 무섭다.




짧지도 굵지도 않은 솔직한 총평


"나의 부족함으로 여러모로 아쉬운 글이 되었다."


내가 뭐라고 작가를 직접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고, 본인이 에필로그에 적은 문구가 소감으로 쓰기에 적절하여 가져와봤다. 이미 사회적 개인이 아닌 온전한 개인으로 살고 있거나 노력하고 있다면 쌀로 밥 짓는 당연한 얘기가 될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여전히 '그때'를 살고 있는 그분들의 자리에 몰래 선물하기엔 좋은 책. 오히려 작가가 <논란의 교훈 바꿔주고 온 썰>로 어느 학교에 기습 방문하는 영상을 만들었다면 신선하고 특이한 시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발한(?) 상상도 해본다.


프롤로그에 언급한 '작가의 필연적인 제안'이 되려 독자 혹은 개인을 계도해야 할 무지몽매한 대상으로 낮춰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과 함께 두 번째 B급 북리뷰도 여기서 끝



매거진의 이전글 영상 관련해서 가장 도움이 됐던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