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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비 Jul 19. 2022

당신은 나의 로또야.

결혼 10년 차 정도 되보니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결혼 전 20대에는 느끼고 이해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문제가 이제는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열심히 이해하는 척했지만 깊숙이 이해하기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어른들의 세계가 참 답답해 보이고 어떤 즐거움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터널 같은. 어린 내 눈엔 사실 좋게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 대학교 시절 국토 대장정에서 만나서 즐겁게 보냈던 동생과 연락을 하게 됐다.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로 끊임없이 얘기하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고 제대를 하고서도 전우애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는 국토 대장정 때의 힘들었던 기억과 팀원들끼리 헤쳐 나갔던 값진 경험이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런 끈끈함이 있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가끔 연락을 해도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한 번 만남을 갖고 서로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을 하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내겐 사실 누구와 연락을 꾸준히 하며 지낸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기에 사실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연락하며 안부를 주고받는 정도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관계라는 건 그냥 흐르듯이 두는 게 낫다는 걸 늘 느끼기 때문이고 나와 함께 할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늘 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락을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민망했는지 카톡이 아닌 문자로 안부를 물었다.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에 동생의 카톡 메인 프사를 보며 알았다. '다른 이유가 있구나'

선생님으로 재직 중이던 동생은 남편의 사업을 도와 가게를 운영 중이다. 동생은 회사 본사에서  신규 회원가입 유치를 위해 공문이 내려오고 최대한 아는 지인을 가입시키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그동안 지나쳐 왔던 인연들에게 연락을 하며 목적을 달성중이었던 것이다.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누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싶었다. 그 고민들과 마음이 느껴지며 한편으론 짠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안부도 묻고  근황도 얘기해 가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데 옛날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 우린 통일 국토 대장정이라는 국토 횡단하는 모임에서 만났다. 당시 인천 쪽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인 부천 지역  대학생들끼리 한 팀이 되어 움직였다. 그때 만났던 인연들이 나와 결이 맞았다.

아직 학생 때라 서로 다른 전공 공부를 하면서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었다. 21살 때쯤이었으니 참 우린 많이도 어렸던 것 같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 묵직하게 한 자리씩 맡고 있는 그때의 인연들을 보면 뭐든 다 되긴 되는구나 싶기도 하다. 나이 또래가 비슷하다 보니 비슷할 무렵 결혼도 많이 하고 아이도 낳고 열심히 나의 자리를 빛내고 있다. 딱 10년 전만 해도 결혼해서 예쁘게 가정을 꾸리고 사는구나 싶었다. 10년 후쯤 지나고 옛사람들의 근황을 보는데 보이지 않지만 참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나보다 25년 이상 나이가 많은 친한 언니에게

 "언니. 전 주위에 이혼한 사람도, 편부모 가정도, 학대 가정도.. 이렇다 하게 문제가 될만한 가정들이 없어요. 다들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어디서 그렇게 조손가정이나 이혼가정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라고 한 말에 

언니가 해준 얘기가 생각이 난다. 

"지금 너희 나이 때는 다들 행복하게 살아. 언니 나이쯤 되면 이혼한 사람도 많고 바람피우는 사람도 많아.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들도 많지~ 아직은 모를 거야"


그땐 이해를 못 했는데 결혼 10년 차쯤 지나가다 보니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워낙 오랜만에 연락하고 만나는 지인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근황을 들어보면 이사정 저 사정 너무나 많다. 특히 직장 문제에 있어서 한자리에서 계속 근무하는 남편들이 적다는 점이 사실은 좀 놀라웠다. 나는 아직도 옛사람인가 보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이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문제들을 실제로 들었을 때 편견 아닌 편견이 들었다. 편견이란 단어보다 함께 애를 키워 가는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이 한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준다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다들 왜 이렇게 잘 지내는 건지 부러울 때도 많았다.  


누구나 속사정은 다 있듯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참 많았다. 또한 부부가 함께 헤쳐나가며 무엇이든 이겨내 가는 과정을 볼 때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한 듯 공평하고 공평한 듯 불공평하다란 생각이 든다. 남편이 기울어지면 아내가 일어서고 아내가 기울어지면 남편이 일어선다. 그렇게 부부의 생활은 흘러가는 것 같다. 


나는 남편에게 "당신은 나의 로또야"라고 얘기한다. 주위의 다른 지인들처럼 계속 직장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다시 간호사로 취업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남편만큼 연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내가 가장이라는 전제로 산다면 참 비참할 것 같다. 꼭 붙들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이런 곳에서 찾게 되는구나 싶지만 이런 이유라도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서로 한쪽이 일방적이면 문제가 되듯. 부부 생활에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그 부부는 깨져있는 항아리 같다고 본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새 나가는 물의 양이 감당이 안된다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희생은 고전 책에 나오는 일부 효자들이 하는 것이다. 나는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만약 서로에게 일방적으로 서로의 역할만을 강요했더라면 이 세상에 백년해로 하는 부부는 없을 것이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맞춰가며 보듬어가며 서로의 역할을 대신해주기도 하면서 부부의 생활은 흘러간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로 아픔은 있지만 부부의 생활을 유지해 갈 수 있는 것 같다. 일부 지인들의 안타까운 소식도 들리곤 하지만 서로 노력한 결과로 최악의 상황을 면하는 걸 보면 부부의 끈은 생각보다 단단하단 걸 알 수 있다.  그런 단단한 끈이 결국 깨지지 않는 가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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