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 원의 성찰

식물을 키우는 건 나를 키우는 것

by 당디
콩고

어느 날 아파트 입구에 찾아온 화분 트럭에서 콩고와 산호수를 두 개 칠천 원으로 깎고 데려왔다. 작고 흔한 갈색 플라스틱분에 심겨 있어 썩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두 개는 골라야 하니까 이거요. 하고 가져온 식물이었다. 주말이었고, 생산적인 소비를 하고 싶었고, 사실은 정착하지 못한 마음이 들어 허전했던 것 같다.


그 무렵은 식물에 대한 관심이 식었던 시절. 출퇴근은 왕복 두 시간, 광고 회사라 야근도 꽤 많은 새 회사에 적응도 필요하고 자리 잡을 집도 다시 구해야 하니 새로운 무언가를 들이는 데 참 신중했는데 칠천 원에 꽂혀 급 식물 지름신이 와 냅다 들인 것이다. 친구와 잠시 같이 살던 집이라 오랫동안 키웠던 식물은 작은 크기 몇 개 빼곤 다 부모님 집에 임시보호(?)를 맡겨 두며, 더 이상 숫자를 늘리지 말자 했던 다짐까지 했었다. 순간의 변덕으로 얕은 다짐은 스륵 녹아버려 갑작스레 들였으니 이후로는 베란다에 두고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사실 베란다에 나갈 일이 잘 없으니 어떻게 크는지도 몰랐다.


한 달 후 오래 살 집을 구하면서 베란다가 아닌 방 곳곳에 두니 그제야 콩고와 산호수의 자람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데려올 땐 삐쭉 잎을 낸 못난이 상태였는데 무관심 속에서도 생명을 붙들고 잎을 내면서 시들시들하게 생존하고 있었다. 아차 싶어 더 가까이 두고 신경 쓰며 돌보는 마음을 배웠다.


성장은 관심과 비례해, 꽃이 아님에도 말 그대로 풍성하게 피어나는 두 식물을 보며 식물로부터의 성찰을 처음 했던 것 같다. 초보의 서투른 관심에도 풍성하게 자라나 너무 멋져졌기 때문일까. 가볍게 들여 방치했던 미안한 마음을 비료 삼아 식물을 대하는 나의 자세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엽과 신엽이 공존하는 화분 속 세상.

화분 속에는 작은 세상을 키워내는 즐거움이 있다. 식물은 단순한 장식품도 아니고, 나의 관심과 정성에 따라 다르게 자라나니 책임을 지고 키워내는 일련의 과정은 스스로를 조금 더 되돌아보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성장을 만들어 내며, 일상을 돌아보는 마음은 식집사로서의 본분에 집중하게 되니 현재에 더욱 견고한 뿌리를 내리는 에너지 또한 된다.


그러니 주변에 하도 이야길 해 조금은 뻔한 말이 되었지만 이런 얘길 자주 하게 되었다. 식물을 키우는 과정은 결국 나를 키워내는 과정.


산호수를 찍은 사진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 유튜버 Thanks for coming님의 썸네일도 되었다.


밤에 봐도 멋진 콩고

#딸린식물이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