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비 Aug 06. 2022

즐기며 살아가는 일

아끼다 똥 된다.

남편의 생일을 맞아 우린 야구장에 갔다. 한여름 밤의 야구장의 열기는 뜨겁고 습하지만 즐거웠다. 어디서 불어오는지 모를 짧은 바람은 덥기만 했던 우리를 시원하게도 해주었다. 우린 각자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을 건 유니폼으로 입고서 열심히 응원했다.


야구장에 가면 우린 먹을 것부터 찾는다. 더운 날씨에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음료수와 얼음컵은 필수고 오기 전 상의해 두었던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한다. 웬만한 야구장에는 치킨, 피자, 분식, 도시락 등 없는 게 없기 때문에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날은 피자, 분식 등 잔뜩 사 가지고 패밀리 석에 앉았다.

남편은 우리 가족의 입의 만족을 돕기 위해 열심히 움직인다. 중간중간 팥빙수도 시켜 가며 오늘을 충분히 즐긴다. 그렇게 야구가 시작되고 2회 말까지는 거의 먹는 것에 집중하는 가족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양각색으로 우리보다 더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야구장을 즐기러 오는 팬들은 먹고 응원하면서 이 시간을 즐기러 오기 때문인지 더없이 즐거워 보인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야구장을 꿈도 못 꿨었다. 야구를 즐길 줄도 몰랐거니와 이런 문화를 알기엔 내 사생활이 너무나 바빴기 때문이다. 온통 현실 속에서 사는 나의 삶은 늘 고단했고 무언가 즐긴다는 건 그냥 사치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야구장의 문화를 이렇게 즐기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참 많이 변했구나 싶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우리 가족의 놀이는 많이 다채로워졌다. 단순히 바람 쐬기 위해 쇼핑몰 정도를 돌아다니는 삶이 아닌 즐길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그중 야구장은 우리 가족의 건전한 취미로 자리 잡았다.


아이들이 야구의 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지루해할 때쯤 닌텐도에 야구게임이 있다는 걸 알고 적극적으로 사주었다. 특히 딸아이 같은 경우 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수 없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닌텐도 야구게임을 더 적극적으로 권했다. 게임이지만 룰을 알게 되고 그 세계에 재미를 붙이면 실제로 야구를 관람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돼서도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딸아이가 됐으면 하는 마음에 야구 게임은 내가 더 적극적으로  권했다. 아들은 안 가르쳐 줘도 청소년기만 돼도 도사가 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닌텐도로 야구게임을 하면서 룰을 접했던 딸아이는 야구장 관람을 하면서 좀 알겠다고 즐거워했다. 아들도 조금씩 즐거워하는 걸 보면 지금 우리 가족은 야구의 매력에 푹 빠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날은 우리가 응원하던 SSG가 패배한 날이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밤 10시쯤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고맙단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돈을 모으는 것만 알지 돈을 쓰는 것에는 알레르기가 있는 편이라 네 가족의 야구장 비용을 척척 결제해 내는 남편이 오히려 내겐 커 보이기만 했다. 남편이 벌어온 월급이 우리 가족의 공동의 비용이지만 그 돈을 내가 결제하는 것과 남편이 결제하는 것은 체감하는 온도가 다르다. 나는 그 돈을 결제하기 위해 마음의 부담과 돈의 가치와 활용성을 너무나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한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다. 그러나 남편이 고민 없이 결제하고 추진하는 건 내 입장에선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아 더 낫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돈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아끼다 똥 된다. 무조건 아끼지만 말고 적재적소에 꼭 써야 하는 게 돈이다"라고..


이렇게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배경엔 나의 부모님에 대한 영향이 크다. 늘 돈을 아끼는 데에만 집중하셨던 부모님은 지금도 즐기며 사시질 못한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당연히 돈은 아껴야 되는 거라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에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이 되고 돈을 벌어보며 조금씩 경제관념이 바뀌었고 무조건 아끼는 것은 좋은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 세대는 먹고사는 문제가 일단 해결이 안 됐었기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부모님의 돈에 대한 관념들은 내게 심어졌고 쓸 곳만 쓰는데도 죄책감을 안고 있는 날 보게 되었다. 당연히 즐길 수 있는 레저들에 대해 늘 불편함을 안게 되고 돈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 이렇게 점점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런 배경이 있다 보니 돈을 쓰는 것에 있어 지금도 편하게 쓰질 못한다. 모으는 건 정말 잘할 수 있는데 쓰는 건 마음이 늘 불편하다. 내가 아닌 타인이 돈을 쓰는 것도 불편하다. 나도 모르게 돈에 대해 마음 깊숙이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과소비를 하지도 않고 쓸 곳만 쓰는데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이런 불편함을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난 늘 아이들에게 얘기한다.

"아끼다 똥 된다. 무조건 아끼지 말고 적재적소에 꼭 써야 할 땐 써야 해. 그리고 모으지만 말고 즐기면서 살아. "


무엇이든 흐름을 막으면 문제가 된다. 고인물이 썩듯이 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돈도 제대로 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주머니의 돈으로 물건을 사면 시장 경제가 돌아가고 또 다른 이들이 먹고살 수 있는 것처럼. 돈을 쓰는 것이 과소비의 형태면 문제가 되지만 필요할 때 나를 위해 적당히 쓰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의 세대는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옛 어른들의 세대와는 다르지 않은가.

열심히 성실히 일해서 버는 돈으로 일부는 나의 즐거움으로 쓸 수 있는 아이들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제는 내가 아끼다 똥 된다라고 얘기하면서 돈 쓰는 문제에 대해 아이들에게 보기 좋은 본보기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을 아끼고 쓸 곳만 쓰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줄 수 있는데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어 있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늘이 내게 보내 준 나의 짝꿍. 내 남편.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조화를 이루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건 나는 모으는 걸 좋아하고 남편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으고 쓰는 것엔 기준이라는 게 있다. 우리 월급 안에서 과하지 않게 모으고 소비하는 일. 그 적당한 선 어느 곳엔가 우리가 조절해야 할 부분으로 남아 있다.


외벌이로 살아가며 뻔한 월급에 돈에 대해 자유롭기는 어려운 일이다. 앞으로 살아가고 꾸려 나가야 할 날들 많이 남았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끼다 똥 되니 쓸 땐 써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당장 빚을 갚기도 힘들고 먹고 살기 벅찬 사람들에게 그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철없는 말일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좇는 삶보다 돈이 쫓아오게 만드는 삶을 꾸려나가라고 얘기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