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사토 겐타로 지음
"화학"이라면 본능적 거부감이 들지 모르지만, 리튬이온 전지의 개발이 없었다면 오늘날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다. 화학, 신소재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다.
신소재의 발명은 새로운 도구나 기기의 발전으로 연결되고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손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 불과 20년 전만 거슬러 생각해보면, 누구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필요한 뉴스를 검색하고 정보를 확인하며 위치를 확인하여 길을 찾고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이런 삶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이런 삶이 가능하게 된 것은 ‘리튬이온 전지’라는 배터리 기술의 발달과 스마트폰 내에서 컴퓨터의 CPU(중앙처리장치)의 역할을 하는 AP(Application Process)를 작게 만들어낸 반도체 기술, 그리고 정전기를 활용한 터치로 조작이 가능한 디스플레이 장치의 발전 때문이다. 모든 것이 손 안에서 가능하도록 작게 만들어낸 신소재의 발명 또는 발전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신소재의 발명은 우리 삶과 거리가 먼 과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고 우주선이 달을 오가는 뉴스가 단지 과학자의 이야기라거나 NASA의 이벤트로만 생각되었다면 일본의 화학자이자 과학 관련 프리랜서 활동가인 사토 겐타로가 쓴 책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에서 소개하는 신소재의 발명과 삶의 변화 나아가 세계 역사의 이야기는 그간의 생각을 조금 달리 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석회암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탄산칼슘은 우리 주변에서 분필, 빵을 만드는 이스트, 치약, 지우개에 들어있다. 무엇보다 시멘트의 원료로서의 탄산칼슘은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 재료를 가장 잘 활용한 사람들은 고대 로마인들이었는데, 로마는 시멘트를 이용하여 도로를 정비했다. 전체 15만 km의 도로를 냈고 아직도 자동차 도로로 활용이 가능할 정도로 견고하게 만들었다.(125쪽) 이들이 만든 도로는 적이 침입했을 때 마차를 이용하여 손쉽게 병력을 집중시켜 적을 막아낼 수 있게 했고, 필요한 곳마다 쉽게 이동하여 제국을 건설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의 뒷면에는 시멘트를 가장 잘 활용한 로마인이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다른 동물보다 인류가 사냥의 힘을 갖게 된 것은 콜라겐의 역할이 있다고 이 책은 소개한다. 나무로 만든 활 뒷면에 동물의 뼈나 힘줄을 덧댄 ‘복합 활’이 개발(70쪽)되었는데, 이것은 콜라겐으로 이루어진 뼈와 힘줄을 이용할 줄 아는 인간의 지혜가 바탕이 된 것이다. 사냥의 획기적 발전의 계기가 되었는데, 이 활을 잘 다룬 몽골민족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제국을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종이의 발명은 또 어떤가. 동물의 뼈에 글자를 새겨서 지배계층에서만 전달되던 문자를 누구나 손쉽게 읽고 쓰고 간단하게 보관할 수 있게 된 것은 종이의 발명 덕분이었다. 종이의 발명은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르네상스 혁명으로 인류 문화의 발달을 이뤄냈다. 종이의 발명은 식물 섬유를 활용한 것인데 이를 화학적으로 분석하자면 셀룰로스를 이용한 발명이다.
자석을 나침반으로 이용한 사람들은 중국인이었다. 자석을 이용한 나침반 덕분으로 인류는 대항해의 시대를 열었다. 현대 컴퓨터 사회는 자석의 쓰임이 훨씬 다양하다. 자석은 자기력을 응용하여 모터와 발전기를 만들어 인류가 언제 어디서든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자기 기록 매체는 음악을 저장하여 전달하고 재생하는 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컴퓨터를 활용한 기록매체는 현대사회의 근간이 될 만큼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의 생활에 가장 넓게 쓰이고 있는 신소재라 한다면 플라스틱을 빼놓을 수 없다. 플라스틱은 보통 고분자 물질을 의미한다. 원자가 여러 개 결합한 물질이 '분자'라면 수천 개가 넘는 분자가 결한한 물질이 플라스틱이다. 원자를 인위적으로 결합시켜 수천 개의 분자로 만들어낸 것이 플라스틱인데 그중 폴리에틸렌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쓰인다. 가장 흔한 것은 비닐봉지가 아닐까. 하지만 천연재료와 달리 플라스틱은 세균이나 효소에 의하여 분해되지 않는다. 우리 생활 속에서 손쉽게 쓰이는 플라스틱은 이제 환경문제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이처럼 신소재의 발명은 인류 역사의 변화 곳곳에 그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 신소재의 발명이 오래된 역사책의 이야기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신소재의 변혁이 가장 빠른 시대에 살고 있고 신소재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간의 신소재가 사토 겐타로가 소개한 철, 세라믹, 고무, 알루미늄, 플라스틱, 실크, 실리콘, 자석, 콜라겐, 셀룰로스, 금과 같았다면, 앞으로의 신소재는 상상도 못 할 꿈의 재료가 될 것이다. 바이오 화학 분야일 수도 있고 복합 신소재의 영역일 수도 있다.
과학이 우리의 삶과 가까이 있음을 새삼 느껴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로 쓰인 책이었다.
나의 관심사와 호기심을 이끌어낸 책이었지만...
이 책이 나의 흥미를 이끌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세계사'라는 것과 다른 한 가지는 '신소재'라는 부분이었다. '세계사'가 기존의 나의 관심사의 영역이었다면, '신소재'는 그간 잘 알지 못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이 책이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통합하여 다루었을까.
이 책의 저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일본의 화학자이자 과학 관련 활동을 하는 프리랜서다. 저자는 화학자로서 '신소재'에 관한 부분은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쉽게 소개했다. 원소, 화학반응, 화학적 결합과 같은 부분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재료를 바탕으로 기술했다. 읽는 내내 과학에 관한 지적 호기심으로 흥미로웠다.
반면, '세계사'에 관한 부분은 아쉬웠다. 읽다 보니 마치 '신소재 개발과 관련한 일본 과학사'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즘의 일본이 곧장 떠올라서였을까. 610년에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일본에 전한 종이라는 역사적 사실조차 부정하는 내용(105쪽_'하지만... 610년 이전에 이미 종이가 전래했을 가능성이 크다)과 프랑스 로젠탈 가문의 진주 유통을 독점해온 것을 끝낸 것은 일본의 신기술(132쪽), 지구 자기 역전의 흔적이 일본 치바현 지층에 남아 있어 국제 지질학 연합에 '치바 시대'라고 부르자는 안건이 신청(186쪽)되었다는 내용, 인간의 기억을 대체할 기술혁신을 뒷받침하는 자석의 눈부신 발전에 일본인 연구자가 크게 공헌했다는 내용(192쪽)은 이 글이 세계사 속의 신소재를 소개한 것인지, 세계사에 역할을 한 일본 과학자의 업적을 소개한 것인지 읽는 내내 의아했다.
누에고치의 대규모 집적 공장, 즉 기계 제사장을 세운 식산흥업정책을 자랑삼아 이야기한 부분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메이지유신으로 세워진 정부는 제사공장에서 만든 생사를 대규모로 수출하였고, 제사업은 일본의 기간산업이 되었으며, 이렇게 얻은 외화로 일본은 공업화와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하여 메이지유신 수십 년 만에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가 되었다(150쪽)고 쓰고 있다. 그래서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가가 되어서 어떻게 하였는가.
읽으며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가 오버랩되었다. 그만큼의 기대가 있었다. 12가지나 되는 신소재를 소개하면서 '총균쇠'만큼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계사를 바꾼 신소재의 역할을 깊게 다루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일본인 저자로서의 한계가 느껴졌다. 인류의 생활을 유용하게 한 12가지 신소재의 이야기로서는 훌륭했지만, 그래서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다는 말인가.
덧.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씁쓸한 깨달음. 앞으로의 일본 과학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반드시 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령 예를 들면 "2030년 현재 일본의 신소재는 대한민국의 발달된 신소재 분야 과학기술의 의존도가 90% 이상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은 현재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신소재 분야에서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된 것은 2019년 6월 G20 오사카 회의 이후 아베 정권의 정치적 오판과 관련이 있다. 그때부터 바뀐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정책은 신소재 과학 분야에서 탁월하고도 독창적인 성장을 이끌어오는 바탕이 되었다."와 같은 내용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