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4번 말아먹었다.
4번째로 사무실을 비우던 날, 텅 빈 공간 양팔 너비의 책상에 덩그러니 앉아
약을 털어넣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죽을 거 소주나 한 병 먹고 가자. 사이다와 섞어서 빨리 마시고, 빨리 죽으러 가야겠다.
사이다를 1/7 정도 따르고, 나머지는 소주로 채웠다.
한 모금 마셨는데, 달았다.
이러려고 섞은 건 아니었다. 마실수록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졌다.
소주에게 고마웠다.
그동안, 인생의 쓴 맛만 보았다. 내 인생과 참 닮았다는 생각에 소주가 좋았다.
하지만, 내가 사이다처럼 인생의 단 맛을 아직 못 본 것은 아닐까?
단 맛이 아주 조금만 섞여도 인생이 이렇게 다 술술 넘어가는데.
인생은 아직 다 마시지 못한 거대한 하나의 컵인데,
6/7컵의 소주만 연달아 맛보고 인생은 쓰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아직 남은 삶에 사이다를 섞어보자."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절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거물이 되었다고 한다.
보통은 술자리에서 들은 이런 류의 이야기는 귀가와 동시에 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오래 맴돌았다.
나는 생각했다.
과장이다. 조금 덜 쓰다고 단 것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쓰기만 한 인생에서 사이다를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똑같은 일상과 사고 방식 속에서는 도저히 사이다를 생각낼 수 없다.
절박하고, 동시에 이겨내려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으며, 평소와 다른 시도-가령, 사이다를 섞는다든지-를 했기에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창조적 사고에 관한 선구적 연구자인 윌러스는 창조적 문제 해결을 위해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부화의 시간처럼, 창조적 해결을 위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김정운> -
그렇다.
절절매면서 문제만 바라보면 여유를 잃는다. 장고 끝에 악수두게 된다. 그리고, 결과에 연연하면 과정이 주는 즐거움도 놓치고, 좋은 결과를 갖고오는 것도 아니다.
죽으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죽을 용기가 있다면 살 용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늘 먹고 보고 마시던 것이 다르게 보인다.
그러니, 버티면 기회는 온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산다고 생각하기 보단, 어떻게든 이겨나가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잃지 않으면, 시간의 문제일 뿐, 나의 시간은 온다.
문제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본디 작게 출발한 것이라도 그 문제가 점점 커진다.
다 놓고 싶을 때가 99%이지만, 자존감 지키면서 어떻게든 이겨나가겠다고 나머지 1%만 다짐해보자.
그래야 나를 지킬 수 있다.
현실은, 자주 다짐하더라도 더 처절하게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나를 지켜나간다면, 반드시 터널의 끝까지 걸어나갈 수 있다.
싫은 소리 좀 들었다고 위축되지 않아도 괜찮다. 남들은 나에게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다. 더 중요한 사실은, 죽을 힘을 다해서 내가 고비를 넘기고 자리를 잡으면 그걸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도드라지게 남아준다.
마치 체를 걸러 고운 모래만 남게 되듯이 말이다.
+ 서른 넷, 남동생이 긴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다.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럴 땐, 말보다 글이 더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