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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최 Mar 18. 2022

음향과 분노의 록페스티벌

#앤솔로진 3호 투고글

2011년 7월 마지막 주말, 용인에 위치한 지산포레스트리조트(이하 지산리조트)에서는 쾌락적인 음향이 대기를 뒤덮은 가운데 고통과 분노의 아우성이 들끓고 있었다. 우리나라 록페스티벌 최고 흥행기의 중심에 있던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이하 지산록페) 현장이었다.


2010년 <무한도전> 팀이 지산록페 무대에서 공연한 에피소드가 방송된 후 록페스티벌은 마니아층이 향유하던 문화에서 일반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축제로 격상했다. 2010년 지산록페의 맑고 쾌청했던 기상에 속은 수많은 이들이 이듬해 여름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전년과 달리 2011년의 지산록페는 끝없이 비가 내리는 지옥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하늘은 내내 어둡고 땅은 내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청명한 하늘빛 배경의 포스터와 달리 페스티벌 현장은 칙칙한 회색 일색이었다. 각양각색으로 차려입고 온 수만 명의 야심 찬 패션은 빨강, 노랑, 파랑, 흰색의 변주가 전부인 비닐 우비로 소급되었다. 어느 방향을 보아도 네 가지 색을 띤 우비 요정들이 춥춥하고 싸늘한 대지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했다. 귀여운 우비 때문에 요정처럼 보여도 실상은 비에 쫄딱 젖은 좀비 떼와 다름없는, 대자연 앞에 하등 보잘것없는 인간 무리들의 음산한 풍경. 그들이 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무대로부터 광광대며 울려 퍼지는 음향이었다.


공연은 계속되었고 음향 또한 계속해서 사람들을 홀리며 무대 앞에 붙잡아두었다. 나 또한 좀비화된 우비 요정이 되어 무대 앞을 떠나지 못하고 젖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꿉꿉한 공기와 안경알에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자꾸만 시야를 가렸다.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비닐 우비가 젖은 살에 끈끈하게 달라붙으며 제동을 걸었다.

빗줄기가 거세지자 사람들은 점차 무엇이든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이 조금이라도 비를 덜 맞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단 하나의 용도로 재정립되었다. 우산이나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이들은 품위를 잃지 않은 상류층에 속했다. 평민들은 돗자리나 매트 따위를 머리 위에 썼다. 그것들은 이미 깔고 앉는 게 아니라 머리 위에 쓰는 도구로 바뀐 지 오래였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은 내용물을 비운 보냉 가방이랄지 경첩이 떨어져서 분리된 아이스박스 뚜껑이랄지 다 젖은 수건 따위를 의미 없이 뒤집어썼다. 떨어지는 체온을 끌어올리기 위해 우리는 계속 먹고 마셨는데,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빗물이 섞여 있었다. 손에 들린 맥주잔은 아무리 마셔도 맥주가 줄지 않는 마법을 부렸다. 점점 싱거워지는 맥주 맛 따위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분노했으나 그 분노는 갈 곳 없이 사그라졌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우리에게 아무런 악의가 없었으니까. 있다 해도 내리는 비에게 그 악의를 돌려줄 방도가 없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고통스러웠으나 그 고통을 피할 의지가 없었다. 땅이 젖었다고 땅을 밟지 않을 방도는 없었으니까.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불쾌한 진흙만이 우리가 믿고 디딜 수 있는 단단한 지표면이었으니까. 잠시 비가 그친 사이 우비를 벗고 피부를 바람에 말리는 순간만이 대자연이 우리에게 베푸는 유일한 관용 같았다.


우리는 뭔지 모를 물질들에 범벅이 되며 옐로우 몬스터즈도 보고,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데이브레이크도 보고, 우림 기후에 일가견이 있는 자우림도 보고, 비가 많이 오는 나라에서 온 악틱 몽키즈도 보았다. 캥거루처럼 뛰놀며 킹스턴 루디스카도 보고, 순댓국 후식을 아메리카노로 정해준 십센치도 보고, 그 지옥의 테마송 같았던 국카스텐도 보고, 열렬히 손바닥 춤을 추며 장기하와 얼굴들도 보고, 이 모두를 <Beautiful Ones>로 끝내버리던 스웨이드도 보았다.


‘Here they come~ the beautiful ones~’ 그해 우리는 이 후렴구 가사의 현신이었다. 마지막 날 밤을 수놓던 구절 ‘the beautiful ones’는 록페스티벌 기간 내내 하늘을 뒤덮던 먹구름이기도 했고, 머리 위로 내리던 거센 빗줄기이기도 했고, 무대 위에서 미끄러지던 뮤지션들이기도 했고, 축축한 대기를 진동시키던 음향이기도 했고, 그 모든 것들 속에서 몸부림치던 우리이기도 했다. 대기엔 음향이, 대지엔 분노가 서린 한 폭의 아름다운 지옥도를 그리며 2011년 지산록페는 끝이 났다.


이후 그보다 더한 지옥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최악은 늘 갱신되기 마련. 2013년 여름 우리는 안산 대부도로 부지가 바뀐 안산밸리록페스티벌(이하 안산록페)에서 지산리조트가 얼마나 쾌적한 환경이었는가를 재평가할 수 있었다. 바다향기테마파크. 이름만 들어도 질척한 분노가 느껴지는 그곳은 서해안의 펄 같았다. 지산리조트는 약을 치는 탓에 그나마 청결하게 느껴지는 진흙밭이었으나, 안산의 그곳은 바다모기를 비롯해 온갖 벌레들이 서식하는 천연 펄밭이었다.


발은 마를 새 없이 늘 더럽게 젖어 있었다. 장화를 신으면 땀에 젖고, 장화 아닌 것을 신으면 펄에 젖었다. 펄에서는 온갖 분뇨 냄새가 났다. 모기들은 밤이고 낮이고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모기 퇴치제라 이름 붙은 제품은 고체, 액체, 기체 할 것 없이 모두 장착했지만 모기는 결코 퇴치되지 않았다. 모기에 물려 부은 곳에 더러운 펄이 묻으면 가려움과 찝찝함 등 온갖 불쾌감이 금상첨화를 이루었다.


그런 가운데 무대에 조명이 켜지고 공연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홀린 듯 무대 앞으로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내쉬는 이산화탄소를 쫓아 모기들도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모기가 몸에 달라붙지 않게 쉴 새 없이 다리를 구르고 팔을 흔들며 공연을 관람했고, 모기들은 사람들이 휘젓는 손들 사이사이로 끈질기게 날아들어 피를 빨아 갔다. 난 스탠딩존과 거리가 먼 뒤편에서 큐어의 <Friday Night>을 따라 부르고 스크릴렉스의 휘황찬란한 무대를 감상했다. 하지만 그곳도 모기를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지산의 빗줄기에 무력감을 느끼던 것과 달리, 안산의 모기에게는 화가 치밀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분노였고, 그 분노를 이겨낸 것이야말로 진정한 음향의 승리였다. 그러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다시는 안산록페에 오지 말자고 결의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15년, 노엘 갤러거와 푸파이터스가 안산록페의 헤드라이너로 발표되었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명제 그대로 우리는 다시금 안산행 티켓을 끊었다. 우리는 다시금 음향과 분노의 록페스티벌을 즐겼고, 돌아오는 길에 결단코 안산록페에 다시 오지 말자고 더욱 굳게 결의했다.


록페스티벌의 시대가 저물고 우리는 저마다 먹고사느라 바빠졌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치며 공연 문화 자체가 얼어붙은 지금, 우리는 그 시절의 음향뿐 아니라 분노마저 그리워한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록페스티벌이 다시 열린다면 우리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음향에 이끌려 홀연히 무대 앞으로 모여서 비와 진흙과 모기와 온갖 불쾌에서 오는 분노에 저항하고 있을까? 그 시절의 희열을 기억하는 이들 모두 무사히 이 시국을 통과해 꿈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나길 바란다.



“빛나던 청춘 시절 록페스티벌의 추억을 회상하며 써보았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듣고 싶은 BGM: Suede, <Beautiful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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