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영화 리뷰

영화 <자백(2020)> 리뷰

오로지 각본과 대사의 힘만으로

by 당첨자

※ 스포일러 포함


원작의 존재

영화 <자백>은 스페인 스릴러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허나 포스터나 예고편에서는 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아무래도 반전이 중요한 작품이기에, 차라리 숨기고 들어가는 것이 감상에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마케팅인 것 같다. 아무튼 원작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아연하여 <인비저블 게스트> 세 번째 감상에부터 돌입해야 했다. 나에게 그 영화는... 매번 시작해놓고 끝까지 보지 못하는 영화였다. 더 정확히는, 보았다는 것조차 까먹고 새로 재생하는 영화에 가까웠다. 정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극이고, 마지막 반전을 모르면 보았다는 것 자체를 잊을만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머리에 힘주고 끝까지 보았다. 중후반까지는 원작이 왜 스릴러 마니아에게 입소문을 탄 건지 의문이었다. 낯선 언어로 진행되고, 밀실 속 두 배우의 대치로 이루어지다 보니 집중력을 잃으면 지루해지기 십상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폭발을 보고 이해했다. 이 시나리오는 추리 소설과 결을 같이하고 있다. 원작 소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없었다. 순전히 감독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재능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한국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리메이크했다는 건지 궁금해졌다.


호텔이 아닌 별장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자백>은 원작과 달리 별장에서부터 문을 열어준다. 원작의 주 무대는 호텔 객실이었기에 여기서부터 의도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제3의 공간인 호텔과 달리 별장은 유민호(소지섭 분) 처가 소유의 공간이었고, 이는 존재부터가 유민호에게 유리한 장소다. 양신애(김윤진 분) 변호사는 불리한 적진에 직접 쳐들어가 예비 의뢰인 유민호를 상대한다. 반전을 이미 알고 있는 나는 양신애의 차림새를 유심히 볼 수밖에 없었다. 헤어 스타일과 눈 색깔의 스펙트럼이 넓은 서양권에 비해 한국에서는 안면 인식을 농락하기 어려웠다. 그 대신 감독은 애초에 피해자 모친을 비밀로 부쳐 훨씬 그럴듯하게 전면승부했다. 안면 인식 혼선보다는 이쪽이 좀 더 납득 가는 속임수였다.


독보적으로 반짝거리던 나나의 연기

<자백>을 볼 때 거슬리던 지점을 굳이 꼽자면, 배우들이 오디오북 녹음하듯 연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극본이 중요한 영화라 톤이 연극처럼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눈 감고 들어도 귀에 쏙쏙 박히는 게 오디오북을 듣는 것만 같았다. 대사 전달력은 좋았지만 생활감은 좀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허나 그중에서도 나나의 연기만은 발군이었다. 드라마 <굿 와이프> 이후 처음 보는 연기였는데, 진술 번복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톤을 잘도 잡아내고 있었다. 극 중에서 가장 실존하는 듯한 생생함이 있었다. 다른 배우들에게도 <자백>은 색다른 연기를 선보인 장이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나나가 제일 물 만났다고 생각한다.


원작과는 다른 후반부

<자백>은 원작을 충실하게 구현한 영화이다. 산길 도로를 담는 카메라 구도는 심지어 원작을 빼다 박은 정도였다. 따로 비틀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감 없이 후반부까지 편하게 감상했다. 그런데 <자백>의 반전은 양신애의 실체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동안 계속 원작과 빗대면서 보기만 했는데 진짜 감상은 후반 15분부터 시작이었다. 이로써 왜 이 영화가 호텔이 아닌 유민호의 별장에서 시작된 것인지 이해가 갔다. 개인적으로 원작보다는 한국판 결말이 유민호 캐릭터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보였다. 유민호라면, 첫 만남의 대화만으로는 변호사를 덥석 맹신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15분만으로도 만족을 느꼈다. 이 영화는 극장동시 VOD로 구매해도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리메이크 잘했다. 캐릭터를 얼마나 공부했는지 느껴지는 모범생스러운 답안이었다.


중국에서의 리메이크

<인비저블 게스트>는 중국에서도 리메이크 예정인 듯하다. 아직은 카더라지만 허광한 배우가 함께 언급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기대감이 치솟았다. 허광한은 로맨스 연기도 잘 하지만, 드라마 <양광보조>와 <지앙 선생의 딜레마>에서처럼 비밀을 간직한 음험한 캐릭터 연기도 굉장히 잘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중국이 의외로 정적인 스릴러도 잘 흡수한다고 생각해서, <바람의 소리>처럼 심리전을 잘 그려내 날아다니길 희망한다. 중국판에서는 과연 마지막 반전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한국과는 다른 매듭을 지을 것 같아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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