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1호 류경은
눈앞에 맞닥뜨린 환경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혀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프로젝트는 일상 속에서 환경에 진심을 다하는 인플루언서를 ‘지구인’이라 칭하기로 했다. 지속가능한 방식을 추구하는 지구인 1호 류경은(@our_vefu)를 소개한다.
Q 환경 관련한 다양한 키워드 중에 가장 중점을 두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플라스틱 줄이기에만 혈안이었어요. 그런데 알아갈수록 기후위기를 막는 게 더 중요하더군요.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고, 그러려면 플라스틱 사용과 배출을 줄여야 해요. 산소를 만들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나무와 동물은 보호해야 하고요. 개인이 효율적으로 탄소배출을 줄이는 방법은 채식이에요. 소비를 줄이는 미니멀리즘과도 관련이 있죠. 환경과 관련한 다양한 키워드는 결국 하나로 연결돼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친환경 라이프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Q 지속가능한 삶,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평소 요리를 좋아해서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데요. 마트에서 파는 해산물에서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기사를 봤어요. 해산물을 좋아했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죠. 자료를 찾아보고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문제가 너무 심각한 거예요. 그 무렵 ‘제로 웨이스트’라는 말을 알게 되었는데,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때마침 성수동 ‘더 피커’라는 플랫폼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가했어요. 개인의 제로웨이스트 실천법을 배우고 방향성을 얻었습니다. 그날이 하필 생일이었는데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비슷한 시기에 미국 사진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크리스 조던의 전시회가 열렸는데요. 앨버트로스 새의 뱃속에 플라스틱 조각이 가득 들어있는 걸 보니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열심히 실천하게 됐어요.
Q 친환경라이프를 위한 실천이 고되고 힘들 때도 있을 텐데요.
마트에서 플라스틱 없이 장보기 어렵잖아요. 마트 대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는데, 시장에서는 비닐봉지 안 받기도 어려웠어요. 용기를 들고 가면 거절당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가져간 주머니나 그릇에 담아 달라고 싸워야 할 정도로요. ‘여기에 담아주세요’라고 말하려면 상인이 비닐봉지를 뜯는 속도보다 빨라야 했습니다. 용량을 알 수 없다고 거절당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요즘은 인식이 바뀌어서 그런지 용기를 내밀면 ‘애국자’라는 말을 들어요.
Q 친환경 라이프를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장에 가면 얼굴은 기억 못 해도 ‘통 들고 오는 새댁’으로 기억해주세요. 그럴 때 기분이 좋아지고 자존감이 올라가요. 환경을 생각해서 일회용품이나 물티슈를 안 쓰고, 플라스틱 용기가 싫어서 고체비누나 샴푸바를 사용했더니 화학물질을 덜 흡수하는 효과가 있더군요. 바디버든 줄이기가 덤으로 따라온 거죠. 캡슐 커피머신을 포기할 땐 전장에 나가는 장수라도 된 심정이었어요. 대단한 고민과 각오가 필요했거든요. 돌이켜 보면 우스울 정도로 모카포트를 쓰는 시간이 좋아요. 알루미늄도 안 먹고 말이죠. 전기밥솥을 포기하고 압력솥이나 솥에 밥을 지으니 주방 공간이 넓어지고 밥맛도 좋고요. 채식을 하니 몸이 가볍고 아침에 더 잘 일어난다는 생각지도 못한 장점이 따라왔어요. 환경에 대해 알면 알수록 생활이 조금씩 불편해지지만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이 따라온다는 걸 느껴요. ‘환경을 위해 이걸 다 참는다’가 아니라 ‘장점을 생각하면 감수할 만하지’라고 생각할 만큼. 그래서 ‘즐거운 불편’을 실천할 수 있어요.
Q 낭비 없는 삶, 제로웨이스트, 채식지향, 윤리적소비, 케미컬프리, 미니멀리즘 등 친환경 라이프 실천을 이어가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환경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 다른 사람이나 생명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영향력의 크기를 고려해서 더 크고 멀리 보게 되더라고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선별장 노동자가 고생한다는 걸 알고, 쓰레기가 흘러가서 동물들이 고통받는다는 걸 알고, 한 번 쓰고 버린 일회용품과 물건들을 만드느라 쉬지는 않는 중국 공장으로 인해 미세먼지가 날아온다는 걸 알고, 순식간에 먹어 치운 햄버거 하나가 지구 반대편 원시림을 파괴하고 산불을 일으킨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알면서도 그냥 살면 안 되잖아요. 나의 작은 행동이 지구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괜찮은 사람 된 것 같아요.
Q 환경을 위한 실천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협조를 요청하는 편인가요?
제로웨이스트 실천 초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빨대 꽂힌 거북이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종이 빨대를 선물했어요. 플라스틱 일회용품 쓰지 말자고요. 그런데 한참 대화를 나누던 지인이 카페에 비치된 개별포장 플라스틱 빨대가 너무 좋다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빨대를 쥔 손을 덥석 잡았는데, 기어이 핸드백 안에 담더라고요. 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말로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렵구나, 오히려 반감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그 이후로는 행동으로만 보여요. 일회용품이나 물티슈를 쓰지 않고, 식당에서도 종이컵 대신 텀블러에 마셔요. 물건을 살 때는 용기에 담고요. 실천하는 이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강요하지 않죠.
남편도 마트 대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거나, 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걸 싫어했어요. 그런데 시장에서 몇 번 칭찬을 받고, 덤을 얻어 보더니 달라지기 시작했죠. 미니멀리즘 위해 물건을 비우는 것도 처음에는 싫어했는데 집이 정리된 걸 본 후 또 변했어요. 엄마는 크리스 조던 전시회를 같이 보신 후 저보다 더 열심이시고요.
Q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만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부담감도 커질 것 같아요.
블로그와 SNS를 통해 실천 내용을 모두 공유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기도 했지만, 스스로 부담감을 갖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공유했죠. 1주일치 쓰레기를 모아 공개하는 ‘쓰밍아웃’을 하는데요. 사고 싶은 물건이 과포장이면 쓰레기를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에 안 사요. 택배로 받아야 하면 한 번 더 생각하고요.
어쩌다 고기를 먹거나 플라스틱을 쓰거나, 물건을 많이 사더라도 모두 공개해요. 조금씩 줄이고 덜 쓰고 노력하는 제 모습을 드러내는 거예요. 그래도 매번 타협하면 안 되니까 텀블러가 없을 때는 음료를 사지 않는다, 새벽배송은 절대 주문하지 않는다, 집에서 식사할 때는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 등 몇 가지 원칙은 지키고 있어요.
일회용 컵에 커피를 받거나 과포장된 선물을 받아도 죄책감이 들어서 힘들었던 적이 있는데요. 기업에서 과포장하고 정부가 규제하지 않는 건데 최종 소비자인 내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게 억울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업이나 정부에 항의하는 일을 더 열심히 하려고요.
Q 환경 인플루언서로서 SNS를 통해 많은 질문을 받죠?
샴푸 대신 뭘 사용하나? 재활용 쓰레기가 적게 나오던데 비결이 무엇인가? 유리병 라벨은 어떻게 떼나? 장 볼 때 가지고 다니는 용기는 어떤 것이 좋은가? 질문이 아주 디테일해요. 답이 될 만한 내용은 모두 블로그에 적어둡니다. 실천하고 있는 것들을 SNS에 지속적으로 공유했더니, 오랜 SNS 친구가 제로웨이스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군요. 그런 분들께는 제가 잘 쓰고 있는 제품을 선물하기도 해요. 설거지 비누, 천연 수세미, 고체 치약 같은 거요. ‘대단하다’는 칭찬의 말보다 ‘같이 실천하겠다’는 말이 너무 좋습니다.
Q 요즘 더 신경 써서 만들고 있는 습관이 있나요?
용기 내기는 완전히 습관이 되었어요. 의외로 쉽고 보람 있어요. ‘쓰밍아웃’도 쭉 하고 있고요. 그런데 플로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솔직히 함부로 버린 걸 주워 주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지구, 우리나라, 우리동네니까, 쓰레기들이 떠돌다가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동물들이 먹으면 안 되니까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에요. 올해는 플로깅을 더 자주 하는 게 목표입니다. 날도 따뜻해졌으니 산책 삼아 더 자주 해야겠어요.
Q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습관 실천을 처음 다짐한 사람들을 위해 실천법을 추천해주세요.
칫솔이나 세제를 친환경 제품으로 바꾸는 쉬운 방식이 있지만, 유행처럼 따라 하면 오래가지 못해요. 또 다른 소비만 할 뿐이죠. 하지만 한 번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스스로 인식하면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게 돼요. 처음 시작한다면 쓰레기 일기 쓰기를 적극 추천합니다. 도시에서는 쓰레기를 바로바로 치우기 때문에 환경문제를 인식하기 어려운데요. 1주일간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지 파악해보면 아마 깜짝 놀랄 거예요. 그다음에는 거절하기를 시작하면 돼요. 전단지, 비닐봉지, 물티슈나 빨대, 나무젓가락 등을 받지 않는 것이죠. 아주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실천법이에요.
내가 먹는 음식이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해 우리집 식탁까지 왔는지 따져보면 좋겠어요. 먹는 것뿐 아니라 쓰는 물건도요. 나의 작은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면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킬 겁니다.
도서 <물건 이야기>
5000원짜리 티셔츠 한 장이 우리에게 오려면 얼마나 많은 자원이 파괴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가난한 나라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멀리 이동하느라 탄소를 배출하며 내 손에 들어오고 또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는 바로 버려지는지 과정들이 나와요. 이 물건이 유행이고 이 햄버거가 맛있고 가격이 얼마인지만 생각하지 말고, 그 이면에 더 깊은 곳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다큐멘터리 < KBS스페셜-플라스틱 지구>
2018년에 방영되고 방송대상도 받은 KBS 다큐멘터리인데, 이걸 보고 비닐을 안 쓰기 시작했어요. 2편으로 나뉘었는데, 바다 위에 생긴 플라스틱 섬에 가서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플라스틱 어택이나 플로깅 같은 구체적인 방법도 설명해주고요. '플라스틱 대한민국, 불타는 쓰레기산'이라는 후속편도 제작됐는데, 산을 이룬 쓰레기가 충격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매일 나오는 마스크만으로도 쓰레기 산을 이룰 것 같아요.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한 가지 실천이라도 더 하면 좋겠어요.
제로웨이스트 숍 <더 피커>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제로웨이스트 상점입니다. 모든 쓰레기는 소비와 밀접한 연관이 있잖아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 쓰레기도 줄고 자원이 낭비되지 않고 탄소 배출도 줄어요. 환경을 위한다면 친환경 제품을 새로 사는 것보다 이미 갖고 있는 물건을 오래도록 잘 쓰는 게 더 중요합니다. 더 피커에서는 건강한 소비 방식에 대해 열심히 알리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으로 지켜보다가 더 피커 대표님들의 강연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걸 적극 추천합니다.
캠페인 ‘용기내’ ‘채소한끼 최소한끼’ ‘고기 없는 월요일’
환경문제는 식생활과 관련이 많아요. 식료품 포장재나 배달용기 쓰레기가 엄청 많이 나오고요. 육류 소비나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탄소배출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이상기후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도 식량 문제죠. 음식들이 어디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에게 오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문제를 인식한 소비자가 달라지면 긍정적 변화가 훨씬 빨리 올 테니까요. 빌게이츠가 ‘소비자가 친환경, 저탄소를 원하면 기업에서는 밤을 새워서라도 그 분야를 연구할 것’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채식 제품이 속속 출시되는 것도 소비자 경향을 반영한 것이겠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친환경 라이프를 살아가고자
고군분투 중인 지구인 1호 류경은
글 한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