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18~7.27 방콕 (1)
진짜 퇴사여행
2019년 여름, 약 10일간의 방콕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 달 전 셧다운 휴가로 찾은 치앙마이에 이어 이번에는 진짜 퇴사여행이었어요.
평소처럼 짧지만은 않은 일정이었고 업무 생각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는 좋은 요건을 갖추었지만 사실 제 맘은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1년 동안 모든 걸 쏟아부은 일에서 손을 떼고 나니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했어요. 게다가 헤드헌터를 통해 제안을 받아 입사가 거의 확정시 되었던 전 직장의 경쟁사로부터 “투자 받는 게 잘 안되어서 여러 포지션의 채용을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한 달 정도 기다려줄 수 있냐”라는 실망스러운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이 퇴사였나
-인생은 정말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의 퇴사여행은 생각만큼 홀가분하지 않았습니다.
낯설게, 새롭게
이번 방콕여행의 기록은 10일간의 여정 중 극히 일부에 대한 기록이 될 것입니다.
2018년부터 휴가를 쓸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고민 없이 방콕을 찾은 탓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경험’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거든요. (게다가 불과 한 달 전에 치앙마이에 다녀왔고요)
시간이 한참 흐른 후 기억에 남은 것은 결국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낯설고 강렬했던’ 추억들뿐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 날들이 더 많은 지금을 조금 슬프게 하는 것 같아요.
방콕과 야간비행
여유로운 일정에 마음이 급하지 않았던 저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도착하는 밤 비행기를 타고 수완나품 공항 인근에서 여유를 부려보기로 했습니다.
수년 전 동생과 처음으로 방콕에 갔을 때에도 늦은 밤 공항에 도착했어요. 당시에는 다른 선택지를 생각지도 못하고 무조건 택시를 잡아 3박 4일간 머물 호텔로 향했습니다. 초행길에 심야 택시라니. 쫄보 자매인 저희는 한시의 긴장감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숙박비가 그리 싼 호텔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하루를 날려버린 것이 꽤 아깝게 느껴집니다. 당시만 해도 방콕에 대한 ‘진짜 정보’가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알게 된 것은 방콕에는 밤에 도착하는 여행객들이 많아 체크인 시간 기준으로 체크 아웃을 할 수 있는 숙소가 많다는 것. 일단 공항 인근에서 쉰 다음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프로여행객들이 많다고 합니다.
게다가 몇 차례 홀로 방콕을 찾으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생겼어요. 지하철이 운행할 시간대에 도착하는 밤 비행기라면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적당한 위치의 저렴한 도미토리에서 1박을 하는 것. 조금 불편한 공간에서 눈을 붙여야하지만 다음날 아침이 되면 ‘나는 무리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본격 여행을 시작한다!’와 같은 자아도취에 젖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하철 운행이 끝난 심야 시간대에 도착하는 늦은 비행기였어요. 떠나기 전 혹시나 하고 찾아보니, 저처럼 심야에 도착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픽업 서비스를 해주는 공항 인근의 숙소가 있더라고요. 바로 여기다! 싶었습니다.
미리 약속해둔 장소에 도착한 커다란 승합차를 보고 살짝 쫄기도(?) 했지만 약 10분 만에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가격 대비 너무 좋은 서비스다!'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MORN-ING HOSTEL
수완나품 공항과 가까이하고 있는 <MORN-ING HOSTEL>은 저렴한 가격에 널찍한 1인실을 갖추고 있는 효율적인 숙소였습니다. 과거 지하철을 타고 도심 인근에서 머물렀던 도미토리에 비하면 훨씬 더 쾌적하고 고급스러웠어요. 푹 자고 일어나, 다음에도 밤 비행기를 타면 무조건 여기 와야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조식까지! 끽해야 시리얼 정도가 아닐까 싶었는데 나름의 정성이 들어간 조리식이 나왔습니다. 덕분에 더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여담, 여행과 향수
여담이지만 저는 여행 때마다 향수를 구매합니다. 어떤 여자 연예인이 ‘여행을 추억하기 위해 향수를 산다’고 인터뷰한 걸 보았는데 저도 비슷한 이유에요. 물론, 평소에 쓰던 향수가 떨어져 같은 제품을 재구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왕이면 평소에는 쉽게 살 것 같지 않은 유니크한 향수를 저렴한 면세가로 도전해 보려 합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인생 향수를 찾게 될 때도 있어요.
이름 모를 연예인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 것은, 저 또한 향수가 불러일으키는 여행의 추억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 여행지에서 뿌렸던 향을 다시 맡으면 그곳에서 보고 느꼈던 아주 섬세한 기억들이 불현듯 되살아나곤 해요. 참 반갑습니다.
당시의 저는 아뜰리에코롱의 <에메로드 아가르>를 구매했습니다. 지금은 국내에서 단종되어 쉽게 구매할 수 없는 제품이 되어버렸는데, 당시의 사진들을 보다 보면 하나같이 <에메로드 아가르>의 기분 좋은 우드향이 떠올라요.
이런 것도 Tip이라면 Tip이 될 수 있을까요. 면세품으로 산 향수는 한 이틀 정도 반듯하게 세워 둔 다음 쓰곤 하는데 이를 참지 못하고 바로 뿌렸다가는 제품이 갖는 본연의 향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비행 중 마구 마구 흔들렸을 테니까요.
여담이 길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낯선 방콕 여행’ 이야기를 이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