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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Apr 15. 2024

살고 싶기 위한 글

#굉음 에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 윤동주 「서시」 중     


공황 장애를 빼고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러나 나는 입에 올리기도, 입에 올리기 위해 머릿속에 떠올리기도 지겨운 그 단어를 제외하고는 나를 설명할 방법을 잊어버렸다. 나 역시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복합 다면체이지만 공황은 그것들을 깔때기처럼 한 점으로 소급한다. 난 모든 걸 공황 탓으로 돌리기 일쑤고, 공황을 빼고서 나를 해석할 뾰족한 도구가 없고, 그런 나를 게으르다 여기고, 타자화된 시선으로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고 다그치고, 그러다가도 다시금 나 자신에게 다정하고 너그러우라 요청한다. 그마저도 내가 나의 응석받이가 되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느껴야 할 불안마저 거부하며 마비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뫼비우스의 띠를 돈다.


헬스를 열심히 하고 있다. 헬스 이전에는 세미나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고, 동인지에 에세이를 투고했고, 요가를 했고, 아티스트 웨이를 했고, 소설 강좌를 수강했다. 지금은 헬스에 꽂혀 있지만 언제 그 약발이 다할지 알 수 없다. 헬스도 종국에 날 버릴 수 있으니 조금씩 다른 활동을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난 내가 아니라 그것들이 날 버린다고 표현한다. 나는 여전히 추구하지만 내 신경이 그것들을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건 약물뿐이다. 약을 먹는 건 쉽지 않지만 가장 쉬운 일이다.


작년 연말은 행복했다. 마음 풍요로운 12월을 보내고 2024년이 밝았을 때 난 그래프가 방향을 틀어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했음을 느꼈다.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쓰나미를 바라보듯 기다렸고, 1월에 식욕 부진을 앞세워 공황이 재발했다. 당장 치고 올라오는 증상은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무장 상태였다. 기다린 만큼 대비가 되어 있었고, 주변 사람들과 그간 받아온 상담 덕에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난 좋은 사례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또 재발해도 어찌어찌 잘 넘길 거라고 생각했다. 10년을 가건 20년을 가건 평생을 가건 말이다.


공황이 재발하는 계기가 있다. 취약한 곳이 건드려질 때 스파크가 튀며 작은 구멍이 난다. 그럼 속에서 압력 상태로 있던 불안이 구멍으로 증기처럼 뿜어져 나온다. 내 시대라는 듯 구름처럼 자욱이 내려앉는다. 사고회로는 고장 나 덜덜거린다. 식욕 부진이 오고 외부 자극은 피부에 닿는 사포처럼 느껴진다. 하루에 나눈 모든 대화가 잠자리에서 하염없이 곱씹어진다. 상념은 늘 후회와 자책과 번민으로 점철돼 결국 전체 생에 대한 파국적 결론으로 치닫는다.

나는 더 이상 살아갈 도리가 없다는.


수면장애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영양 섭취와 수면에 문제가 생기니 생활 리듬이 무너지고, 보스몹의 등장처럼 무기력증이 온다. 무기력증의 터널에 진입하면 언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제법 감출 수 있게 되었지만 사실 얼마나 티가 나는지 알 수 없다. 공황 3년차가 되니 이렇게 돌아가는 회로를 고장이라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고장인 줄 모를 땐 그것이 현실이라 믿었다.


공황 장애 환자는 피복이 벗겨진 전선과 같다.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이 결핍돼 있다.  비상시에만 울려야 할 경보기가 작은 먼지에도 오작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무균실에 머물려 한다. 나는 말과 뉘앙스에 예민한 사람이라 어느 한마디에 촉발된다. 1월에는 직장을 다시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엄마의 말이었고, 이번 4월에는 너 에세이 안 쓴 지 오래되었다는 나래의 말이었다. 그게 동의할 수 없는 명제였다면 움찔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실은 날카롭게 침투한다. 피복 없는 전선을 때린 말에 파직 불꽃이 튀었다. 예전의 나라면 풍선처럼 펑 터져 버렸겠지만 지금은 피시시 바람이 빠지는 양상이다. 꾸준히 받아온 상담 덕에 한 겹 코팅 정도는 된 듯하다. 이럴 줄 알고 끊어둔, 몸을 피곤하게 만드는 여러 강좌들 덕에 4월은 내게 느낄 시간을 잘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알아본다. 싱크대에 쌓여 방치되는 그릇들. 방치되는 집안일은 내 무기력증의 징표다. 징글징글하게도 손대기 싫은 설거지, 청소, 빨래, 옷 정리, 분리수거 따위들. 방바닥에 떨어진 고양이 털뭉치를 손가락으로 집어 쓰레기통에 버릴 힘이 내게는 없다. 30분이면 해치울 설거지를 시작할 힘이 내게는 없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냄비 하나를 닦을 힘이 내게는 없다. 외부에 내보이는 삶 이면에서 나를 돌볼 힘이 내게는 없다. 나는 책을 읽지 않는다. 글도 쓰지 않는다. 나는 모든 면에서 무능하다. 일인분의 삶을 살기에 역부족이다. 작가라니 어불성설. 이 삶은 총체적 난국이다. 나 같은 게 어디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나와 엮인 내 부모가 불쌍하고 내 고양이들이 불쌍하다. 온갖 인연을 달고 태어나 죽어버릴 수도 없게 된 내가 난감하다. 나를 불행의 근원으로 삼아 퍼져나가는 연민. 이 지점에 다다라 난 내가 고장 났다는 걸 알아챈다.


내 상태를 말하면 사람들은 날 위에서 내려다보듯 말하기 시작한다. 내 취약점을 알았으니 자신이 상위 포식자가 된 듯 날 계도할 먹잇감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정신과 질환은 더 취약하다. 내 증상을 말했을 때 날 여전히 동등하게 바라봐주는 사람은 환자 동지들과 상담 선생님 정도다.


얼마 전 전 회사 차장님과 점심을 먹었다. 왜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냐고 묻기에 요새 공황이 재발해 불안증이 좀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차장님은 요즘엔 병원 가면 누구나 한두 개는 진단이 나올 거라고, 단지 병원을 가느냐 안 가느냐의 차이라고 대꾸했다. 며칠 전 나래도 같은 말을 하던 게 떠올랐다. 나래는 웬만한 사람도 환자로 만드는 의료 자본주의 시스템을 꼬집던 말이었는데 난 나의 증상을 꼬집는 말로 오해했다. 그렇게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반박하자 나래는 곧장 자신의 말을 철회했다. 그러나 난 차장님에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병원을 가느냐 안 가느냐의 차이를 구구절절 설명할 자신도, 시간도 없었다. 나를 사례로 풀어놓기도 싫었다. 회사를 뛰쳐나와 갓생을 사는 줄 알았던 내가 앓는 소리를 하자 차장님의 표정이 미묘하게 포식자의 표정으로 바뀌던 걸 난 느껴버렸다. 그런데 실은, 그것도 내 불안의 섣부른 방어기제이거나 오작동인지 모른다.


발병이 인생을 전과 후로 나누고, 발작이 일어나 내가 미쳐간다고 느끼고,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이곳이 이제껏 내가 살던 세계가 아니라는 공포를 겪는 자라면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 병원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는 데에는 대가가 따른다. 살고 싶어 애쓰는 것과 살고 싶기 위해 애쓰는 것의 간극을 타인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지 난 모른다.


이것은 내가 예전에 일상에서 버티며 튕겨내는 스트레스와는 다른, 머릿속 어딘가가 확실하게 고장 난 질병이다. 겉보기에 같은 양상으로 드러나지만 공황 장애는 그저 저마다의 싸움이다. 같아질 수도, 동기화될 수도 없는 각자의 고통의 근원이 있고, 그러한 사실의 공유만이 그들을 통칭할 수 있게 해주는 가느다란 울타리다. 그 안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이 통용된다. 그래서 때론 정신과와 담을 쌓은, 공황 장애를 외계 물질처럼 신비롭게 바라보는 사람이 오히려 편안하기도 하다. 적어도 그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여긴다.


여기까지 쓴 나는 누군가 이 글을, 내 고통을 과대 포장하며 징징대는 글로 여길까 두렵다. 그것도 맞고 난 여전히 이놈의 지긋지긋한 공황을 끊임없이 발화하며 푸념한다. 나만큼 내 주변인들도 때때로 재발하는 내 공황을 지겨워할까 봐 무섭다. 그래서 직접 발화를 멈추고 허공에 암시를 던진다. 별일 아닌 듯 일상어로 말한다. 각 잡고 토로하는 짓이랄지 전화통 붙잡고 우는 짓은 이제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또 그것대로 서운해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얄궂은 딜레마가 수레바퀴처럼 굴러가고, 그사이 나는 또 괜찮아지고, 또 아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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