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18~7.27 방콕 (2)
게으른자의 여행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 방콕여행 기록은 10일간의 여정 중 극히 일부에 대한 기록입니다. 정확하게는 처음으로 들린 Hua Takhe Old Market을 소개하는데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 같아요.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수완나품 공항 인근에서 1박을 했던 저는 다음 날도 여전히 공항 근처에서 머물렀습니다. 3박 5일의 짧은 일정이었다면 곧장 도심으로 향했겠지만 10일이라는 여유로운 시간에 특별한 계획도 없어 조금 게으르게 움직이자, 싶었습니다.
공항 인근에서 Hua Takhe Old Market까지 그랩을 타고 이동했는데 지금 구글맵을 열어 확인해 보니 5~10분 정도의 짧은 거리입니다.
Hua Takhe Old Market
도착지로 숙소 주소를 찍고 그랩을 탔지만 주소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Hua Takhe Old Market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다리 앞에서 내려야만 했어요.
Hua Takhe Market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시장’이라기보다는 수상 가옥 ‘마을’에 더 가까운 곳으로 엄밀히 말하면 이 다리가 작은 시장과 마을을 잇고 있었어요.
Hua Takhe Market 하면 두 가지가 떠오릅니다.
1.예술가의 마을
인근에 예술 학교가 있어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수준이었어요. 석탄을 이용해 스케치만 하는 학생들도 있고, 물감을 이용해 색을 입히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똥손인 저에게는 하나같이 다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러다 한눈에 봐도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한 청년을 남몰래 관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틀 연속 비슷한 시간대에 도시락을 싸들고 오는 걸 봐서는 점심시간 짬을 내어 들린 직장인이 아닐까 싶었어요. 뭐 하는 사람일까. 뭘 그리고 있을까. 무슨 사연으로 점심시간마다 이 곳에 와 그림을 그릴까. 이것저것 상상해보는. 음흉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게들도 ‘예술가의 마을’다웠습니다. 대다수가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낡은 가게들이었는데 저마다의 스타일이 있었어요.
어릴 적 본 중국 영화에 나올법한 어둑한 가게에서는 나무를 이용한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고, 엽서와 도장을 판매하는 젊은 감성의 한 카페에서는 방문객들이 직접 그린 듯한 귀여운 그림들도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감탄하다 보니 나중에는 문방구에 판매하는 싸구려 장난감조차 어딘지 모르게 조금 특별해 보이기 시작했어요 ㅎㅎ
2.악어가 있는 운하
시장과 마을을 잇고 있는 이 운하에 악어가 살고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곳곳에 다양한 그림들이 있는 마을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악어를 묘사한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여기에 악어라도 사는 건가?' 하는 엉뚱한 상상은 보트를 타는 사람들을 보고는 ‘저 사람들은 악어 투어라도 하는 건가?’로 발전했습니다.
한참을 잊고 있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보았더니 Hua takhe가 ‘악어의 머리’를 뜻하는 말이라고 해요. 언젠가 아주 오래된 악어의 머리가 발견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악어가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악어가 있다고 말한다면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의 마을이었습니다.
악어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하루종일 넋을 놓고 운하를 구경했습니다. (운하를 구경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었어요) 그렇게 상상을 거듭하다 보니 정말 이 어딘가에 악어가 살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게 Hua Takhe Market은 ‘예술가의 마을’, ‘악어가 있는 운하’도 아닌 '상상의 마을'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