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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챗쏭 Jul 14. 2019

'어떻게 하면 잘 쓸까' 고민한 적 있나요

[서평]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윤태영 지음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

어떻게 고치면 좋은 문장이 될까는 모든 작가의 깊은 고민이다.


김훈의 '칼의 노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나는 이 문장을 외고 있는데, 이유가 있다. 어느 글에서인가 김훈 작가는 이 첫 문장을 고르는데 오래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사이에서. 나는 이 두문장 사이의 차이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꽃은 피었다'하는 것과 '꽃이 피었다' 하는 것의 차이. 이 사소한 조사의 쓰임을 가지고 그가 오래 두고 고민했다는 이야기 뒤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은 묻히고 말았다.


그는 왜 이 둘 사이를 고민했을까.


이 글을 쓰는 2019년 7월 13일은 4월 7일부터 내가 네이버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98일째 되는 날이다. 나름 한 편의 완성된 글을 쓰려고 발버둥 쳤던 날들이 흘렀다. 은유 작가가 '쓰기의 말들'에서 말한 "매일 쓰는 사람의 글"이 되기 위해 나름 노력했다.


처음에는 어떤 글을 쓸까 하는 글감을 찾는 고민이 주를 이루었다면 나중에는 나다운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느낌과 생각을 온전히 표현해 내는 것과 읽기 쉬운 좋은 문장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은 힘겨웠다. 일단 쓰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써 왔지만 매일 쓴다는 것은 반면 한 편의 글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점차 글이 쌓이다 보니 어떻게든 써내기는 했지만 시간을 들여 고치고 다듬거나 다시 쓰지 못했다. 다시 읽다 보면 문장이 어색하거나 주어와 서술어가 호응하지 않거나 흐름이 매끄럽지 않은 글들도 많았다.


점차 어떤 글을 쓸까에서 어떻게 하면 잘 쓸까로 생각이 옮겨갔다. '어떻게 하면 잘 쓸까'는 글을 시작하는 그 순간에서 끝나는 고민이 아니다. 글을 마치고 고치면서 다시 시작되는 질문이었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어떻게 글을 잘 고칠까'

그는 문장을 빚는다고 했다. 경단을 빚듯 손바닥에 굴려가며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것. 마침내 읽는 사람에게 한입에 털어 넣도록 맛있는 문장 하나를 짚어내는 것이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어떻게 글을 잘 고칠까'에 관한 이 책은 그런 고민이 있던 내게 무척 유용했다. 나를 따끔하게 가르치는 이 책의 곳곳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었다. 그간 알고 있었지만 쉽게 내 것이 되지 못한 내용들이 예시를 통해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좋은 문장론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군더더기가 없는 글'이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한 번에 읽히는 읽기 쉬운 글을 말한다. 그런 문장을 쓰기 위해서 제시하는 몇 가지 방법은 첫 번째로 '단문을 쓰라'는 것. 두 번째는 문장 안에 작은 문장이 포함되는, 포유문을 가급적 쓰지 말라는 것. 세 번째는 주어와 서술어를 가깝게 하라는 것. 네 번째는 머리가 큰 문장, 주어가 긴 수식을 받는 문장을 피하라는 것. 다섯 번째는 구체적인 일상의 언어로 쓰라는 것이다.


순서는 이 책에서 나오는 차례가 아니라 내가 글을 쓰며 지키고자 하는 원칙의 무게 순이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그렇게 마음속에 새겨보기로 했다.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쉽지 않은 방법이다. 글을 쓰다 보면 굳어진 습관처럼 써지는 문장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본래 수식어를 길게 쓰는 사람이다. 문장이 길고 추상적인 표현이 많다. 감상적인 글을 좋아하는 취향 때문이기도 했다. 이런 것을 벗어나 보려고 의도적으로 단문을 쓰려고 한다. 단문을 쓰다 보면 호흡이 짧아진다. 툭툭 끊기는 흐름 때문에 글이 재미가 없다. 이 책에서는 이런 단문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도 제시하는데 단문과 복문을 섞어 쓰라든지 대구 표현을 쓰라든가 하는 방법이다. 예시를 같이 제시하다 보니 차이를 분명하게 알게 했다.


한 꼭지의 글을 쓸 때면 대구를 두세 번 정도 활용해 보자. 의식적으로 꾸준히 반복할 필요가 있다.

몸은 아침을 맞았는데 마음은 한밤중에 머물러 있었다. 해는 동쪽에서 솟아오르고 있었고 달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아버지는 침실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방안은 벌레소리도 없이 고요했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대구를 능숙하게 활용하려면 어휘를 풍부하게 구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낱말들을 익힐 때 비슷한 말과 반대말을 함께 알아두면 더욱 좋을 것이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윤태영, 113쪽~114쪽


이 책은 전체적으로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하여 퇴고하는 방법, 그러니까 잘 고치는 몇 가지 원칙과 예시들로 이루어져 있다.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2부에서는 체크리스트를 소개했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지, 눈 앞에 그려지도록 구체적인 묘사를 사용하고 있는지, 진솔한 이야기로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있는지. 그런데 2부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잘 활용하면 좋은 글을 쓰는 습관이 될 수 있다. 어떻게 글을 고치는 가는 일단 써 놓은 글이 있어야 질문이 가능한 문제다. 어떻게 쓸 것인가는 그렇게 양면적이다.


글쓰기는 필연적으로 무엇을 쓸까에 대한 고민과 마주한다. 이 책에서는 평범한 삶이라 하더라도 누구의 삶도 평범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그것을 쓰라고 한다.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하고 묻기도 한다.(172쪽)  전문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일상의 글을 쓰려고 할 때 이 부분을 잘 갈무리해 둔다면 보다 쉽게 글쓰기에 가까워질 듯하다.

"살아온 게 그저 평범할 따름인데, 뭘 쓸 이야기가 있다고....."

이런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평범한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겉보기에 굴곡이 없으면 무조건 평범한 것일까? 그렇다면 평범하지 않은 삶은 어떤 것일까? 영화 같은 삶일까? 실제의 현실에서 영화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얼굴 모양과 지문이 천차만별이듯이 이 세상에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평탄하면 평탄한 대로 특이한 삶이다. 평탄하지 않으면 그대로 또 특이한 삶이다.

그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다. 그 이야기를 줘하지 말고 써 내려가 보자. 어쩌면 그것이 여행기나 소설보다 더 차별화된 자신의 글일 수 있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윤태영, 172쪽~173쪽


이 책은 쉽게 읽혔다. 좋은 문장론을 쓰면서 작가는 이 책의 문장을 얼마나 공을 들여 다듬었을까. 쉽게 읽혔다는 것은 그 고침의 시간을 반증했다. 작가가 제시하는 글쓰기 방법론, 글을 잘 고치는 방법만큼이나 이 책을 구성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좋은 글이었다. 잘 읽혔고 내용은 알기 쉬웠다.


유시민 작가는 '글쓰기 특강'에서 한 번에 읽히지 않는다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라면 그것은 작가가 잘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잘 읽히지 않는 글은 독자가 잘 읽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잘 쓰지 못한 것이다. 내가 쓰는 글 중에 그런 글은 없는지 늘 살피게 된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좋은 문장을 쓰는 방법, 글을 잘 고치는 방법은 그간 잘 알지 못했던 내용은 아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내용, 내 글에서 지켜졌으면 하는 원칙과도 같았다.


중언부언하지 않는 글, 군더더기 없는 글. 알지만 갈길 먼 글쓰기의 여정에 오늘의 한걸음을 성실하게 걸어보겠다 마음먹는다.




「칼의 노래 」 첫 문장이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가 된 이유

나라면,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로 썼을 것 같다.


다시 김훈의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는 감정이 실린 문장이다. 섬은 버려졌지만 꽃은 피더라 하는 역설의 감정이 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상황을 객관화시킨 문장이다.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고 고민한 것은 칼의 울음을 속으로 집어삼키는 충무공의 이야기를 쓰기 위한 작가의 고심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작가는 이 둘 사이를 얼마나 오래 생각했을까. 나는 그렇게 조사 하나, 문장 하나를 고민한 적이 있었던가.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온도'에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고치는 행위의 연속일 뿐이라고 했다. 좀 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문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해질 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은 깊어지고 단단해진다고 했다. 엉덩이로 앉아 쓴 대체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 글쓰기라고 했다.


어느 글쓰기 책이고 강조하는 한 가지. 고치고 또 고치라는 것이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은 그 고침의 방법을 알기 쉽고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작가가 제시하는 방법론 하나하나를 새겨서 글을 쓰고 고칠 때 체크리스트로 쓰면 나의 글은 조금 더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의 곳곳에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였다. 내 글이 시간을 들여 고침을 통하여 딱 맞는 한 문장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덧.

이 글을 쓰고서 내 글의 첫 독자인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그런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언부언하고, 주어는 무겁고, 글은 수식어로 가득하구먼.'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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