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기억의 흔적.
말의 무게와 삶의 형식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행동이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익숙한 단어 하나에도 그 이면에는 추상적인 의미와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예컨대 ‘꽃’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식물을 가리키는 표현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고백이자 이별의 상징이며, 소중한 기억을 불러오는 존재로 새겨져 있다.
어린 시절 들었던 노래가 성인이 되어 다시 들렸을 때,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시절의 풍경, 감정, 사람들과의 관계가 고스란히 그 음악에 스며 있었기에, 우리는 그 노래를 통해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난다. 그것은 단순한 회상이 아닌, 한 시절의 나를 다시 살아내는 경험이다.
그렇기에 말과 단어는 그 자체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어떤 말이 누구의 감정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거나 흔들 수 있다. 기억의 흔적을 지닌 말은 우리의 감정을 가장 예민하게 자극하며 때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우리가 주고받는 말이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흔적이 된다는 사실은, 말이라는 행위가 지닌 책임과 무게를 떠올리게 한다.
언어는 행동이며,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의 의미는 그것이 사용되는 삶의 방식 속에서 결정된다”라고 했다. 그는 『철학적 탐구』에서 언어를 단순한 문법의 조합이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행동의 일부로 보았다. 언어는 삶 속에서 행위가 되어야 하고, 그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가진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물”이라는 단어는 식당에서는 “물을 주세요”라는 요청이 되고, 캠핑장에서는 “물이 있어요”라는 전달이 되며, 누군가 물에 빠졌을 땐 경고의 외침이 된다.
같은 단어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해석은 각자의 삶의 형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이라는 개념을 통해, 언어는 게임처럼 각자의 삶의 규칙과 문화 속에서 사용되며, 그 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자가 말을 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사자의 삶의 형식이 인간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단어를 써도 의미는 공유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청이 시작되는 자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같은 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밥 먹었어요?”라는 인사도, 한국에서는 안부의 표현일 수 있지만, 바쁜 직장에서 들리는 같은 말은 부담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 듣는 사람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메시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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