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공식적으로 백수 선고를 받았다. 1월에 갑자기 등장하신 코로나 덕에 졸업식 없이 쌩백수가 되어 침대 위를 활보하는 나는 졸업 이전에 부모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냈다. "졸업하고 1년은 백수하면서 놀아." "아이고 세상에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취준생도 아니고 백수로 하루종일 집에서 엄마의 소일거리(화분나르기, 꽃에 물주기, 무거운 거 들기)를 도우면서 지내고 있다. 물론 백수의 본분인 뒹굴거리기와 컴퓨터 게임하기도 잊지 않고 매일 챙기는 성실한 그런 백수의 삶...이자 캥거루의 삶을 살고 있다.
나는 내가 왜 26살인 지 모르지만 내가 한 살로 태어나서 여태까지 산 세월을 계산하면 그것이 26년이라 깜짝 놀라고는 하는데... 스물 여섯의 백수는 25살 백수, 24살 백수와는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다. 이는 언젠가 인터넷에 떠돈 20대 초,중,후반 분류법에 따라 나는 빼도박도 못하게 20대 중반의 마지막에 서 있기 때문에, 절벽에 서 있는 백수여서 그런 것일까? 문제라면 나는 절벽에 서 있지만 내가 서 있는 곳이 절벽인지도 모르겠고... 그마저도 서 있지않고 이불에 감싸여 뒹굴거리고 있기 때문에... 스펙이라고는 졸업장과 어학성적뿐, 내 손에 쥐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 백수는 그저 돈 쓰고 노는 것이 행복한 나이 스물 여섯살이지요.
각설하고, 이 캥거루는 미국의 여느 시트콤에서 20대 초중반의 학업을 마친 자식이 백수가 되어 들어갈 지하실을 찾고 있었지만 엄마 아빠 집에는 그런 지하실이 없었습니다. 여긴 미국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기도거든ㅎ. 근데 어찌저찌 합이 맞아서 엄마아빠가 세를 놔주던 2층집의 사람이 집을 빼게 되었고 제가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것이 나의 크고 소중한 다락방이지요. 이제부터 나의 다락방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놔 보겠습니다.
나으 다락방. 고것은 바로 원룸입니다. 가로길이 약 10메다 79센치, 세로길이 5메다 44센치를 지닌 1인가구에게는 우람한 우리 다락방에는 화장실도 있고 부엌도 있고 현관도 있습니다. 저의 부친이 집을 지으실 적에 "아빠 내 방은 다락방으로 만들어줘요. 다락방 천장에 천창도 내주세요"하여 , 아버지는 딸내미의 바람을 듣고 천창을 낸 다락방을 만들고자 하셨으나 공사 인부들의 "천창을 내면 웃풍들어요"라는 말한마디에 무너지는 바람에 천창이 없는 다락방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다락은 다락인지라 지붕안에 들어있어 한쪽 벽은 1메다 20센치의 높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왠걸 아빠의 딸내미는 1메다 73센치(오차범위±1센치)의 거구였습니다.
아무튼 1층에는 엄마 아빠가 살고, 2층에는 내가 사는, 엄마는 주머니를 배에 달고 계신 것이 아니었기에 바닥에 떨어진 주머니에 내가 걸어 들어가면 되는 그런 완벽한 꿈의 공간... 게다가 잘지어놓은 집이라 겨울에는 따땃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뒤로는 산이오 앞으로는 길이오... 양방향으로 뚫려있는 작지만 큰 그렇지만 넉넉치 못한 창문을 통해 뒷산의 녹음이 배경되고 엄마가 가꿔놓은 마당이 배경되는 풍류 한 번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제 다락방이. 게다가 다락방만한 옥상이 따라와서 이제 원없이 맑은 하늘 햇빛 아래에 빨래 말리고 일광욕하고, 뒷마당에서 허브를 뜯어올게요 라고 말할 수 있는 화단을 가꿀 수 있는 그런 다락방.
이 모든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그렇죠... 그나마 백수의 어머니 아버지 가진 것이 풍족하시어 이미 너무 부풀어 있는 딸의 배를 더 부풀리고자 하셔 용돈을 넉넉히 주셨으니 그를 모아 집 안의 여러 살림을 채워 모은 후 집들이를 하는 것이 올해의 계획이었습니다. 아빠는 그러다가 1월경에 일을 하겠다고 태국으로 떠나버리십니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지닌 아빠는 몇 년간 그 좋은 백수 생활(은퇴생활)을 하시다가 버티지 못하시고 그만 백수의 길에서 탈주해버리신 것인데... 어머니는 이를 말리고자 하셨지만 성공하지 못하였지... 1월 10일에 떠난 아빠는, 2월 딸내미 졸업식에 맞춰 한국에 들어오고자 했으나... 이른데 없이 역병이 창궐하여 나라를 뜨지 못하니,,, 어차피 졸업식도 없어진 것 우리는 안전해지면 들어오씨요 하였지만 국경이 막혀버려 여태껏 아빠는 태국에 발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꾼 두명중 한 명이 사라졌기 때문에 1층의 제 살림살이를 저는 아직도 위로 올리지 못하였지요. 게다가 역병이 창궐하니 세간살림 허리띠 졸라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가장 타겟이 되기 쉬웠던 26살 딸내미는 코묻힐 돈이 반절 넘게 깎여버리고 만 것 입니다.
이런 상황의 돈 벌 의지 없는 백수가 아등바등 열심히 어떻게든 다락방에 기거하고자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드리고자 이렇게 이야기를 게시하게 되었읍니다 여러분. 이 끝이 어떻게 될 지는 지켜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