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득' 원작 오스틴의 소설. 의 시선으로
2022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설득』은 제인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주인공 앤 엘리엇은 젊은 시절 사랑했던 해군 장교 웬트워스와의 약혼을 가족과 주변의 권위적 설득에 의해 파기하고, 8년이 지나 다시 그와 재회하면서 감정의 생명력을 마주하게 된다.
앤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믿었다. 웬트워스와의 재회는 감정이 나이, 지위, 구조적 편견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과거의 선택을 성찰하며, 현재의 감정을 다시 설득하고, 선택하며, 그 선택에 책임을 지려는 존재로 등장한다.
바닷가에서 웬트워스는 앤에게 고백한다. 당신은 총명하고 똑똑하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기고 사려 깊은 사람이잖아요. 긴급문제상황에 대처도 잘하고요. 그래서 “나는 바다에서 힘들 때 당신을 떠올립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러울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선택했을까 생각하며 해결책을 찾습니다.”
이는 앤에 대한 깊은 존중과 애정의 표현이다. 하지만 앤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건 거짓말이에요.”
<영화, 설득'- 바닷가에서 8년만에 재회장면>
감정은 살아있지만, 감정을 삶으로 옮기지 못한 용기의 부재장면
웬트워스가 앤을 이상화했지만, 실제로 그녀와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불확실함을 보여준다.
왜 앤은 이 따뜻한 고백을 거짓말로 받아들였을까?
앤은 그 차이를 알아차린다. 그래서 남자의 말에 “거짓말”이라고 반응한 것이다. 단지 앤처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앤의 세계에 들어올 준비가 되었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웬트워스의 말은 단지 감정의 표현에 그쳤다. 진정한 사랑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감정을 삶에 초대하려는 용기, 즉 선택과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 감정을 생각하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그 차이는 곧 용기의 유무이다.
<영화, 설득-친구들과의 대화 중 웬트워스의 용기와 앤의 존엄성 사이 장면>
이 장면은 웬트워스가 앤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현실로 옮길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앤은 기다리며, 동시에 스스로를 설득하고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이 식탁 장면은 결국 웬트워스가 진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지를 시험하는 순간이자, 앤이 자신의 감정을 존엄하게 지켜낸다.
친구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웬트워스는 고백한다.
“나는 결혼하고 싶어요.
하지만 내 아내가 짐을 짊어져야 한다면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사랑의 깊이만큼 상대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는 책임감에 망설인다.
이에 친구들은 말한다. “그건 아주 작은 대가일 뿐이에요.” “걱정 없는 삶은 없어요.”
앤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 여자는 혼자서 즐거운 상상을 하느라 바쁠 거예요.”
그 여자의 감정을 넘겨짚지 말아 주세요.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 사랑이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을 품위 있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말이다.
결국, 웬트워스는 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지만,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앤처럼 선택하고, 견디고, 살아가야만 했다.
바다를 항해하는 고독한 남자의 삶과, 그 삶에 동행해야 할 앤의 감정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는 남자의 모습은 존중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결정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에는 감정뿐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걱정과 책임이 사람을 망설이게 하지만, 친구들의 조언과 앤의 품위 있는 응답은 진심을 향한 길을 열어준다. 앤은 자신이 혼자일지라도 그 감정을 조율하고 품을 수 있는 존재임을 모두에게 증명한다.
결국 웬트워스는 용기를 낸다. 그리고 앤은 기다린다. 그들은 서로를 설득했고, 선택했다. 그리고 영원성을 믿었다. 그 결말은 단순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진심을 살아낸 사람들의 증명된 결과다.
세상은 자주 나이를 왜 묻지?. 너는 그 나이에 왜 그런 사랑을 하니,.
그러나 감정은 숫자 위에 앉지 않고, 앉을곳을 안다.
감정은 선명해지고 싶어 하고, 익숙한 안정감을 반복하며, 동시에 시간의 틀을 넘어 무한성을 추구한다.
감정은 스스로 강해지고자 하면서도 안식을 그리워한다. 모순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 감정은 반복된다. 존재는 그 감정에 스며든다. 연애에서 나이 차이에 대한 시선은, 때로는 사회의 수치적 잣대, 때로는 타자에 대한 질투의 그림자이다. 감정은 자유이고, 그 자유는 선택이고, 선택은 책임이다.
하지만 세상은 감정보다 권위를 믿는다. 우리 안엔 집단원형으로 남은 구조가 있다. 권위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며 따르고 싶어 하는 본능의 그림자다. 그건 안정감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열망이다. 권위는 조직 속에서 질서를 준다. 상하관계와 역할은 구심점이 되고, 그로 인해 ‘믿을 수 있는’ 구조가 생겨난다.
영화 설득에서 앤이 유모의 조언을 따르는 장면은 단순한 감정의 포기가 아니라, 당시 여성들이 직면한 사회적 틀과 권위의 압력 속에서 내리는 선택의 무게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 앤에게 유모는 단지 보호자가 아니라, 당시 사회적 안정감과 실용적인 선택을 대변하는 권위로 작동했다.
그런데 오늘날, 그 구조는 무너지고 있다. 권위를 향한 믿음은 사라지고, 사회는 개인의 생존조차 버거운 구조로 바뀌었다. 신뢰할 수 있는 위계도, 기댈 수 있는 기준도 흐릿하다. 감정은 그 구조 속에서 피어나지 못하고, 관계는 기능적 목적 속에 얽혀버린다. 우리는 서로를 조건으로 만나며, 감정보다는 필요에 따라 엮인다.
그러나 감정의 존재는 안다. 깊은 연결을 원한다는 것을.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고 싶어 하는 내면의 소리를.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선택한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품은 감정의 품격이다.
그것은 위계가 아닌 흐름이고, 구조가 아닌 자유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 권위가 없어도, 구조가 없어도, 진심은 흐르고 감정은 살아간다. 이것이 감정의 생명력이다. 무너진 시스템 속에서도 여전히 연결을 갈망하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