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챗쏭 May 10. 2019

어느 피고인의 구속영장

- 법정구속되는 아버지의 어린 딸에게 구속통지를 해야 했습니다.


“실무관님, 17노000 사건 선고 준비해 주세요.”



주심판사인 나 배석 판사로부터 무덤덤한 말투의 전화가 왔다. 재판 선고기일에 앞서 법정구속이 가능한 사건은 사전에 준비할 서류와 절차가 있어 이런 식으로 업무연락이 있곤 했다.


법정에 들어서니 선고기일에 나온 피고인과 관계자들이 법정을 가득 채웠다. 그들이 내뿜는 긴장의 분위기는 법대에까지 이르렀다. 나는 김ㅇㅇ을 몰랐지만 나이로 어림잡아 그를 찾았다. 김ㅇㅇ의 긴장 어린 표정은 자신의 형량을 선고할 빈 법대를 향해 있었다.


“2017노000호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 김ㅇㅇ씨 나오셨나요?

김ㅇㅇ씨, 주민번호, 주소 말씀해보세요. ...

지난번 재판하고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 어떻게 지냈나요?“


재판장은 법정구속을 앞둔 피고인이 주변정리를 하고 왔는지 물어보고 있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김ㅇㅇ은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1심의 판단을 뒤집을만한 증거나 주장이 없는 한 1심의 징역형이 유지될 가능성이 컸다. 특히나 김ㅇㅇ은 이 사건에 앞서 다른 사건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될 것이 확실했다.



“누구와 같이 살고 있습니까?”



법정구속이 되면 피고인은 본인이 구속이 되었다는 것을 통지받을 부모형제, 친인척 등을 지정하게 되는데, 재판장은 그것을 물어본 것이다.


“딸아이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순간 나는 머리칼이 쭈뼛 섰다.


김ㅇㅇ은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혼자 살던 김ㅇㅇ은 어느 날 딸이 보고 싶어 전처의 모친, 전처, 딸, 전처의 현재 남편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갔다. 전처의 집에 간 김ㅇㅇ은 전처의 모친에게 사정을 하고 집에 들어가 아직 오지 않은 전처를 기다리며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ㅇㅇ이 집에서 기다리는 것을 알게 된 전처는 내 집에서 나가라며 전화로 옥신각신 다투다가 마침내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김OO에게 '퇴거불응죄'의 형사책임이 씌워지고 있었다.


지구대에 임의 동행한 김ㅇㅇ을 조사하기 위해 경찰관은 신분증의 제시를 요구했다. 김ㅇㅇ은 자신이 집행유예기간임을 알고 있었고 집행유예의 취소를 피하기 위해 마침 가지고 있던 동생의 신분증을 제시했다. 그는 조사과정에서 각종 확인서에 동생의 이름으로 서명을 하고 경찰관에게 제출했다. 그가 책임을 모면하고자 동생인체 했던 것에 대한 책임은 무거웠다. '공문서부정행사죄' ‘사서명위조죄’, ‘위조사서명행사죄’ 에 대한 형사책임이었다.



이렇게 김ㅇㅇ은 4개의 죄명으로 1심에서 징역3월의 형이 선고되었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심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이혼한 전처와 딸이 보고 싶어 전처의 집에 간 김ㅇㅇ의 마음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하기에는 법의 책임이 무거워 보였다. 법대로라면 그는 집행유예가 취소되고 징역3월의 실형을 선고받아야 했다.




“사건에 관계된 딸 말고 혹시 다른 자녀가 또 있습니까?”


재판장의 말투에서 당황한 기색이 느껴졌다.


“아니요, 딸 하나입니다.”


“딸이 몇 살이죠?”


이 사건이 있은 이후로 김OO은 전처와 상의하여 얼마간 아이를 데려와 키우고 있었다. 재빨리 사건의 정보를 조회하고 재판기록을 뒤져 공소사실을 확인해보니 피고인에게 있는 딸은 12살이었다.

아... 내 안에서 탄식이 흘렀다.


‘12살. 우리 아들과 동갑이구나.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학교에 가 있을 텐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아빠는 아침에 아이에게 학교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나누었을 테고 아이는 집에 돌아와 기다리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며 집에 들어올 텐데 말이다.


또 나는 어떻게 아이에게 아빠가 구속되었다는 것을 알릴 것인가.



이런 마음을 재판장이 아는지 모르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딸아이는 지금 학교에 있습니까?


피고인은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고 우리 항소심에서 이 실형이 유지될 경우에는 법정구속이 됩니다. 아시나요? 그럼 구속을 통지받을 사람이 필요한데요, 딸아이 말고 구속을 통지받을 다른 가족이 있어요? 피고인이 법정 구속되면 딸은 엄마가 돌볼 수 있나요?“


재판장은 다급해하는 것 같았다. 12살 딸에게도 이 상황을 감당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했다.


“동생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딸은 지금 학교에...”


피고인은 횡설수설했다. 어떤 대책도 없다는 것이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구속이 되면 법원에서 구속을 통지하는 것 말고는 아빠가 아이에게 전화를 하거나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이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선고가 있고 구속이 되면 바깥세상에 연락을 취해 사정을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도무지 얼굴을 돌려 피고인 쪽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한 번쯤 돌아보고 싶다 생각했지만 나는 무거워지는 눈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는 무슨 죄란 말인가.




순간,


“오늘 이 사건은 선고하지 않겠습니다. 선고는 4주 후인 3월 20일로 연기하겠습니다.

김ㅇㅇ씨, 집으로 돌아가서 딸과 시간을 잘 보내고 다음 선고기일에 꼭 나오세요. 아셨죠?“


꽉 깨물었던 어금니에서 힘이 빠졌다. 뜨거워졌던 얼굴도 후 하는 한숨과 함께 식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법정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봤다.



딸아이가 살렸구나.


법정을 나가는 그에게서 12살 딸아이의 환한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는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후기.



7월20일. 주심판사인 나배석판사로부터는 아무런 업무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김ㅇㅇ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김ㅇㅇ은 2015년 3월 17일부터 2년간 집행유예기간 중이었다. 선고를 4주 연기함으로써 앞선 사건의 집행유예 기간이 3월 17일 자로 만료되었고 3월 20일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었다.


법이 허용하는 재량이었다.








이 글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법원의 판결문 제공 서비스'를 통하여 발급받은, 비실명화 처리된 판결문을 재구성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의 인터넷 열람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http://www.scourt.go.kr/portal/news/NewsViewAction.work?pageIndex=1&searchWord=&searchOption=&seqnum=1152&gubun=3 
판결서 인터넷 열람이란?
http://www.scourt.go.kr/portal/information/finalruling/guide/index.htm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