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향하는 여행객들의 발걸음은 누구보다 즐겁고 가볍다. 다들 이곳에서의 삶의 시름은 내려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것 같다. 공항의 짐 캐리어에 가족의 짐들을 싣고 귀여운 꼬마 아이까지 앉히면 세상 즐거운 뒷모습이 된다. 티켓을 끊고 공항 게이트를 향해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여행은 공항에서부터 시작이다. 비행기 시간을 앞두고 우린 먹을거리부터 찾는다. 늘 배고파하는 아이들에게 쿠키와 빵과 음료수를 사주고 우린 커피를 마신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내다보면 여러 가지 종류의 비행기들이 보이는데 보기만 해도 얼른 타고 떠나고 싶단 생각부터 든다.
들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에서 즐거움을 읽을 수 있다. 가위 바위보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 뒤로 드디어 비행기 탑승을 하라는 방송 소리가 들린다. 후다닥 가방을 메고 10번 게이트로 향한다.
저 멀리 제주 바다가 보인다. 착륙 준비의 방송이 들려오고 창문을 바라보았다.
'왔구나!!'
아이들 두 손 잡고 공항 출구로 나오는데 남편이 어머니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디~? 집? 우리 이제 택시 타고 가맨~~~"
제주 공항만 내리면 남편은 항상 제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내뱉는다. 가끔 어머님과 남편의 대화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제주 사투리가 나오는데 이제 결혼 10년 차 정도 됐다고 느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도 나름의 내공이리라...
제주에 오면 늘 방문하는 이곳.
언제나 한가롭고 새소리가 들리는 이곳만의 고요함이 주는 특별한 장소.누가 빌리지.
시댁이 제주라는 건 우리 가족에게 참 행운이다.
어머님이 관리하시는 누가 빌리지를 늘 빼놓지 않고 가는 이유는 이곳 자체가 전원이고 힐링이기 때문이다. 올여름에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놀러 왔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할 생각에 들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손주들이 마냥 아까워 방긋 웃으시는 어머님.
우리가 제주에 온 이 시기는 장마 기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없다고 한다. 누가 빌리지에 투숙객이 없는 걸 보면 정말 장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다행히도 우리가 지낸 4박 5일 내내 날이 너무 좋았고 비도 내리지 않았다. 덕분에 아이들은 누가 빌리지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 수 있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벌써 풍덩 빠져 있는 아이들. 상어, 거북이 튜브에 바람을 넣어 넘겨주니 하루 종일 물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남편이 내게 묻는다.
" 여보는 제주도 오면 먹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 없어? 다른 남편들은 제주도에 오면 와이프들이 원하는 곳 가느냐고 운전하기 바쁘다던데... 여보는 늘 누가 빌리지에 있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 정말 제주도에 오면 특별히 먹고 싶거나 가고 싶은 곳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어머님 집에 있거나 근무하시는 누가 빌리지에 와서 산책하고 귤 구경하고 고사리를 보는 등.. 자연만 봐도 나는 늘 행복했던 것 같다. 가끔 아이들이 원하는 박물관을 찾아 이동할 때면 창밖만 봐도 육지와 다른 제주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숲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이곳은 그냥 힐링이구나 싶을 때를 늘 느낀다. 내가 제주에서 바라는 건 그것뿐인 것 같다. 음식이야 바닷가 근처에 살던 어머님과 남편의 식성 따라 해산물을 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돈을 아껴가며 제주를 부담스럽게 오지 않기 때문에 짠내 나는 생활을 하지도 않는다. 어머님도 시야가 좁거나 아둔하지 않으시고 우릴 부담스럽게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그런지 우린 이곳을 올 때마다 충분히 제주를 즐기고 돌아간다.
오히려 제주를 시간 내서 여행으로만 오는 사람들은 짧은 시간 동안 제주를 즐겨야 한다는 압박 감속에 이곳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누가 빌리지에 와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고 근처 바닷가에서 갯강구만 봐도 힐링을 느끼는 것은 진짜 제주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육지에서의 삶처럼 빠듯하고 무언가를 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삶이기 때문에 이것으로도 만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늘 가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주어진 시간은 빠듯하다.
아이들과 항공 우주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요번에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으로 항공 우주 박물관이 더욱 인기가 있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과 남편은 비행기와 로켓 등. 항공의 역사를 보며 그 넓은 박물관을 열심히 돌며 탐색도 했다. 이곳은 아이들 교육 목적으로도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 것 같다. 예상대로 단체로 방문한 학생들이 많았다. 항공의 역사를 보는 것과 미래의 우주탐험에 대해 느껴 보는 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충분히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체험을 하고 구경을 하다 보면 3층에 뷔페가 있다. 학생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런지 분식, 돈가스, 스파게티 등 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음식들이 전부였다.
사실 난 너무나 피곤했고 에어컨 바람 때문에 냉방병 걸릴 것 같이 몸이 시들해 짐을 느꼈다. 마지막에 영상관에 들어갔을 땐 의자를 뒤로 젖혀 놓고 그 짧은 시간에 졸고 말았다. 나 빼고 즐겁게 구경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들과 남편은 하하 호호하며 박물관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 우린 근처 예쁜 카페를 들렸다. 맛있는 음료를 들고 차를 타는 묘미는 여행에서 빼놓을 수가 없다.
잠깐 들른 카페는 책 카페였다. 주인장의 감성이 녹아 있는 듯한 이 카페는 참으로 내 스타일이었다. 여기저기 너무 이쁘게 꾸며놓고 화려하고 과한 카페보다 난 이렇게 소박하고 색깔 있는 카페를 좋아한다. 진열해 놓은 책들을 보아하니 마음에 관한 책들이 많았다. 어른들이 읽을 수 있는 건 추억이나 감성. 뭐랄까.. 내가 순수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내용들의 책들이 많았던 것 같다. 테이블이 몇 개 없어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우린 테이크 아웃을 해갈 거라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커피와 음료를 시키는 동안 책 구경을 하는데 '빨간 머리 앤'이 보였다. 최근 미드로 보았던 빨간 머리 앤을 책으로 읽고 싶었는데 바로 내 눈앞에 맘에 들게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홀리듯 빨간 머리 앤을 계산하고 커피와 함께 문을 나섰다. 소소하지만 오늘 내가 느낀 빨간 머리 앤의 발견은 나를 너무나 행복하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남편이 계산해준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내가 원했던 선물을 공짜로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모양이다. 난 참 이상한 포인트에서 행복함을 느낀다니까.. 이럴 땐 나도 참 별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