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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챗쏭 Jul 28. 2019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서평]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서 인쇄된 책 읽기란


얼마 전, 최재붕 교수의 책 '포노 사피엔스'를 읽었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포노 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한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그에 맞는 세계관을 갖고, 새로운 표준 문명에 비추어 그간의 오래된 상식, 경험에 의한 지식들이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도 유효한지 끊임없이 묻고 재정의하라고 한다. 시대가 변해가는 과정에 맞춰 우리의 상식도 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책에 비추어 보면, 종이 위에 인쇄된 책 읽기를 고집하는 것이 새로운 표준 문명에 비추어 과연 옳은 것일까.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책을 읽어야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거나 유튜브나 인터넷을 하기보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말해놓고도 왜 책이어야 하는지,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서는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수는 없는지, 말하는 스스로도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책도 타인의 지식과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도구이고 유튜브도 영상을 통하여 타인의 지식과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도구인데,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일까.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는 디지털 시대에 우리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우리가 왜 인쇄물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뇌과학의 과학적 관점과 함께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에 손쉽게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검색하여 알 수 있고 설명을 원하는 지식은 영상으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왜 문자로 된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런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기대하며 이 책을 읽었다.



'읽는 뇌'의 위기


이 책은 9장의 편지를 통하여 우리의 뇌가 오랜 진화를 거쳐 얻게 된 '읽는 뇌'의 능력이 디지털 기기에 의하여 어떤 영향을 받는지, 우리는 왜 깊이 읽기를 해야 하며 깊이 읽기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어쩌면 오래된 읽기의 방식인 종이책 읽기와 새로운 문명의 방식이 된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는 충돌하고 대체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이 두 가지가 선택의 방법이 아닌 균형 잡힌 방법으로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읽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단어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즉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이다.(22쪽) 읽기는 자연적인 것도, 타고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 뇌가 이러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뇌에 새로운 회로가 필요하다.(42쪽) 우리가 읽기를 할 때면 우리 뇌에서는 수천, 수만 개의 뉴런 작업이 작동하고 있다. 주위를 분리시키고 눈 앞의 대상으로 주위를 이동시킨다. 새로이 주의를 집중하게 되고 그러는 동안 읽기 회로가 행동에 나서도록 한다.(52쪽) 그렇게 우리의 뇌는 읽기를 하는데 필요한 작업을 하게 되고 그런 능력을 점차 발달하여 왔다.


그런데, 인쇄 기반의 문화에서 디지털 기반 문화로 옮겨가면서 우리가 읽을 때 사용하는 주의의 질은 변화될 수 있다.(75쪽)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단어와 문장을 읽고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배경지식과 연결하여 이해하고 작가의 생각과 느낌과 경험을 전달받는다. 이른바 능동적인 사고가 우리의 뇌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타인의 관점과 느낌을 갖게 되는 깊이 읽기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심오한 혜택이다.(79쪽) 반면 우리가 디지털 매체를 접할 때는 수동적 입장이 된다. 스크린과 영상이 흐르는 속도와 방식에 맞추어 우리 뇌는 수용적인 태도만을 취한다. 깊이 읽고 내용을 전달하는 타인의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사고 방식은 어려울 수 있다.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와 인쇄물로 된 책 읽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 책에서 말하는 '인지적 인내심'이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단어가 가진 의미, 작가가 쓴 문장을 곱씹으며 우리의 삶에 연결시키고 타인의 삶을 경험하기도 한다. 작가가 제시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며 몰입의 상태에 빠져든다. 영화와 영상으로도 몰입이 가능하겠지만 글로 명료하게 표현된 타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갔을 때만큼의 몰입은 이루어 지기 어렵다.(84쪽) 앞서 말한 수동적 입장으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인지적 인내심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사회 구성원이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와 다른 타인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민주 사회가 타자와의 공존하는 삶을 바탕으로 한다고 했을 때 존재 기반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디지털 매체에 빠져드는 것이 비판적 분석과 공감, 반성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사고 과정을 위축시키고 결국에는 민주 사회까지 해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그와 같은 사고 과정을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그가 제시하는 해결 방법은 '양손잡이 읽기 뇌 만들기'에 있다. 이중 언어를 습득하는 아이들처럼 단계에 따라 디지털 기반 읽기와 인쇄 기반 읽기를 적절하게 혼용한다면 보다 나은 읽기 모드가 발달될 것이다. 이메일을 읽을 때는 속도가 보다 빠른 '가볍게 읽기'모드를 사용하고, 보다 진지한 내용을 읽을 때는 깊이 읽기 모드를 사용(276쪽)하는 등 새로운 읽기 모드가 자동적으로 구사될 것이라고 한다.





관조적 삶



나는 처음 이 책을 펼쳐들 때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읽기는 이러이러하고 인쇄된 책 읽기는 이러이러하여 인쇄된 책 읽기가 더 낫다는 비교론적인 설명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인쇄된 책 읽기를 좋아하고 주로 하는 나는 이 책을 통해 논리적인 설명을 얻고자 했다.


우리 뇌가 가진 읽기 회로, 인지적 인내심의 설명, 디지털 매체를 통한 읽기의 한계에 관한 설명, 아이의 단계적 읽기가 가진 특성을 읽으며 내가 기대했던 내용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것은 왜 종이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해답을 구하고자 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종이책이어야 하는가'하는 질문보다 '우리는 왜 읽어야 하는가'하는 부분을 더 깊게 생각해 본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작가가 말한 '관조적 삶'에 대한 부분을 통해서였다.


좋은 독자의 첫 번째 삶은 정보를 모으고 지식을 얻는 것, 두 번째 삶은 즐거움을 위한 독서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삶은 읽기의 절정이자 앞서 말한 두 삶의 종착지인 관조적 독서의 삶(283쪽)이다. 관조적 삶은 모든 종류의 인간 존재를 관조하고 우주를 숙고한다. 정보를 지식으로 바꾸고 지식을 지혜로 바꾸게 한다. 그럼으로써 우주에 대한 더없이 진실되고 보다 아름다운 이해를 넓혀가고, 이러한 전망에 기초한 삶을 살게 하는 것(301쪽). 그것이 관조적 독서의 삶이다.


내가 책을 읽는다는 삶의 의미가 거기에 있었다. 독서를 통한 몰입의 순간에 그런 경험이 일어난다. 텍스트에만 머물지 않고 텍스트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조망하게 하고 그것이 지닌 의미를 확장하면서 독서의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그것이 독서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관조적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스크린을 통한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충분히 안다고 생각한 나머지 수동적, 인지적 안일함에 빠질 수 있고 깊은 성찰은 배제한 채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된다.(295쪽) 이 책에서는 우리의 반성적 능력이 위협받고 결국 민주 사회의 미래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약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법을 돌아보는 능력을 점점 잃어간다면, 사회를 냉정하게 살펴보는 능력, 비판적 분석력과 독립적인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297쪽)


유튜브를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우리는 흐르는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숙고하거나 의미를 확장하거나 내 삶의 배경지식을 통하여 깊게 생각해보기는 쉽지 않다. 디지털 매체가 전하는 정보는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가 쓴 글을 통하여 작가의 지식과 정보와 경험, 느낌과 생각을 대신 경험하고 나의 생각을 넓혀가는 의미가 있다. 우리가 '행간을 읽는다'라고 하는 것은 작가가 제시한 말의 의미에만 머물지 않고 확장되어 타인의 삶으로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으로 우리의 이해가 넓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삶을 깊게 이해하고 더 풍부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종이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하는 단순한 질문인 줄 알았던 이 책의 물음이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한층 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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