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기에 늦은 나이

by 해린

며칠 전, ChatGPT에게 물었다.

"너가 알고 있는 선에서, 내 인생의 10가지 맹점을 알려줘 (with everything you know about me, let me know ten blind spots in my life)". 그랬더니 이 발칙한 인공지능은 내가 깊숙이 숨겨놓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점을 지적한다.


"당신은 때때로 이미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당신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자신없어 합니다."


도대체 저걸, 어떻게 알았지? 하는 의문에 충격이 왔다.

자주 되새겨 생각하진 않지만, 나는 이 맹점들을 정확히 갖고 있다.




나에겐, 어려운 길을 골라서 걷는 습성이 있다.

가깝게는, 마흔 살에 국내 대학에서 마케팅 박사과정을 일이라고 있다. 조직생활 부적응자이긴 했지만, 꾹 참고 가방들고 왔다갔다 하면 됐었다. 그걸 못해서, 월급 주는 울타리를 부수고 뛰쳐나와 10년은 더 젊은 친구들과 같은 교실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었다. 눈도 예전보단 침침하고, 젊을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뇌세포 숫자도 그때보다 줄은 것이 분명하며, 손이 한창 많이 가는 아이도 키우고 살림도 하면서, 공부를 하는 시간들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 친구들과 경쟁하려니, 쉽지 않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내가 이미 늦었다며 비웃거나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너가 교수가 확률은 희박하다. 겨우 졸업을 한다고 해도, 미국에서 박사한 미혼 남성보다 너를 선호할 학교는 없다,"

"마흔에 박사를 시작한 애엄마가 뭐라도 같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 아니냐?"

"국내 박사학위는 휴지에 불과해.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게 어때,"

"박사 장학금으로는 베이비시터 비용도 나올텐데, 차라리 애를 보는 낫지 않을까,"

"너는 정말 노력 하나는 인정이다, 노력충()이라고 해야하나? 하하하"

당시 내가 실제로 들은 들이다.


멋있는 사람들은 인터뷰에서 보통 이렇게 말한다. 남들이 말리는 길을 십수년간 도전해서 성공을 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바들바들 떨면서 튼튼한 돌다리도 의심하는 나는 이런 반응을 면전에서 당한 날이면, 짧게는 하루, 길게는 며칠씩 아팠다. 사실, 어떤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란 있을까, 없을까?

나는 정말 늦은 걸까? 이 질문을 여러 날 던졌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단연코 있다. 특히, 젊은 사람들과 체력 경쟁을 해야 하는 분야의 경우, 늦게 시작하는 것은 치명적이다. 단점이 큰가 작은가의 문제만 있을 뿐, 늦게 시작하면 '초기'에는 장점보다 단점이 상당히 크다. 달리기에서 늦게 출발하면, 따라잡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더 중요한 질문은, 조금 늦어도 상관없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초기의 난관을 딛고 나만의 행복 지대에 안착할 것인가? 이다.

늦어도 상관없다고 하는 것은 이미 자신만의 "왜 이 도전을 하는가?"가 명확해진 시점일 것이다. 많은 문제가 그렇듯, "왜"가 분명해지면, 그 뒤엔 "어떻게 이길 것인가?"가 와야 한다.



78세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그랜마 모지스 (Grandma Moses)는 101살까지 1600여 점의 그림을 그리고, 미국의 국민 화가로 이름을 남겼다. 법률가의 길을 걷던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서른 살에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모지스에 비하면 어린 나이지만, 1895년 경 러시아의 평균 수명은 30세 전후임을 감안하면, 꽤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고 분류할 수 있다. 안태진 감독은 51살에 영화 올빼미의 메가폰을 잡음으로서 데뷔를 했다. 보통 그 나이대는 대가가 되는 시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엎어졌다고 아무것도 안 쓰면 다 끝나는 거"라서 17년간 계속 썼고, 새로운 문을 활짝 열었다.


비즈니스로 가보자. 마윈은 36살에 알리바바를 창업했고, 캔들러는 41살에 코카콜라를 시작했으며, 샘월튼은 44살에 월마트를 창업했고, 포르쉐는 56살에 포르쉐를 창업했고, 평생 천 번 넘게 거절당한 커넬 샌더스는 65살에 KFC를 시작했다. 48세에 질레트를 창업한 킹 질레트는 첫 해, 면도기 51개, 면도날 168개를 팔았지만, 결국 20세기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믹서기 판매원이었던 레이 크록은 52살에 맥도날드를 창업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궜다.


작가들은 어떠한가. 고 박완서 작가는 아이들을 키워놓고 마흔 살에 소설가로 등단했고, 소설로 치유의 삶을 살며 주옥같은 작품들을 남겼다. 윌리엄 스타이그는 62세에 동화작가가 되었고, 파울로 코엘료는 잡지기자, 여행자로 떠돌다가 40살에 '연금술사'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제임스 패터슨은 50살에 광고회사 임원에서 작가로 커리어를 재편했고, 현재까지 250권이 넘는 작품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렸다.


이번엔 학계로 가보자. 각 문화간 차이를 이해하는 이론적 틀을 마련하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연구를 한 홉스테드(Geert Hofstede)는 10여년간 회사에서 일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저명한 모델(Hofstede's Cultural Framework)을 구상했다. 자원 기반 이론 (Resource-based theory)라는 경영 전략에서 기초 중 기초가 되는 이론을 설립한 에디스 (Edith Penrose)는 1914년에 태어난 인물이다. 남편이 사냥을 나갔다가 사고로 미망인이 된 뒤, 어린 아들과 발티모어에 건너가 박사를 시작했고, 36살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오늘날 생각해봐도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였고, 당시 기대수명(71.1세)에 비춰볼 때도 인생 중반 이후에 인생 및 학문적 전환점이 왔다고 볼 수 있다. 장 앙리 파브르는 56세 때부터 여러 곤충의 생태를 묘사한 곤충기를 쓰기 시작하여, 84세 때 완성하였다.



늦게 시작했지만, 본인의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사례는 도처에 널려있다.

늦었다는 것이 실패와 동의어가 아니다. 늦게 시작한 모든 이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늦었다고 문이 닫히는 것도 아닌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다.



직시. 어느 분야든 늦게 시작했다면, 늦은 것은 늦었다고 인정부터 해야 한다. 어차피 그 길로 들어섰고 되돌아갈 것이 아니라면, 똑바로 상황을 봐야 한다. 그래야 최적의 이기는 전략을 짤 수 있다. 게다가 고난은 혼자 찾아오지 않는다고, 늦게 시작할 수록 비단길 깔고 시작할 가능성은 낮다. 부모님의 물심양면적 지원, 부양 가족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친구들의 응원, 젊음에서 오는 체력, 이 모든 게 다 없을 수 있다. 내가 무엇을 가용할 수 있고, 어떤 점에 특 강점이 있는가? 스스로가 미물처럼 보여도, 누구나 가용 자원과 강점은 있다. 보통은 겸손함에 묻혀 있으니, 나올 때까지 파내야 한다.


무시. 마음 단단히 먹고 쉽게 상처받으면 안 된다. 대부분은 남의 말, 시선에 다치는데,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다. 장담할 수 있다. 정말 걱정하고 관심갖는 사람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지, 상처를 주는 방향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때문에 기분 나쁘거나 우울해하면서 괜히 혼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자기 연민 버리기. 각자만의 시간이 있다, 남들이 정해놓은 스케줄에 맞춰 달릴 필요가 없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다 좋은 말씀들이지만, 진짜 늦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은 오히려 공허하다. 자기 위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택했으면,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전략을 수립하고, 죽을 힘을 다해서 버텨야 한다. 자기연민에 빠져 위안을 주는 솜사탕같은 것만 찾아다니면, 애꿎은 시간만 간다.


매일 버티기.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새로 뛰어든 분야의 기초를 쌓고 나면, 원래 했던 일에서 보고 들으며 쌓은 지식과 지혜가 이 새로운 분야와 만나서 창의성과 통찰력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리고, 그 발현 시기를 최대한 당기기 위해, 무던히 우직하게 지리멸렬해도 포기하지 않고 매일 뚜벅뚜벅 걸어 가야 한다. 기존 분야와 새로운 분야가 만나 긍정적인 폭발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저 늦게 시작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다.



더닝 크루거의 효과는 유능해지기 위해 깨달음의 오르막을 올라가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업 때 학생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는데, 모든 그래프의 기울기는 '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교과서에는 이렇게 보여도, 우직하게 해야할 일을 하다보면 기울기가 그만큼 하루하루 가파르게 변해서 '유능함의 지대'로 좀 더 빠르고 가깝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면, 그 마음이 확실하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남들의 무시는 무시하며, 자기 연민에 빠지는 대신 매일 무쇠처럼 단단하고 흔들림없이 한 걸음 걸어나가야 한다. 그것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게도 던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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