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아니요

#에세이

by 당최

20221128


엄마가 전화해서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뭐 해?” 엄마 친구 딸이 용인에서 결혼식을 하는데 혼자 찾아가기가 어려웠나 보다. 차로 데려다줄 수행원을 요청했고 난 간만에 자식 노릇 하겠다 싶어 흔쾌히 수락했다. 큰 시름 놓은 듯 푹 쉬던 한숨에서 내게 부탁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망설임과 고민이 다 그려졌다. 엄마와 나는 쉽게쉽게 부탁하는 편한 사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불편한 사이도 아니고 좀 애매하다. 둘이 있으면 딱히 나눌 얘기가 없어서 TV 뉴스를 틀어놓고 대통령을 욕하며 같은 관점을 확인해야 하는 사이다.


두어 시간 차를 몰아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엄마는 목소리를 높이며 몇 번의 통화를 한 끝에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그중엔 나처럼 엄마를 모셔온 수행원 딸이 하나 더 있었다. 그 딸은 이동할 때마다 아주머니의 손을 꼭 붙들고 걸었는데, 난 그 모습을 보며 ‘저 둘은 참 애틋하네. 난 저런 거 안 되는데.’ 생각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 아주머니는 다리가 불편해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럼 그렇지.’ 안도하는 내 마음이 괜히 치사했다.


20년 전 같은 마트에서 일한 여사님들 모임이었다. 엄마는 아랫사람에게 잔소리하는 대신 스스로 칼같이 모범이 되던 팀장이었다. “그 여자들하곤 수준이 안 맞아.” 집에 와서 푸념하던 엄마는 그 수준 안 맞던 여자들과 20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식이 끝나고 피로연실로 왔다. 두 딸은 빈 테이블을 찾거나 병을 따거나 접시에 과일을 담아오거나 하며 묵묵히 수행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한 분이 두 딸의 공치사를 해주고 싶었던지, 역시 엄마 챙기는 건 딸밖에 없다며 가부장제 속담 같은 문장으로 딸 칭송의 장을 열었다. 내 엄마도 맞장구치며 말했다. “그리고 딸은 나이 들면 친구가 되잖아.” 두둥탁. 나도 모르게 접시에 박고 있던 고개를 파뜩 들어 엄마를 쳐다봤다. 뭐지. 딸이 옆에서 멀쩡히 듣고 있는데 굳이 그런 거짓말을. 설마 진심인가. 아니지, 엄마? 친구들 앞이라 그냥 한 말이지?

3년 전쯤 일이다. 이후로 그 말이 가끔씩 떠오를 때마다 고개를 갸웃했다.


서운함의 목록이 존재한다. 13살에 등굣길에 노숙자에게 성추행을 당하고서 집에 와 털어놓자 엄마가 했던 말. “그 아저씨가 네가 예뻐서 그랬나 보다.” 22살에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2차 가해를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응급실에서 살아 돌아왔을 때 날 앉혀놓고 했던 말. “걔는 네가 좋아서 그랬나 보지. 그래도 넌 그러면 안 됐지. 넌 우리 가족을 다 버린 거야.” 남자들도 설거지를 하라는 선언으로 집안에 파문을 일으킨 재작년, 모두가 어떻게 행동 양식을 바꿔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때 둘이서 국수를 먹으며 했던 말. “너는 그냥 네가 설거지하기 싫어서 그런 거잖아. 엄마 혼자 설거지하고 있으면 도와주고 싶지 않아?” 날 게으른 불효녀로 만들던 일타쌍피의 문장. 마트에서 야근하는 엄마 대신 가족들 저녁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청소기 돌리고 세탁기 돌리고 빨래 개고 지긋지긋하게 빈자리를 채워온 학창시절이 무색해지던 말. 나에게 고맙다고 한 적 없는 것처럼 남동생에겐 한 적 없을 그 말.


올해도 있었다. “그 사장 아들도 병신이지. 나이가 서른이 넘어서 직장도 없고 엄마랑 온천 다닌다니깐.” “그럼 안 돼?” “아니, 지가 연애를 해야지.” 공황증으로 자주 엄마 집을 찾던 시기에 면목 없이 호다닥 뛰쳐나오게 만든 말. 서른이 넘은 정도가 아니라 마흔인데다 결혼도 안 하고 연애도 안 하고 (직업은 있으나) 직장도 없는 나는 병신의 조건 중 하나라도 면하기 위해 이제 명절 아니면 웬만해서 엄마 집에 가지 않는다.


작년 6월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고 공황증을 겪었다. 퇴사 일주일 후에 엄마 집에서 처음 발작을 일으켰다. 그때 엄마는 울컥울컥하는 날 안아주려 ‘시도’했는데, 내가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랬는지 날 안아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 그랬는지 자세가 어정쩡했다. 엄마는 내 어깨 주위에 팔을 둘러 손바닥으로 등을 짚고 그냥 있었다. 엄마와 내 몸 사이엔 한 뼘 넘는 바람 숭숭 틈이 있었고 팔도 어색하게 벌어져 있었다. 난 그 와중에도 이건 안은 것도 아니고 안 안은 것도 아니고 애매한데 싶었다.


공황증 한가운데서 같이 병원 가던 길에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아직은 여자는 남편 없이 힘들어.” 그런가 보다. 엄마가 보기에 난 남편이 없어서 이 일들을 겪나 보다. 집에서 예민과 불안이 독처럼 온몸에 퍼질 때 엄마에게 지나가다 무심코 뭐라고 했던 말이 걸려 톡으로 사과했다. 엄마는 ‘그럴 일 아닌데? 무뎌지렴.’ 하고 답장했다. ‘그럴 일 아닌데?’는 괜찮았는데 ‘무뎌지렴’은 내 예민함을 비난하는 비수 같았다.


그 바람 숭숭하던 틈은 엄마와 나 사이의 거리였다. 우린 접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엄마로서 딸로서 서로가 필요한 순간에 이를 요구하기가 어렵다. 결정적인 순간엔 삑사리가 난다.


엄마들은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친구나 이모와 통화하면서 쩌렁쩌렁하게 하는 때가 있다. ‘딸은 나이 들면 친구가 되잖아.’ 그때 그것도 나 들으라는 쩌렁쩌렁한 외침이었을까. 엄마는 오랜 세월 나의 보호자였고 대개 내 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만이 내 편이어야 할 때 등 돌리던 엄마의 모습도 선명하다. 엄마는 엄마의 입장을 내려놓고 딸의 입장이 되어준 적이 없다. 그러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온 나라가 무너질 테니까. 가정불화를 겪던 중학교 때 내가 엄마에게 술을 따라주며 아빠랑 이혼하라고 읊조리던 밤, 난 엄마에게 친구였을까. 이후 난 그 괘씸한 말에 대한 죄책감에 더더욱 아무것도 모르는 딸의 위치를 지키려 해왔다.


인간 대 인간으로 보면 엄마와 난 상사와 부하직원 정도가 적당한 만남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와 나에게 가능한 건 TV 보며 한마음으로 윤석열을 욕할 때 친구 같은 기분을 느끼는 정도? 엄마와 친구하기 싫다고 거절하는 것도, 엄마 당신과는 친구 못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린 다른 무엇이 아니라 엄마와 딸이란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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