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실무관'의 브런치 시작이야기
“일반 사기업 다닐 때랑 무엇이 제일 달라요?”
사기업에 다니다가 법원공무원이 되고 나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30대, 40대 직장인의 노량진행은 때가 되면 나오는 단골 기사였지만, 당장 눈 앞에서 그런 사람을 두고 보니 신기했나 봅니다. 입사 때 면접시험에서는 이런 질문이 있기도 했습니다.
“사기업 다닐 때보다 월급이 훨씬 적을 텐데 괜찮아요?”
물론, 가장 큰 차이는 월급이었지요. 정말 ‘박봉’이란 말이 탁 박혀 들어왔으니까요.
하지만, 입사 5년 차인 요즘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다른 점이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차이는 ‘말할 기회’가 적다는 것입니다. 사기업을 다닐 때는 툭하면 있는 회의에, 제안서 브리핑이며, 프리젠테이션까지 말할 의견을 정리하느라 바빴습니다. 조리있게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구요. 그런데 공무원이 되고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말단 공무원에게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의견을 물어 그에 대하여 발표하거나 정리된 의사를 표시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 밖의 사람들과도 업무적인 이야기나 다루는 사건의 이야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국가공무원법 제60조의 ‘비밀엄수의 의무’ 때문이지요. 더 무서운 법도 있습니다. 형법 제127조의 공무상 비밀누설죄 같은 죄목입니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법원공무원이 사건과 관계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심지어는 피해자 증인의 신상정보를 카톡으로 전송하여 형사책임이 문제 된 경우도 있습니다.
무섭지요. 이것은 공무원의 입을 무겁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직장인들이 회사 업무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고 본인만의 전문성을 살린 글을 써낼 때 저는 마냥 부러워만 했습니다. 어디까지 업무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비밀엄수의 의무’의 한계는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무원의 글쓰기는 끝없는 자기 검열을 하게 합니다. 가능하면 얘기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요.
저는 나름의 원칙과 한계를 정했습니다. ‘비밀엄수의 의무’와 ‘공무상 비밀’을 유지하겠다는 굳은 각오를 두고 말이지요.
우선 사건과 관계된 내용 중에 개인정보이거나 어떤 사건인지 특정되는 내용은 절대 언급하지 않을 것입니다. 글을 쓰면서 언급하는 사건 내용은 제가 각색하였거나 재구성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혹시라도 오해는 말아주세요.) 사건을 언급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누군가의 행위를 비판하거나 비하하는 표현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이거나 들은 내용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법원공무원으로서 제가 글을 쓰는 데 있어 스스로에게 밝혀 둔 한계입니다.
그럼, 제가 법원공무원으로서 굳이 글을 쓰면서 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법원은 세상의 갈등이 모이는 곳입니다. 갈등은 ‘첨예한 이해관계’를 넘어섭니다. 생과 사를 다투기도 하고요, 평생을 걸쳐 법정 투쟁을 벌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법원의 결정 하나가 인생의 큰 줄기를 돌려놓는 경우도 다반사지요.
법원공무원은 재판정에서 법관이 앉아 있는 법대의 아래에 앉아 판사와 사건의 당사자 사이를 바라봅니다. 그 사이에는 사건기록에는 쓰여 있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록에도 나와 있지 않고, 판결문에도 쓰이지 않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법적인 의견을 밝히거나 판결의 이유를 말하거나 판결에 덧글을 다는 것은 제 몫은 아닙니다. 딱딱한 법률용어로 쓰인 판결문과 법원의 언어 뒤에 흐르는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법원을 오가는 메마르고 갈라 진 마음에 한줄기 빗방울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법원공무원의 글 쓰기 많이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