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엮음, 위즈덤하우스
*그림을 알지 못하는 사람
내게 누군가 ‘고흐’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그의 어떤 그림을 이야기할지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림을 알지 못하는, 그알못’인 나는 그를 추모하며 만든 노래 돈 맥클린의 ‘Vincent는 좋아하는데'하는 말을 먼저 떠올릴지 모른다. "Starry Starry Night"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첫 소절과 함께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얘기할 줄 아는 미술 소양이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다.
그럴 만큼 나는 그림에 문외한이다. 미술에 관한 상식도, 관심도 그다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서평을 쓸 기회가 닿아, ‘그래 이참에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하여 조금 알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라고 생각했을 만큼 나는 미술에 무지하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 다시 누군가 내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에 대하여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대상을 변형하고 재구성하고 전환해서 그림을 그렸고, 그가 그린 인물과 자연은 멈춰있는 그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있는 영혼의 실체였다. 인물화나 풍경화를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며 그리고 싶어 한 화가였다. 그가 그린 인물은 감정을 담은 모습이었고 그가 그린 풍경은 우리가 보이는 것 너머의 빛과 색을 강렬하게 담은 것이었다. 늘 그렇게 살아있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노력한 정열적인 화가였다.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명이 깃든 색채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 중에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는 낮동안 내내 감자를 판 사람들이 어두운 램프 아래의 저녁 식탁에 모여 감자를 나누며 접시를 내밀고 있는 손과 표정을 그렸는데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표현하고자 한 화가의 의도를 잘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
다만, 그는 늘 돈에 허덕였고 그런 경제적인 압박으로 고통받은 그의 삶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짧게 끝났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 정도로 달라진 인식을 갖게 하였다면 이 책은 애초에 빈센트 반 고흐를 이해하게 하고 빠져들도록 하는 의도를 가지고 쓴 책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후원자이자 동반자였던 네 살 아래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이 책이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다. 편지글이라는 것이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연결되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모아 놓으면 대개 툭툭 끊기는 흐름을 갖기 마련이다. 게다가 사적인 이야기로 채워진 글일텐데 그의 그림과 글이 어떤 연관을 갖게 될지 의문스러웠다. 단지 고흐의 삶을 이해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하나하나의 편지가 그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 이른 아침, 지붕과 지붕의 선이 엮어내는 굴곡과 그 사이에 자라는 풀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있는 수채화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사촌 케이와의 사랑에 좌절을 겪은 후에 만난 시엔의 인물화를 그리면서 담아 낸 ‘슬픔’에 대한 이야기, 유화를 그리면서 그가 그리고 싶어 한 색채에 대한 이야기로 나는 반 고흐의 그림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그가 정말 그리고 싶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황야의 오솔길에 서 있는 아버지를 그리는 일이었다. 히스로 뒤덮인 갈색의 황야를 좁고 하얀 모래길이 가로지르고, 그 위에 엄격하게 보이는 개성적인 인물이 서 있는 모습, 하늘은 조화롭고 열정이 담겼다. 스스로가 자신을 식구들이 집 안에 들이기 싫어하는 개와 같다며 가족들과의 갈등을 이야기 했지만 그는 마음 속 한쪽에 아버지를 그리고 싶어 했다.
그리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초상이 아니라 가난한 시골마을의 전형적인 목사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너도밤나무 숲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부부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며 함께 늙어온 모습을 그리고 싶어 한 그의 마음에서 그가 버림 받은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는가 하는 것을 짚어보며 그의 짧은 생 동안 마음 한쪽에 내내 간직했던 상처가 전해져 마음이 저려왔다.
그의 편지 속에는 그가 그림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삶의 여백(115쪽)’ 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비어 있는 캔버스의 응시, 그것은 화가에게 ‘넌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많은 화가들은 텅 빈 캔버스 앞에 서면 두려움을 느낀다. 반면에 텅 빈 캔버스는 ‘넌 할 수 없어’라는 마법을 깨부수는 열정적이고 진지한 화가를 두려워 한다. ...
삶이 아무리 공허하고 보잘 것 없어보이더라도,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확신과 힘과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서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라고 했지만, 그의 그림이 곧 그의 삶의 전부였으므로 그가 삶을 대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듯하다. 고흐를 정신분열의 화가라고 하기보다 정열에 찬 화가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까닭이다.
고흐가 그림을 그린 것은 1881년 12월부터였고 1890년 7월 29일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으므로 그가 그림을 그린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37살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그는 삶의 온 열정을 그림에 바쳤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668통의 편지 하나하나에는 오로지 그림에 빠져 살았던 그의 삶 그대로가 담겼다.
미술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고 작가가 그림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나는 고흐의 그림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그의 삶을, 그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대했는지에 대하여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월, 마드리드 여행 중에 나는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다. 왕과 그의 가족을 주로 그린,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그림이 있었다. 정형화된 자세로 꽤 오랜 시간 흐트러짐 없이 멈춰서 있었을 것 같은 인물화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했던 왕족의 욕망을 느꼈다. 당시의 화가라는 것은 저명한 인물의 그림을 통하여 화가의 권세를 드높이고 그만한 명예를 얻었던가 싶었다.
고흐의 편지에서는 그런 권세와 명예와 욕망은 없었다. 그는 더 절실하게 전달하고 싶은 감정이 있었고 사랑과 감정으로 충만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의 마음, 단순히 소재를 그림 속으로 잘 옮겨 놓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 단순한 명암과는 다른, 단순한 색채의 나열과는 다른 어떤 것이 있었다. 그림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통하여 다시 그의 그림을 마주하게 될 때 나는 편지에서 읽은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 기회가 닿을 때,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하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가고 싶다. 그런 날이 온다면 이 책에 짙게 그은 밑줄을 펼쳐보며 그의 마음을 먼저 만난 후에 그의 그림을 볼 것이다. 고흐의 그림 안쪽, 짙은 유화물감에 가려진 목탄 연필 밑그림과도 같은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