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선

by 해린

7살부터 17살까지 피아노를 쳤다. 콩쿠르도 나가고 입시 시험도 쳤으니, 취미로 뚱땅거린 정도라고 하기엔 꽤 심각하게 피아노를 대했다. 피아노를 대하는 나와 엄마의 속내는 사뭇 달랐다. 엄마는 내가 공부를 썩히 잘 하지 못하니-기대만큼 등수가 찍히지 않으니-피아노로 대학을 보낼 생각을 했었다. 나는, 하루 4시간씩 치는 피아노에 신물이 날 때도 있지만, 피아노를 치는 순간에는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나만의 세계에서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10여년 뒤, 두 가지 이유로 그만뒀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곡을 해석하고 나만의 것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시 수업을 해주던 선생님 표현에 따르면, 나는 그저 유명 피아니스트를 그대로 똑같이 치고, 해석을 못한다고 했다. 동시에 엉겁결에 시험 성적이 조금 올라가서, 그럭저럭 대학에 갈 만한 수준이 되었다. 이것이 겨우 시작에 불과한 인생의 매몰비용 시리즈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대학생이 되었다. 1학년은 단과대에서 여러 수업을 듣다가 2학년부터 전공을 결정하면 되는 구조였다. 아빠의 실용주의 노선에 맞춰 중어중문학과를 들어가기로 암암리에 되어 있었다. 아빠는 지붕이 실제로 무너져가던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먹는 흙'을 발견하면 그곳에 흙을 먹으러 가기도 했던 아빠에게, 흰 쌀밥과 멀어보이는 전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빠에게 국어국문학과이란, 흰 쌀밥보다 먹는 흙에 더 가까웠다. 모두가 한국어를 쓰니 특별난 재능이라고 할 수 없고, 글을 써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은 이문열 같은 오직 소수에게만 허락되던 시기였다. 운명의 여신이 있다면, 나를 보고 어떤 웃음을 짓고 있었을까. 당시 근현대 소설에 급격히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읽는 것, 쓰는 것, 다른 소설을 비평하는 것. 다 신이 났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살아서 춤을 췄고, 줄거리는 내 심장을 쥐었다 놨다 했다. 관찰하고, 상상하고, 쓰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니, 중국어를 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다.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한다고 서류를 낸 뒤 부모님에게 통보했다. "굶어 죽으려고 작정을 했냐?" 실제로 아빠는 이 단어를 썼다. 대학 재학 중, 글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이화여대 앞 스타벅스 2층이 고즈넉하고 글이 잘 써져서 늘 거기에서 쓰고 쓰고 또 썼다. 몇 년간 신춘문예에 부지런히 냈었다. 단 한 번도, 아차상 조차 받지 못했다.



굶어 죽기는 무서우니까, 월급 따박따박 주는 회사에 들어갔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위상에 큰 기여를 한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기도 했고, 전 세계 그 누구에게 회사 이름을 말해도 추가 설명이 필요없는 글로벌 기업에 다니기도 했다. 십여년이 넘는 회사원으로서의 시간,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었다. 보람있고 웃을 일도 있었고, 좌절하고 우는 날도 있었다.

회사원에게 업무 능력만큼, 때로 그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조직 생활 적응력일 것이다. 무수히 노력했지만, 나에게 조직 생활 적응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기가 왔다. 처참하다는 생각도 했었다. 동시에 재택 근무하는 직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얄굿게 또 하필 그 시기에 서울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친구가 박사 과정을 권하면서, 학위를 따서 가르치는 일을 하라고 전에 없던 설득을 했다.



그야말로 매몰 비용의 연속이다. 회수도 안되는 큼직큼직한 비용들을 계속 열과 성을 다해 지불한 일들로만 인생이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10여년 간 피아노에 쏟은 시간과 레슨비, 악보비. 소설가의 꿈도 이루지 못했는데, 학부 시절 내내 소설과 고군분투한 젊은 날의 시간들. 교수 사회에서는 회사에서 일한 경력을 단 1초도 인정하지 않는데, 10여년간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보낸 시간들. 실패와 좌절이 가랑비처럼 내리면, 어느 순간 남의 떡만 커보이는 시기가 온다. 내 떡은 다 개떡이고, 하는 일마다 족족 망하는 것 같고, 고쳐쓸 수 없는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면,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하려고 하는 일들을 어찌저찌 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성공은 아니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할까.

다행히 굶어죽지 않았고,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감사하고, 내가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렁에서 기꺼이 꺼내주는 동료들과 친구들이 있다. 나를 엄마이자 우주로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다.



목표만 생각했다면, 넘어지고 엎어졌을 때 부끄러움이 너무 커서 다시 털고 일어나기 어렵다. 낙오된 것처럼 보일 때도, 넘어진 김에 쉬어가면서 실패와 좌절을 '시행착오'로 만들어 가면 된다. 시도하고 잘못됨을 알고, 또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는 시행착오 말이다. 그렇게 곡선을 수도 없이 그리고 그리다 보면,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것 같을 것이다. 꽉 막힌 그런 상황에서도 이걸 거쳐야 우리에게 가장 맞고 좋은 길을 낼 수 있다는 걸 기억하고, 가끔은 실타래 자체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도 괜찮다. 잘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면한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저 하고 있는 일 자체를 즐겁게 하면 된다. 소중한 보물들은, 목표로 향해 가는 그 길 위에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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