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뉴스에서는 벌써 몇 번이나 ‘역대 최고의 기온’이라는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무실 에어컨은 틀었는지 어쨌는지 느낄 수도 없었고 선풍기는 자리 밑에 하나, 책상 위에 하나 그렇게 2개를 연신 틀어놓고도 ‘덥다, 더워’ 하는 말을 반복했다. 창 밖에는 ‘엥~ 애~~앵’ 하는 매미 소리가 찢어질 것처럼 울리는 8월의 한여름이었다.
7월 말 8월 초의 법정 휴정기는 끝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휴가가 이어지고 있는지 업무는 비교적 한가할 때였다. 아침부터 찌는 듯 더운 날에 9시가 갓 지나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아, 여보세요. 내가 지금 거기로 가고 있는데요, 자리에 있지요? 점심시간이 몇 시부터에요?”
꽃분이 할머니였다. 80세가 훌쩍 넘긴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이혼소송을 제기하셨고, 피고 할아버지의 주소를 잘 몰라서 한참 애를 먹이다가 ‘화해권고결정’으로 얼마 전 이혼이 확정되어 사건이 끝난 당사자였다.
꽃분이 할머니는 소장을 제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부터 법원에 전화를 하셨다. 언제 이혼이 되는지, 소장만 내면 이혼이 된다고 하는데 왜 오래 걸리는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물으셨다. 할머니의 소장은 법원 종합민원실에 비치된 양식에 볼펜으로 곱게 쓴 2장 짜리였다.
“할머니, 소장을 봤는데요, 누가 써 주시는 분이 있으세요? 자녀분이나 누가 도와주세요?”
“왜요? 내가 쓴 건데요?”
“그래요? 할머니? 글씨가 너무 고와서요. 여학생 글씨 같아요.”
“내가 여학교를 나왔어요. 우리 친구들은 학교도 못 간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여중 졸업했어요. 그때는 여중만 나와도 좋은데 취직하고 그랬다오. 그래서 내가 글씨를 잘 써요.”
여름이 시작될 무렵 이혼소송을 제기한 할머니는 굳이 그렇게 법원에 찾아와서 당부를 하셨다. 찾아오신 할머니에게 나는 왜 이혼 소송을 하시려고 하는지 여쭤봤다.
꽃분이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게 된 것이 벌써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자식도 없었고 할아버지와 따로 사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동네 노인정에서 어차피 혼자 사는데 이혼소송을 하면 ‘수당’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받을 수 있는 수당이 20만 원도 더 되니 폐지를 줍고 하는 것보다 나아서 이혼소송을 한다고 하셨다.
오지 마시라, 전화로 알려드리겠다, 그리 말씀드려도 꼭 찾아오셔서 내 자리 옆에 손을 짚고 ‘사건이 빨리 진행되었으면 좋겠다’, ‘꼭 빨리 이혼 판결이 나오게 해 달라’고 당부의 말씀을 전하고 가셨다. 한 번은 할머니는 사건에 관하여 ‘준비서면’을 보내고는 전화를 하셨다.
“네,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가 보내신 준비서면 잘 받았고요. 판사님께 잘 전해드렸어요. 말씀도 잘 드렸고요. 곧 화해권고결정 나갈 거예요.”
화해권고결정은 이혼소송에서 간이한 절차로 자주 쓰였다.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자녀 양육에 관하여 별다른 쟁점이 없고 한쪽이 이혼만을 제기하는 경우 법원은 “원고와 피고는 이혼한다”는 간단한 주문을 적어 결정을 한다. 피고가 화해권고결정을 송달받고 2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결정의 주문대로 확정된다.
“아니, 나는 화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고, 이혼하려고 하는 거야. 화해 안 해. 같이 살지도 않는데 무슨 화해를 해.”
‘화해’라는 말에 할머니는 버럭 하셨다.
“할머니, 화해를 하라는 것이 아니고요, ‘화해’라는 말이 들어간 것뿐이에요. 화해권고결정이라는 법원 결정문을 보내드리고 할아버지가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이혼이 확정되는 절차예요.”
그렇게 사건이 끝났는데 더운 여름이 채 가기도 전에 할머니는 굳이 또 오시겠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가 확정증명이나 필요한 서류를 떼러 오시나 싶어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드리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전화를 바로 끊으셨다.
11시가 조금 넘었을까, 할머니는 다시 내 옆에 와서 손을 짚고 섰다. 갑자기 꽉 쥔 손을 내게 내밀었다. 돈이었다.
“내가 고마워서 그래, 이거 이따가 점심 사 먹어. 내가 사주고 싶은데 같이 가자고 하면 안 나갈 거 아니야.”
나는 화들짝 놀라서 얼른 손을 뿌리쳤다.
“아이고 할머니. 큰일 나요. 여중학교 나오신 분이니까 잘 아시잖아요. 공무원이 이런 거 받으면 큰일 나요. 할머니 마음만 잘 받을게요. 가셔서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세요, 할머니.”
몇 번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나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건물 밖까지 배웅해드렸다. 은평구에서 양재역까지 온 보람도 없다고 푸념하신 할머니는 그렇게 쓸쓸한 모습만 남기고 돌아섰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왔는데, 아니 글쎄, 책상 위에 커피 캔 하나 하고 사탕 몇 개가 놓여 있다.
점심 당직을 하던 계장님이 오시더니 그런다.
“아까 왔던 할머니 있잖아, 자기 점심 먹으러 나가니까 바로 들어오시더니 이거 놓고 가시더라고. 나보고 아무 소리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
하, 이거 참.
할머니의 이혼이 노년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어땠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상대 당사자인 할아버지의 입장은 어떤지 알 지도 못했다. 어서 빨리 이혼을 시켜달라며 써낸 할머니의 준비서면 속 고운 글씨만 기억에 남았다.
“저는 80이 넘도록 마음먹은 대로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결혼도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 했고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 결혼을 했으니 남편이 따로 산지 20년이 지났어도 이혼을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이혼을 해서 무슨 큰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이제야 마음먹은 대로 무엇을 하나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혼을 하면 이 나이라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 수 있을 거예요. 꼭 이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꽃분이 할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