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얘기

by 해린

학부 전공필수 과목인 소비자 행동론 수업 시간이었다. 문화적 차이와 나라별 "금기사항(taboo)"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고, 내 수업의 대다수는 프랑스 학생들이라,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프렌치에게 금기 사항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늘 발표를 적극적으로 하는 발렌티노가 답한다.

"돈 이야기는 안 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프랑스 사람들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잘 안 하는 것 같다. 돈 많다고 자랑도 별로 안 하고, 돈 없다고 불평도 잘 안하는 것 같다. 친하게 지내는 프렌치, 유럽 친구들이 꽤 있는데 생각해보니 돈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곳이고,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어 어찌되든 먹고 살 수는 있으니 그런 것일까? 다른 한 편으론, 단타 등 방법을 써서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기도 하다. 일례로, 프랑스는 주식 계좌에서 사고팔아 남긴 차익을 일반 계좌로 "쉽게" 보낼 수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주식으로 돈을 벌어도 바로 즉각적으로 내 손에 현금을 쥘 수가 없다는 말이다. 차익을 지금 바로 당장 내 손에 쥐려면, 주식 계좌를 해지해야 한다.


작년에 주식 계좌를 만들고 2백만원을 이체한 뒤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의심조차 안했었다. 차익실현을 한 뒤 일반 계좌로 이체를 할 수가 없을 거라고는 단 1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제 내 소중한 비상금을 5년 뒤에나 찾아야 한다, 아니 찾을 수 있다. 계좌 생성과 해지를 계속 반복하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계좌를 만든 뒤 5년 이내에 해지하면 세금이 높아서 굳이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에서 계좌를 만들고 해지하려면 은행 직원과 약속을 미리 잡고, 은행에 직접 방문을 해서, 말도 안되게 많은 서류들을 검토하고 서명을 하고, 그로도 며칠이 지나야 요청한 업무가 마무리 된다. 우리나라처럼 온라인으로 몇 분만에 빛의 속도로 되는 과정이 여기에는 없다.


집을 사고 파는 것도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모든 과정을 설명하는 것 조차 오래 걸린다. 핵심적인 과정만 몇 개 살펴보면 이렇다. 부동산에 연락을 해서 마음에 드는 집을 (겨우) 고르고 계약을 하겠다고 하면, 집주인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 편지를 받은 주인이 수락을 해야만 가계약금을 입금할 수 있다. 프랑스는 계좌 이체를 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몇 초 만에 완료되지 않는다. 금액이 클 수록 오래 걸리고, 주말에는 처리가 잘 안되며, 그러다 보니 계좌이체가 길면 며칠이 걸리기도 한다. 입금 확인이 되면, 가계약금을 입금했더라도 십 수 일간의 상호간 숙고 기간을 또 가져야만 한다. 그 기간에는 매수자가 아무런 손해없이 가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집 매매를 위한 대출도 빠르면 두 달, 길면 세 달은 걸린다. 대출 금액 역시, 월급의 일정 퍼센트를 넘을 수 없기 때문에 현금이 어느 정도 있어야지만 집을 살 수 있고, 보유기간이 짧으면 세금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여기서는 동산이든 부동산이든 무언가를 사면, 진득하게 갖고 있다가 오만 정이 떨어질 때즈음 처분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유투브 채널에는 돈 관련된 채널이 넘쳐나고, 단타 방법론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였을 때 돈 얘기는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차익 실현도 느려터진 이런 환경에서, 돈 얘기가 무슨 재미인가!



돈에 관심이 많고, 돈에 민감한 나는, 처음 프랑스에 이사를 왔을 때, 높은 물가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가령, Paris에서 치안이 괜찮고 주변 상점들이 잘 갖춰졌으며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방 2개, 화장실 1개, 20평 가량 아파트를 구하면, 월세는 3천유로(한화 480만원, 2025년 기준) 정도다. 관리비도 비싼 편이다. 안 쓰는 콘센트 뽑고 다니는 일도 참 잘하고 있고, 잔디 키우면 물 많이 써야 하니까 정원을 황폐하게 해놓고 사는데도 불구하고, 4인가족 우리 집 기준으로 매월 전기세는 190유로, 수도요금은 약 80유로, 집 보험(필수) 120유로, 인터넷 40유로를 지불한다(총 약 68만원). 집 밖으로 나가보면, 자동차 기름값은 리터당 약 1.8유로 (3천원), 자동차 보험도 매월 130유로 (20만원), 환승할인이 없는 버스, 지하철은 탈 때 마다 2-3유로, 외식 한 번 하면 음료 딱 한잔 포함해서 인당 30-40유로 (5-6만원)는 거뜬히 나간다.


이전에 살던 집은 가스로 난방을 했었는데, 가스 난방비는 충격적인 수준이다. 임산부 시절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며 겁없이 난방을 틀었다가 첫 해 11월에 1500유로(240만원) 난방비가 청구 되었다. 고지서를 받고 일단 차분하게 바로 난방을 다 껐다. 150유로라고 해도 시원찮을 판에 0이 하나 더 붙었으니, 주변 이웃들한테 거품물고 화를 뿜으며 이게 정상이냐고 투덜거렸다. 옆옆집 사는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처음 온 해 겨울, 난방비만 3천유로(480만원) 나왔어! 난방 끄고 패딩 입고 살아." 뉴스에서 보던 에너지 푸어(energy poor)가 이런 건가, 애석했지만 난방 끄고 패딩입고 수면바지와 수면양말에 의지하며 버텼다.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온 뒤, 전기 난방이라 난방비 고통에서는 벗어났지만, 전등을 7군데나 달아야 했었다. 그렇다, 이전 살던 사람이 "전등"을 다 뽑아서 가져갔다. 전등이 있던 자리에 빨간선과 파란선만 빼꼼히 나와있어 이전에 전등이 있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눈도 침침해지는 나이인데 어둠 속에 살다가, 이대로는 못살겠다 싶었다. 유투브를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전등을 설치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3군데 견적을 요청했다. 600유로, 400유로, 250유로 이렇게 나왔다. 약 반나절 걸리는 전등 7개 설치가 최소 40만원의 인건비를 요한다는 것이다. 250유로 작업반장을 섭외하고, 전등과 전구값은 별도로 들였다. 밤에 요리도 하고 일도 하는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꽤나 많은 노력과 금전 투자를 한 셈이다. 하아. 전기, 배관 등 일에 무식한 내 자신이 싫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높은 생활비에 월말이 되면 잔고를 매일 체크하면서 살고, 월말에는 외식도 거의 안하고 집밥으로 절약과 건강까지 도모한다. 의미있게 달라진 건, 돈에 대한 생각과 태도를 바꾼 것이다. 현재 상황을 인정하게 되면서, 돈에 둔감해졌다. 동시에 돈 얘기에 흥미도 잃었다. 자연스럽게 스트레스도 덜 받고, 풍족하진 않아도 나름의 재미를 찾는 방법도 찾았다.



한국에 살 때, 부자들을 만나면 나는 위축되거나 부러워했다. 실상 그들이 얼마나 큰 부자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면서도, 그들의 자동차, 과시하는 말들, 사는 동네, 들고다니는 물건들을 보고 지레 짐작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들었다.

Paris에 살면, 전세계 부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부자들과 좀 다른 면이 있는데, 대다수는 돈 자랑을 대놓고 하지 않아서 그들이 부자인지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여유가 있다는 느낌 정도야 있었지만, 그것이 유럽인 특유의 여유인지, 어마어마한 자산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러다가, 한 유럽인 친구가 지금까지 내가 알던 범위 밖의, 엄청난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집사들이 있고, 수 십억에 이르는 별장이 세계 곳곳에 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신선한 재료로 식사를 하고, 깨끗하게 접힌 옷을 골라 입으며, 집은 늘 모델하우스처럼 정리되어 있고, 기사에게 말하면 원하는 곳으로 이동도 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전문가가 있으면 비용 상관없이 고용할 수도 있었다. 니스에 사는 유명 건축가를 고용해서, 파리의 집 공사를 맡기는 일도 마치 자전거타고 옆동네 가듯이 가볍게 이야기했다 (이건 마음에 드는 전문가가 있으면 그의 출장비를 모두 감당하더라도 그 사람을 모실 수 있다는 맥락이다).


아주 높은 가능성으로, 이번 생에서 나는 그녀와 같은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일개미같이 또는 코뚜레한 소처럼 일을 하겠지.


의외로, 그렇지만 괜찮다.

야주 약간은, 그녀처럼 자산이 있다면 좋겠지?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 달 벌어서 한 달 잘 살아도, 살 만 하다.

자포자기나 체념이 아니라, 실로 괜찮다.



삶이 아무리 염병을 해도, 웃음을 잃지 않으면 종국에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 아니까.

뭉근하게 끓이고 단맛을 내려면 소금을 쳐야한다는 것을 아니까.

스스로가 언제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소처럼 지루하게 사는 이 인생의 미래가 몹시 궁금하지만, 삶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이 모여서 만든다는 것을 아니까.

부자로 산다는 것은, 돈을 관리하고 지켜야 하는 데서 오는 또 다른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물론 돈이 없어서 생기는 고통보단 낫다고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지금의 모습을 인정하고 어여삐 여길 수 있으니까.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