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

by 해린

아들이 영국 신사에게서 수학 교습을 받은 적이 있다. 은퇴한 할아버지였고, 품위있게 칭찬하는 법을 알았고, 물 한 잔을 드려도 친절에 감사한다면서 인사를 잊지 않던 분이었다.

하루는 선생님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다. 센강과 가까우니 한 번 놀러오라고 하여, 들뜬 마음에 선뜻 가겠다고 했다. 사립 학교 선생님을 은퇴한 전형적인 영국인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주소를 받아서 내비게이션을 따라 간 곳은 센느 강의 보트 하우스(boat house) 지역이었다. 보트에 살 것이라고는 일 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집을 못 찾았었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배들만 잔뜩 서있고 '집'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 주소가 잘못 된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주소가 맞다고 했다. 나는, 진짜 없다고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결국, 선생님이 데리러 나왔고, 배와 땅을 잇는 짧은 다리를 건너 보트 하우스에 입장했다.


나는 포커페이스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반쯤 놀라고 반쯤은 의구심에 가득한 눈, 그리고 웃으려고 노력하는 입으로 말을 했다. 좋은 풍경의 집에 사는구나! 라고 말이다.


알았는지 몰랐는지, 선생님은 웃으며 집 구경을 시켜준다고 했다.

가는 길목마다 거미줄이 포진하고 있었다. 거실은 바람과 비, 햇빛을 여과없이 느낄 수 있게 시원한 야외에 있었다. 역시 곳곳에 거미줄과 먼지가 그득했다. 선장실은 용변을 보는 화장실과 화구 1개짜리 간이 주방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화장실 타일은 유명한 누군가가 만든 것으로 꾸민 것이라고 했다. 아직 놀라있던 터라, 타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었다.


샤워부스는 갑판에 있었다. 그런데, 천장이 없다.

하늘과 구름 아래에서 씻어야 한다. 겨울에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물이 따뜻하니 샤워할 때는 좋다고 한다 (프랑스의 겨울은 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기는 하다).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재빨리 닦고 옷을 순식간에 입으면 또 괜찮다고 한다.


나는 절대로 여기서 못 살 것 같다.


일단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보트 맞은편에 있는 육지의 펍에 들어가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물었다. 선생님 집 어땠냐고.

아들은 우리집 보다 좋다고 했다. 충격이다. 나는 되물었다.

왜?

더 집중이 잘 된다고 한다. TV도 없고, 강물 소리 들으면서 앉아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선생님은 온화하고 신사적이며, 자녀들도 근처에 살고 있다 그랬고, 유럽 다른 곳으로 종종 여행도 간다고 했다. 하지만 보트 하우스를 접한 뒤, 나는 아이의 수업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멋드러진 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보트 하우스를 예상한 것도 아니란 말이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잣대를 들이대고 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이면서 분위기만 영국풍이겠지 했다. 땅에 존재하지 않는 집(보트)에 왜 사는 걸까? 추측도 빠르게 돌려봤다. 아파트/주택과는 비교가 안되게 열악한 환경인데 보트에 살기로 결정을 할 때는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사기를 당했나, 도박을 하다가 돈을 다 날렸나, 부인이랑 이혼할 때 위자료로 다 내줬나, 우리의 과외비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수준인걸까, 사실 확인도 못할 거면서 미성숙한 생각으로 이리 재고 저리 쟀다.


그러다 문득, 그래, 선생님이 어디에 살든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TV, 컴퓨터 같은 디지털 기기가 없으니 고요하게 집중도 더 잘 할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잣대를 여기저기 들이대는 것은 멋이 없다. 더 나아가, 잣대를 품고 있으면 파격적인 생각도 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과 일을 내 기준으로만 바라보면, 진짜가 보이지 않으니까.


소중했던 잣대를 내려놓고 이미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파격을 받아들이면, 불완전한 내가 보인다. 스스로가 더 애틋하게 보인다. 새로운 관점도 보인다.


결정적으로, 진짜 전성기는 과거를 닮지 않은 시도를 할 때 온다. 그 시작은 짧고 낡은 잣대를 버리는 것부터다.