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교수들을 대상으로 외부 강사를 초청하여, 교수법에 대해 듣는 자리가 있었다. 학생을 중심에 두고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한 노교수가 강사에게 물었다.
"학생들이 배울 동기(motivation)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교수들이 동기를 부여해야 할까요? 아니면, 동기는 스스로 가져야 하는 것이니 동기 부여가 잘 된 학생들 위주로 수업을 이끌어가야 할까요?"
갑론을박이 이어졌지만, 화목하게 수업 내용과 동기 부여가 적절히 균형잡힌 전달이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는 이유는, 삶을 앞으로 밀고나가기 위함이다. AI에 물어보면 다 나오는 시대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창의성에 기반한 "나의" 지혜와 지식이 더 필요하다. 제대로 물어보고, 얻은 결과값에 대해서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지식과 뉴스가 넘쳐난다는 것을 세살배기도 아는 시대이다. 그러니 배워서 뭐하나, 체념에 빠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매 초 쏟아지는 정보들로 인해, 배우는 것, 배운 것을 써먹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흡사 전투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기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기로 했다. 손자병법에서도 나오듯,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으니, 그저 지금껏 쌓은 진지를 지키고 살고 싶다는 목표를 가질 뿐이다. 이 목표도 절대 쉽다고만 할 수 없다.
전투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장군, 전략, 전술, 군인들, 최신 무기, 이런 것들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지를 구축한다는 것은 단순히 흙을 쌓고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지탱할 토대를 만드는 행위다. 얄팍한 승리를 좇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포병들은 일견 기세등등해 보이나, 금세 꺼지고 만다. 그러나 차분히 땅을 다지고 방어선을 세운 군대는 거친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삶도 이와 같다. 마음의 진지를 세운 사람은 작은 유혹, 시비, 또는 시련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깊은 의미의 전투 준비라고 할 수 있다.
유독 올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연달아 나를 강타했다. 일어설 만 하면 때리고, 겨우 짚고 일어나면 또 맞고. 울어도 보고, 책도 읽어보고, 상담도 받아보고, 기도도 해보고. 아이디어가 닿는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 그러다, 오랜만에 아빠와 동생들과 함께 가족 여행을 하며 문득 생각했다.
관계에 대한 믿음이 진지 구축의 출발점이다. 나를 믿고 소중한 사람을 믿고. 또,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내일의 해가 뜨면 다시 출전할 힘을 얻을 수 있는 관계가 진지 구축에 필요하다. 풍파가 모질어도 흔들림없는 마음의 자리가 마련되면, 일어서서 다시 앞으로 밀고갈 힘, 즉, 동기를 뿜어낼 수 있다. 소중한 관계를 귀하게 여기고, 그곳에서 부터 출발하여 진지를 구축하는 일은 중요하다. 승리는 벼린 칼끝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진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