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서 친구 추천 내용을 보는데, 익숙한 얼굴을 만났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단짝 친구 영희의 전 남편이었다. 그 전 남편은 어떤 여성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대문에 걸어놓고, 그 애정을 보여주는 용도로 해당 계정을 쓰는 것 같았다.
영희와 나 사이에 다른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그녀가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아무도 나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몇 년간 내가 고독을 자처하며 은둔했던 탓도 있지만, 굳이 그런 얘기를 전할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연락이 끊기기 전, 영희를 힘들게 했던 그 전 남편 이야기들이 생각나서 한참을 째려봤다. 그리고, "내가 혹시라도 많이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으면, 영희한테 연락을 해줘. 보고 싶었다고 전해주면서."라고 몇 년 전 애들 아빠에게 당부했던 것도 떠올랐다.
단짝 친구들.
언제부터 였을까. 누군가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면, 어김없이 몇 년 뒤에 그 친구와 멀어지는 '일'이 생겼다. 부러 밀어낸 것도 아닌데, 늘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언제부터 였을까. 깊게 친해지려고 하면, 나는 살짝 거리를 둔다. 덜 가깝더라도, 조금은 멀리서 길게 친구를 하고 싶어서였다.
1. 경이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붙어다니던 분신같은 친구였다. 90년대 후반, 우리는 2교시 끝난 뒤 쉬는 시간에 밥을 싹싹 비우고 양치까지 끝냈다. 여유있게 확보한 점심시간에는 경이와 수다를 떨거나 떡볶이나 빵 같은 후식을 사먹으며, 행복을 주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경이는 유독 나를 좋아해주었다. 수업 시간이 아닌 그 모든 시간에, 여기저기 학교/집 주변에 갈 곳들과 놀 것들, 탐독할 만화책들 리스트를 갖고 신나게 시간을 보내는 법도 알려주었다. 말주변도 없고 주변머리도 없던 나를 붙잡고 조곤조곤 대화도 잘 시작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잘 들어주었다. 우리는 별 일이 없으면 서로의 집에서 그냥 뒹굴뒹굴 하면서 노닥거렸고, 그마저도 그렇게 재미있었다.
비밀을 만들 겨를 조차 없었다. 고3때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과 개별 면담을 했었는데, 경이한테 나랑 놀지 말라고 했단다. 경이보다 내가 공부를 아주 미세하게 조금 더 잘 했었는데, 담임 눈에는 내 성적이 떨어질 것 같으니 경이를 붙잡고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는 그 담임 선생님 성을 '계'씨로 바꾸었다. 정작 내 성적이 곤두박질 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봄 소풍을 갔다가, 다른 반 남학생에게 한 눈에 반해서 낙뢰가 내리꽂히듯 성적이 내려갔었다. 경이는 내가 그 남학생과 연결될 수 있게 발벗고 도와주었다. 그 남학생의 베프 박씨와 전략적으로 친해진 뒤, 박씨를 통해 나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도록 쓰리쿠션을 걸어주고, 학교 방송국에 사연도 보내서 점심 때 신청곡을 띄워주기도 했었다. 신청곡이 사연과 함께 전교에 울려퍼질 때, "그 남학생이 듣고 있을까?" 내가 궁금해 하면, "기다려봐, 걔 뭐하는지 확인하고 올께" 하고, 그 남학생의 청취 여부도 확인해주곤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내가 그 남학생과 사귀게 된 이후에도 시시콜콜 사귀는 과정과 사연들을 다 들어주고 상담도 해줬다. 마음이 어화둥둥 떠다니니 성적이 좋을리가 없었고, 그 남학생이 재수를 한다길래 덩달아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2번째 수능을 치고 각자 대학교를 결정했을 무렵, 우리는 헤어졌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조금 의아할 것이다. 왜 그 단짝과 멀어졌을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라는 가사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그 남학생은 나와 헤어진 뒤, 꽤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좋아했지만, 헤어진 뒤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볍게 털고 일어났고, 그는 오랜 기간 방황했다고 한다. 처음이라, 무슨 말을 하면서 헤어지자고 해야할지 나는 고민했었다. 그때, 실시간 문자로 이렇게 얘기를 해, 라며 조언을 주던 경이는, 늘 술에 취해서 업혀가야 했던 그 남학생을 위로하다가 그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얘기는 경이에게 직접 들었던 것 같다. 무어라고 나에게 했었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경이가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는지, 아니면 무심하게 그렇게 됐어, 라고 했는지 그 어조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소식을 접하고 머리 속이 하얘졌던 것이 기억난다. 이미 헤어진 뒤였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위로하다가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었으니, 지금은 그게 뭐 대수인가 싶다. 어린 시절, 나의 그 모든 연애 스토리를 다 알고, 같이 웃고 울고, 처음 반했던 순간부터 헤어지던 그 시간까지 모든 시간들을 철저히 다 알고 있는 경이가 그 친구와 함께라니, 그저 믿을 수가 없었다. 며칠을 생각하다가, 경이에게 이제 우리의 친구 관계는 끝이다, 라는 이메일을 길게 썼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좌충우돌 시간을 늘 함께했던 친구를 대학교 2학년 때 끊어낸 뒤, 나는 "친구가 무슨 소용이야"를 외치고 다녔다.
2. 친구 불신론자라고 외치던 스스로가 무안하게, 대학교 동아리에서 또 다른 단짝 친구를 만나게 된다. 영희는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프로켄 같이 동그랗고 솜사탕 같은 뽀글뽀글 헤어스타일을 하고, 영어를 원어민처럼 했다. 영희가 영어 발음을 했었는데, 나는 순간 쫄았다. 한국 교육만 받았고, 한국사람 발음으로 영어를 할 수 밖에 없던 나의 한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랄까. 영희를 따라서 혀를 굴러보았는데, 옆에서 듣던 옥경이가 "그냥 원래 하던대로 해. 따라하려고 하니 더 이상해"라고 중심을 잡아주었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영희는 옷 입는 스타일도 남달랐다. 때로는 과감하고, 때로는 커리어우먼처럼 멋졌다. 당시 패션 잡지도 보고 나름 옷을 잘 입어보려고 노력했지만, 뭔가 늘 어색하거나 모자랐던 나에게 영희는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별로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둘다 동아리 활동을 마치 내 일처럼 하는 시기가 있었고, 매일 만나서 무언가를 얘기하다보니 친해졌고, 대학 졸업 후 우리는 각각 대기업에 입사를 해서 회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 더 친해졌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뭐하니, 맥주 한 잔 하자"로 시작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연애, 결혼, 커리어, 인간 관계, 가족사. 부끄러운 일도 영희에게는 술술 얘기할 수 있었고, 그만큼 위로도 받았다.
대기업이라는 조직에 우리를 끼워맞추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깝다며, 우리는 사업을 도모했다. 큰 조직의 부품으로써 맡은 일이야 곧잘 했지만, A-Z까지 전천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업은 또 다른 세계였다. 모르는 일 투성이었고, 되는 일도 없으며, 월급도 없고, 미래는 불투명하니, 어느 순간 뭘 더 한다고 해서 잘 될 것 같지 않다는 결론이 났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한 번 싸우지도 않았다. 다만, 서운한 그 모든 시간들을 안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평행선을 달린다는 말이 있다.
가까워지지 않고 각자 자리에서 서로를 부르며 이쪽으로 오라고 할 때 쓰이기도 한다. 살다보니, 평행선을 달리는 관계는 그나마 낫다. 아직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긴 하니 말이다. 둔각처럼 벌어져서 어느 순간 서로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관계보단 그나마 가까우니 말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는 어렸고, 감정을 처리하는 데 미숙했거나, 매우 충실했다. 어쩌면, 인연이 거기까지였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어린 날의 나와 희노애락을 함께하고, 지금의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힘껏 지지하던, 그 단짝들에게 고마운 마음만 남아있다.
아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 적 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으니. 평행선으로라도 같이 달렸어야 하는데, 이제는 어느 별에서 무엇을 즐겨 먹으며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설령 안다고 해도,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그저 고마운 기억만 갖고 진심으로 그녀들이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